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 하드 복사본 완전삭제
'김명수 대법관 만들기' 등 좌성향모임 문서는 감춰
향후 검찰수사 대비한 '증거 인멸' 의혹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김명수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찾겠다며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 지시로 발족한 법원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가 향후 재조사 과정의 위법성 논란과 수사를 피하기 위해 핵심 증거를 삭제하거나 김 대법원장및 그와 성향이 비슷한 판사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조사 결과에서 제외했다는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24일 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최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를 위해 강제 개봉한 법원행정처 판사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복사본 3대를 ‘디가우징’해 파기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력으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는 기술이다.

추가조사위가 파기한 하드디스크 복사본에는 추가조사위가 어떤 컴퓨터 파일들을 들여다봤는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일각에선 “검찰이 향후 재조사 과정의 위법성을 수사할 때를 대비해 핵심 증거를 없앤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행정처 컴퓨터를 강제 개봉한 혐의(비밀 침해 등)로 추가조사위원 6명을 검찰 고발했다.

이 신문은 법조계 인사 말을 인용해 “추가조사위는 ‘판사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22일 재조사 과정에서 사용한 행정처 하드디스크 복사본 3대 속 내용을 완전 삭제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추가조사위는 지난해 11월 말 ‘판사 블랙리스트’가 들어 있다는 의심을 받은 행정처 컴퓨터 3대의 하드디스크를 복사해 가져갔다. 이후 이 하드디스크 파일을 당사자 동의 없이 강제 복원해 조사했다. 이 복사본에는 추가조사위가 어느 시기에 작성된 어떤 문건을 열어봤는지에 관한 ‘재조사 흔적’이 담겨 있다.

조선일보는 “검찰도 압수 수색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조사가 끝나면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파기한다”며 “그러나 추가조사위원들은 컴퓨터 강제 개봉 혐의로 고발된 피의자 신분이어서 상황이 다르다”고 보도했다. 형법상 비밀침해죄는 비밀 장치를 건 정보를 열었을 때 적용된다는 것이다. 추가조사위가 복사해 간 행정처 컴퓨터에는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재조사 과정에서 공개를 원치 않아 삭제된 파일이나 비밀번호가 걸린 문건 등이 열람된 경우 비밀침해죄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신문에 따르면 이에 대해 추가조사위 관계자는 “행정처가 복사된 하드디스크의 외부 유출을 걱정해서 내용을 초기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신문은 추가조사위가 당초 행정처 등에 “컴퓨터에서 2015년 7월부터 작년 초까지 현안(블랙리스트)과 관련 문건만 검색하겠다”고 통보했지만 2015년 이전 행정처 문건들도 검색해 작성자들을 불러 조사한 일도 덧붙였다.

한편 추가조사위가 김명수 대법원장과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판사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조사 결과에서 제외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경제신문은 법원 내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이번 조사에서 ‘사법부 내 사조직’ 논란 중심에 선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진보성향 소모임인 ‘인사모(인권을 사랑하는 판사들의 모임)’ 관련 문서가 여럿 나왔지만 전날 추가조사위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추가조사위 구성원 대부분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인 만큼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숨긴 채 ‘취사선택’해 조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신문은 이 중에는 인사모 소속 법관 일부가 진보 성향 국회의원 등과 접촉하며 ‘김명수 대법관 만들기’ 작업을 했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법관들이 대법관을 만들겠다며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은 법원행정처로서 당연히 파악하고 대응해야 할 내용”이라며 “조사 내용을 “조사 내용을 취사선택한 것은 조사위 구성 자체부터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견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 조사는 초기부터 법원 내부에서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법관 문제리스트’라는 지적이 끊임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또 다른 문건에는 김 대법원장이 춘천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상고법원 추진을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고법원 신설안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의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사건 처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 같은 문서의 존재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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