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세계관 고집하는 文정권이 가짜뉴스에 대처?…쓰디쓴 입맛 다시게 된다
학계가 더 큰 의혹을 생산하고 언론과 정치는 거짓말 경연대회를 방불케 한다
극단적 주장에 특화된 우리들의 思考…분열을 부르고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보수도 극단주의 경향과 분열 충동에 빠져들어...내부총질 위험성 경계해야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

한국인의 두뇌 속에는 오랜 극단화 경향과 습관적 거짓말이라는 귀신이 살아서 너울거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고 경향성은 이념의 좌우를 가리지도 않는다. 진리를 시험하고 검증해야할 언론계 학계 사법부 등 사회적 진리 검증 장치일수록 더 악취를 풍긴다. 극단으로 치닫는 주장일수록 진리를 다투는 각 진영 내에서 환영받는다는 것도 전통이다. 정치는 아예 거짓을 찍어내고 퍼뜨리는 컨베이어벨트 같다고 할 지경이다. 여론이라는 악의 성(城)에 먼저 깃발만 꼽으면 된다는 식의 무한 투쟁은 진리 아닌 거짓의 공성전을 더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오류와 부정(否定)의식과 허구에 가득 찬 세계관을 고집하는 문재인 좌익 정권이 “단호하게 가짜뉴스에 대처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며 쓰디쓴 입맛을 다시게 된다. 진리를 독점하려는 시도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가짜와의 전쟁’이다.

우리 머리속에 춤추는 극단화 경향과 습관적 거짓말

국내 좌익 정치그룹의 핵심이 종북 집단으로 전락해간 것과 유사한 집단 오류의 사례는 극단적 종교단체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순진한 민족지상주의자에서 출발해 점차 미국을 증오하고,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규정하며, 기어이 북한이 옳다는 주장으로 갔다가, 이제는 북한을 사상의 조국으로까지 받아들이고, 북한의 권력집단에 완전히 스스로를 동조하게 만드는, 그래서 붕괴일보 직전인 북한을 유지 존속시켜야 하는 절망적 소명의식까지 내보이는 그런 가공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관이 대한민국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과학과 구체성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허구적 구성물을 실재(實在)로 착각하는 극단의 좌익 관념론일 뿐이다. 이런 관념이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

주자학 등 사상과 이념의 나선형적 자기최면

외곬로 치닫고 있다. 사상과 이념의 나선형적 몰입이라는 본능의 한가닥이라도 있는 것 같다. 조선 주자학이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그 대표적 나선현상이다. 먼저 공자 맹자를 학습하는데서 나아가 주자와 그의 규칙을 서서히 내면화하고 추종하게 된다, 그 다음엔 기어이 상복이나 제사상 진설을 놓고 종교적 혈투를 벌이는 데까지 급진전 된다. 그들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아니 망하고 나서 한참 뒤까지도 명나라 황제들을 제사 지낸다는 만동묘를 성지를 찾듯 순례한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야밤의 푸닥거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게 낡아 썩어빠진 사상을 붙들고 시대착오적 눈물을 쥐어짜는 부조리극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썩은 구습을 선비정신이라며 되살리자는 인간들은 지금도 넘치게 많다. 그러니 문재인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예의도 바르게 새해맞이 인사를 중국인에까지 읍하기에 이른 것이다. 골수에까지 조선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음모론을 논평이라고 착각하며 정밀성을 다툰다 

각종 음모론이 범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에서부터 세월호까지 사건사고만 났다하면 그럴싸한 음모론이 거의 즉각적으로 만들어진다. 일종의 오타쿠적 취향들이다. 이들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음모의 정교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서로가 나요나!를 다툰다. 각 진영의 소위 논객을 자처하는 자들은 아예 그럴듯한 음모론을 구성해내는 능력을 다툰다고 할 지경이다. 세계를 자본가의 음모로 인식하는 좌익은 원래 그런 종자라 할 것이지만 최근엔 보수 세력도 이 문제적 경향성에서만큼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럴듯하기만 하면 된다는 원칙이 양 진영을 지배하는 공통의 정신이다. 빈칸과 줄이 있다 없다하는 투표용지 음모론에서부터 비트코인 북한 송금설을 거쳐 다양한 음모론들이 보수애국 세력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다. 가장 장대한 음모론은 단연 환단고기 류의 주장이다. 국가의 기원을 정확하게 중국사에 이어붙인 아니 오히려 12만6천 년 전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그리고 한국인의 조상들이 수메르 우르 등 세계 12개 민족을 경영했다는 화려하게 재구성된 민족의 고대사가 떠오르게 된다. 반증이 불가능하므로 절대로 과학적 진리로 확정될 수 없지만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그 이유만으로 유사 역사학적 대접을 요구한다. 실로 위대한 '정신 승리'의 산물이다. 투표용지 문제는,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정확하게 구분해 투표용지를 나누어줄 수 있는 소위 '투표소의 빅부라더'가 존재할 것인지만 생각해도 바로 무의미한 질문이 되고 만다. 의심은 필히 반증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정신의 엄격함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정신의 엄격함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

