李총리-文대통령 잇따라 징용 배상재판 관련 "日지도자들이 정치적 이용"
文 신년회견 다음날 日 정부대변인 "작년 韓 대법 판결시점부터 협정위반, 책임져라"
1965년 韓日청구권협정 따른 협의요청 반복…日언론들 "文 외교 안정화 책임 포기"
니혼게이자이 "'나쁜건 美日'이라는 한국 文정권 586세대가 대일외교 경시" 진단도

문재인 정부가 최근 "일본 지도자들이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자국민의 반한(反韓)감정을 자극하고 이용하려 한다"는 주장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와 언론도 한국 정부를 비판해 양국간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낙연 총리는 10일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1시간30여분 앞둔 오전 8시30분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과거에는 한국 측이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고 이용한다는 비판적 시각이 일본에 있었다"며 "요즘에는 일본 지도자들이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자국민의 반한감정을 자극하고 이용하려 한다는 시각이 한국에 있다"고 발언했다.

이어 "이 사실을 일본 지도자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반한 감정을 자극하지 말라'면서도 상대국 정치지도자들을 먼저 거론하며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낙연 총리는 "어느 국가도, 국가간 관계도 역사 위에 서 있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미래를 준비해 가야 한다"며 "역사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역사에만 매달려 미래 준비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월1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총리의 이런 발언은 당일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서도 보도했다. 이 총리는 일제시대 전직 징용공 손해배상 소송판결에 대한 대응을 문 대통령으로부터 일임받은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0년을 맞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대한민국 건국(建國) 역사를 '정부 수립'으로 치부하고 1919년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100주년을 연신 부각시키며 자연스레 반일(反日)민족주의 여론을 고조시켜온 가운데, 앞뒤가 안 맞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미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를 실질적 파기하면서 '파기 선언'만 회피하는 행보로 한차례 외교 갈등이 초래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정권 국방부는 공식페이스북 운영 등을 통해 6.25 남침 가해자인 북한 정권의 침략·도발사(史)를 축소·외면하고, 1945년 미 원폭투하로 종식된 일제강점기 무장 독립운동가·광복군만 전면 부각하는 선전을 해와 "북한이 아니고 일본이 주적(主敵)이냐"는 비판 여론을 초래해온 터다. 북한 정권 선전매체들이 우리나라 '일본을 공적(共敵)으로 삼자'는 듯한 메시지를 발산해온 역사도 있다.

이 총리는 "저를 포함한 한국 정부는 최대한 자제하고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도 함께 자제하며 한일관게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함께 현명하게 대처해 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 데 대한 직접적 입장표명은 하지 않았다.

1월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신년 기자회견에서 타카노 히로시 일본 NHK 지국장이 대법원의 일제 징용공 손해배상 승소판결에 대한 한국정부 대책을 질문하는 모습.(사진=KTV 캡처)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 문답에서 일본 NHK 기자가 '대법원 판결에 관해 아직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언제쯤 발표할 계획이신가'라고 질의하자 이 총리와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문 대통령은 "(35년간 일제 식민지배 이후)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한일 기본 협정을 체결했지만, 그것으로 다 해결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그런 문제들이 아직도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문제들이 아니다"고 전제했다.

이어 "(한국 측은)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자고 누누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일본 정치인, 지도자들이 자꾸 정치 쟁점화해서 문제를 더 논란거리로 만들고 확산시키려고 만들어나가는 건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에 의해 사법부의 판결에 정부가 관여할 수가 없다"며 "한국정부로서는 한국 사법부 판결에 존중하는 입장을 가져야 하고 일본도 기본적으로 불만이 있더라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줘야 한다"고 했다. "그런 문제들을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삼아 미래지향적인 관계까지 훼손하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고 거듭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일본은 불만이 있더라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발언을 두고 일본 외무성 사토 마사히사 부대신(차관급)은 10일 트위터를 통해 "(한일청구권) 협정의 절차에 따라 협의 요청 중인데, 이에 답변은 하지 않고 이런 발언을 했다는 건, 사실을 사실로서 보지 않는 발언의 반복"이라고 지적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사진=연합뉴스)

뒤이어 11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측 책임을 일본에 전가시키려는 것으로 지극히 유감"이라고 내놓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일본 정부가 좀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스가 관방장관은 "한일 청구권 협정은 사법부를 포함해 당사국 전체를 구속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난해 대법원 판결 확정 시점에서 한국에 의한 협정 위반 상태가 만들어졌다"며 "협정 위반 상태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히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원고 측에 의한 압류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는 건 지극히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스가 장관은 "일본은 (한일청구권) 협정 위반 상태를 해결해야 하고, 협정에 의해 협의요청을 했다"면서 "당연히 한국은 성의를 갖고 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일본 언론계도 심상찮은 동향을 보이고 있다. TV아사히는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면서 당사자 의식이 없다. 떳떳지 못한 인상이다"라는 일본 정부 간부의 발언을 소개하는 한편, "국제조약을 위반하고 있는 국가가 겸허함을 요구할 처지는 아니다"라는 또 다른 정부관계자의 발언도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징용공 문제 문 대통령은 판결을 핑계 삼지 말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국내 사법 판단을 이유로 국가 간 체결한 의무를 회피하지 말라. 문 대통령은 대일외교를 안정화할 책임을 포기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 "남일 다루듯 하는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며 "한국 대법원이 역사적 경위를 무시하고 징용문제가 미해결이라고 판단한 것이 지금의 혼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문 대통령이 회견에서 한일관계 개선책에 대해 구체적인 방침을 밝히지 않았다"며 "한국의 외교장관 경험자는 '관계 악화에 대한 위기감을 느낄 수 없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1월11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위쪽)은 "징용공 문제 문씨(문재인 대통령)는 판결을 핑계삼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 "(징용공 배상판결을) 남일이라는 듯한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고 문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고, 니혼게이자이신문(아래쪽)은 "한국 문정권의 '586'세대, 대일외교를 경시"라는 제목의 소속 편집위원 기획보도를 내 "문재인 정권에 두드러지는 '일본경시'의 저류에는 무엇이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사진=각 일본 언론사 캡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일 미네기시 히로시 편집위원의 "한국 문 정권의 '586' 세대, 대일외교를 경시"라는 제목의 '조선반도 파일(File)' 기획보도를 내 "한일관계는 최악의 신년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으로 "문 대통령과 같은 혁신계의 노무현 대통령 시대 정권·여당을 좌지우지했던 '386'세대가, 시간이 흘러 '586'이 돼 정권 중추로 돌아왔다. 현재 65세의 문재인은 학생운동 투사 1세대. 586의 형님 격으로서 그들을 중용한다"는 배경을 거론했다. 남북분단 등 역사에 관해 '나쁜 건 일본이랑 미국이야'라는 인식이 '586' 세대에서 지배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외교적 절차 외에도 경제 제재 등의 수단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직접 '구체적 조치'를 관계부처에 지시한 사실을 밝혔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아베 총리의 지시를 고려해, 정부가 하나가 되어 만전의 대응을 취할 필요가 있다. 경산성으로서도 관계부처와 긴밀히 연대해 구체적 조치 검토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