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방송-조선일보外 대부분의 내신 기자들, 文대통령 구미에 맞는 질문으로 일관
오히려 美워싱턴포스트-佛르 피가로 등 외신기자들이 '북핵' 등 우리 국민들이 궁금해할만한 질문 공세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 '송곳 발언' 눈길..."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변화 갖지 않는 文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최경영 KBS 기자, 김예령 기자의 질문 폄훼..."조금 더 공부 하라...상투적 내용으로 질문하지 마시라"
정우상 조선일보 기자, 유일하게 김태우 수사관과 신재민 전 사무관 질문 던져...文대통령은 '불쾌함' 감추지 못해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전 잦은 기자회견을 약속했던 것과 달리 1년 만에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내외신 기자 사이 질문의 수준차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직접 사회자를 자처하고 기자를 지목해 질문을 받았다.

이날 문 대통령에게 첫 질문자로 지목된 이상헌 연합뉴스 기자는 "첫 질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라며 "남북관계, 비핵화, 경제 문제 등 구체적인 현안은 다른 기자들이 많이 할 것 같아서 저는 포괄적인 질문을 먼저 드리겠다"며 대놓고 몸을 사렸다.

이상헌 기자는 이어 "오늘은 대통령께서 취임하신 지 꼭 만 20개월 되는 날입니다. 대통령 임기 60개월 중에 3분의 1이 지나는 시점"이라며 "지난 20개월 동안 대통령께서 가장 큰 성과로 꼽으시는 것과 가장 힘들었고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물었다.

다음 바통을 넘겨받은 최중락 MBN 기자 역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라며 "그 복이 한반도 평화 과정으로 좀 더 한 발 더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수 접고 질문을 시작했다.

최중락 기자는 "말씀하신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갔습니다"라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지난해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았는데 올해 문 대통령이 생각하시는 한반도 평화 과정,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앞으로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지 질문 드리겠습니다"라고 질문했다. 최중락 기자의 질문은 문 대통령이 평소 주구장창 얘기하는 '김정은 답방', '종전선언', '평화협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문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구미에 딱 맞는 질문이었다.

연합뉴스 MBN JTBC KBS 기자들의 질문, 부끄럽지도 않은가?

안의근 JTBC 기자도 예상과 다르지 않게 문 대통령이 답변할 부분까지 질문에서 자신이 직접 설명하며 문 대통령을 미소 짓게 했다. 안의근 기자는 "대통령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라며 "북한과 미국이 결국은 요구 수준을 얼마나 자추고 거기서 절충안을 마련해낼 수 있는지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그 부분이 관건이 될 텐데요"라고 언급했다.

이어 "첫술에 다 배부를 수 없기 때문에 영변 등 일정 지역의 비핵화를 먼저 진행하다던지 일부 몇 개 만들어 놓은 핵무기를 먼저 폐기 한다던지. 그리고 미국은 그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부분적인 제재 완화 조치를 취한다던지 이 같은 패키지 딜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올해 김정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가지 의사소통을 하고 직접 만나실 기회가 많을 텐데 직접 이런 패키지 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중재하실 의사가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물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 안의근 기자님이 방안을 다 말씀해 주셨고요. 그렇게 저도 설득하고 중재하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더 하실 말씀? 괜찮습니다. 추가로"라고 답하며 한 번의 질문 기회를 더 줄 정도로 호의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안의근 기자의 추가 질문이 끝난 뒤 외신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줬다.

외신 기자 중 첫 질문을 맡은 사이먼 데니아 미국 워싱턴 포스트 지국장은 "대통령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먼저 제가 영어로 질문 드리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작년에 대통령님께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셨을 때 혹시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질의하실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했다.

또 "그렇다면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뤄질 경우에 주한미군이라던지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자산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의하실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추가로 물었다.

앞의 한국 기자들과 달리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두 가지 개념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대한민국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일맥상통한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 핵우산 제거'까지 포함된 개념이다.

결국 사이먼 데니아 지국장은 김정은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확실히 구별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물어본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질문도 문 대통령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기에 적절했다.

세바스찬 프랑스 르 피가로 특파원의 질문도 한국 기자들의 질문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바스찬 특파원은 "대통령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라며 "대통령님께서 북한이 비핵화 부분에 있어서 더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요청했다.

이어 "또한 비핵화가 종국에 달성될 경우에 앞서 다른 기자가 질문하기도 했습니다만 괌과 일본 등지에 있는 주한미군의 핵 자산들을 철수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지 또한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다.

세바스찬 특파원의 질문은 문 대통령이 항상 두루뭉실하게 언급하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국민들이 문 대통령의 입으로 확실하게 듣고 싶은 대답 중 하나다. 주한미군 질문 역시 포함됐다.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는 공영방송 KBS 김지선 기자는 노골적으로 문 대통령의 구미에 맞는 질문을 했다. 김지선 기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도 자주 만나자'라고 '서울 답방이 이뤄지지 못해 아쉬웠다'면서 친서를 보냈는데"라며 "대통령께서는 어떤 내용을 담아서 답장을 보내셨는지. 그리고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다자협상 카드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는데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지난해 목표했던 종전선언, 평화협정은 어느 시기에 어느 주체와 함께하실 것으로 구상하고 계시는 건지 설명 부탁드립니다"라고 물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안보 공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공영방송 KBS의 기자가 궁금한 것이 고작 김정은의 친서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장 내용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右)과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右)과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상당수 국내 기자가 '문비어천가' 수준의 하나마나한 질문을 이어간 가운데도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의 '송곳 질문'은 눈길을 끌었다. 김예령 기자는 문 대통령을 향해 "오늘 기자회견문 모두발언을 보면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 성장을 지속시키겠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라며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론이 굉장히 냉랭하다는 걸 대통령께서 알고 계실 겁니다. 현실 경제가 굉장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버린 건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통령께서 계속해서 이와 관련해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강조를 하시고 계셨는데요. 그럼에도 대통령께서 현 기조에 대해 그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그런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요.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라고 물었다.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김예령 기자가 기자로서 충분히,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을 했음에도 명색이 공영방송 KBS 기자라는 최경영 기자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김예령 기자를 향해 질문이 다소 모호하다며 "조금 더 공부를 하라. 너무 쉽게 상투적인 내용으로 질문하지 마시라"는 '황당한 글'을 남겼다.

김예령 기자에 이어 이날 기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은 정우상 조선일보 기자가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우상 기자는 김태우 수사관과 신재민 전 사무관을 언급하며 "과거에 대통령님이 야당 정치인이었다면 아마 가장 먼저 그분들에게 달려가서 그분들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잘못된 외압을 받는다거나 인권이 침해됐을 경우에 대비해서 아마 변호인을 구성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라며 "그런데 이번에 그 두 사람에 대해서 정부가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한다거나 의도가 불순하다거나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최근 행동들에 대해서 대통령님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문 대통령의 정곡을 찔렀다.

직전까지 문 대통령은 대체로 진지하면서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과 질의를 주고 받았지만, 정우상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정색한 채 답변했다.

심민현 기자 smh41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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