합리적 관점에서 충분히 의심할 만한 그래서 증거에 대한 적절한 확인과 조사를 기다리는 사태들도 있다. 박원순 아들 병역비리 문제는 박주신을 데려오면 간단하게 처리되는 문제일 뿐이고 이미 합리적 의심의 단계조차 넘어서는 객관적 증거와 전문가들의 증언이 쌓여가는 중이다. 박원순은 아들과 떨어져 수년간 가족 상봉조차 못하고 있다니 이런 딱한 일이 없다. 정치란 그렇게 가족까지 희생시킨다는 것인지. 그렇게 별 희한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생기다 보니 모든 일에 의심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이 사회적 음모론의 토양이 된다. 과학으로 풀어야 할 통로가 차단되어 있으니 비과학적 음모들이 춤을 추게 된다.

검증가능한 일의 검증을 거부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논란을 부르고 있는 광주 사태 당시 북한 특수군 개입설도 그렇다. 소위 유공자 명단과 그들의 행적을 전문가들이 비교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사태의 전모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봉인할 것을 봉인해야지 국가에서 그 이름을 떠받드는 유공자 명단부터 비공개로 해놓고 어떻게 진상을 조사한다는 것인지. 헬기 기총 소사에 대한 그럴싸한 주장은 “헬기의 기총소사 매뉴얼을 확인했다”는 특조단의 주장을 “기총소사를 확인했다”는 언론의 주장으로 은근슬쩍 변질시키면서 그럴듯하게 성립하는 스토리가 되었다. 언론사들은 “기총소사를 확인했다”는 것은 “기총소사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뜻이었다며 비열하게 발을 뺀다. 그러나 광주의 검찰은 벌써 ”기총소사가 자행되었다”로 주장하고 있다. 실로 악의적이다. 이런 변조를 만들어 내는 데는 언론만한 기관이 없다. 언론은 그 속보성을 핑계로 사실 확인 절차를 일정 정도 면책 받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언론을 다시 인용하면서 루머를 사실로 둔갑시킨다. 한국인이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보수조차 잘게 잘게 분열하고 서로에게 총질한다

과학의 진리가(價)를 다투는 학계가 더 큰 의혹을 생산해내고 언론과 정치는 거짓말 경연대회를 방불케 한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대체 가짜는 무엇이며 진실은 무엇인지를 도저히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인 모두가 이 끈적거리는 혼동의 늪지대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강하게 주장하기만 하면 진실로 둔갑하고-천안함 세월호는 대표적인 경우다- 정치를 장악하고 권력을 차지하면 진리마저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은 조선 주자학이 우리 뼈 속 깊이 새겨놓은 준칙이다.

진실을 확정해야 하는 다양한 제도와 기관들이 더욱 거짓을 부추기고 억지를 생산한다. 진리의 재판정은 이미 타락하였고 진리를 검증의 시험대에 올리는 사법 당국은 정치라는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모래다. 거짓을 걸러내고 진실을 확정하는 사회적 장치들은 진리를 박해하고 거짓을 진리로 둔갑시키는 악마적 장치요 진리의 고문대로 타락해 있는 것이다.

그럴듯한 구성물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라면 극단적 주장들에 우리들의 사고는 특화되어 있다. 극단적 주장을 할수록 선명해진다. 그것은 분열을 부르고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적전 분열과 패배는 그렇게 예고된다. 방구석 평론가들이 더 극단적 주장을 좋아한다. 그들은 익명 속에 숨어서 그런 극단화 현상을 부추긴다. 조선 주자학 사회의 소위 사림이라는 족속들의 하는 짓이라는 것이 바로 그랬다. 그들은 책임지지 않으므로 제멋대로 지껄인다. 그런 경향성이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갈래갈래 찢어진다. 동서는 남북으로 그리고 점점 잘게 2차, 3차의 분열을 일으켜 간다. 물리적 토대가 한반도에 갇혀있다 보니 정신의 한계까지 차폐된 결과일 것이다.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니 안에서 분열하는 내파 현상이 일어난다. 보수의 분열도 그런 물리 작용의 결과다. 태극기만도 몇 갈래인지 모를 정도다. 잘게 그리고 더 잘게! 스스로 바위를 향해 머리를 들이박는 작은 계란들이 되고 있다.

우리의 주장, 나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으면 당신은 위장우파요, 심지어 간첩으로까지 지칭된다. 밖을 향한 용기가 없기 때문에 진영내부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총질을 한다. 우리 속에 그런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한국인은 어쩔 수 없다는 절망의 구조학은 아닐 터이다. 누가 흩어진 자들을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을 것인가.

정규재 대표 겸 주필 jkj@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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