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정치에 미친 양반과 종놈의 나라
[황성욱 칼럼] 정치에 미친 양반과 종놈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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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건 공무원이건 권력근방에서 멀어지면 살 수 없는 나라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새해가 밝았지만, 근대의식을 갖춘 자유시민은 우울하기만 하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민간인 불법사찰의혹 폭로와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폭로한 청와대의 정치적 국채발행 시도 의혹은 자유 시민들에겐 ‘이제 올 것이 오는구나’라는 느낌을, 일반국민들에겐 ‘이건 나라냐?’란 생각을 품게 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공시지가 산정은 민간영역임에도 정부가 두 배로 올리라고 지침을 내려 국민 몰래 폭탄증세, 징벌증세를 시도했다. 자유언론이 이를 비판하자 처음에는 그런 일없다고 했다가 다시 인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해프닝은 연속적이다. 김태우 전 감찰반원의 폭로로 알려진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도 처음에는 환경부에서 부인하다 다시 인정했다.

공무원들이 거짓말을 하는 나라다.

이뿐일까.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그걸 숨기다 들키면 다시 번복하는 일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이 일어날지 속된 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탈원전의 적법성 여부, 태양광 사업 의혹, 해도 해도 너무한 캠코더 인사, 국방해체, 전 세계가 비웃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한 경제침체, 재앙적 일자리 파괴 등등등. 작년에 일어났던 일들은 새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기억조차 흐리다.

자유시민과 보수시민들이 그나마 믿고 있었던 군은 어떠한가. 새해 벽두부터 국방부장관은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미래를 보면서 실질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역시 그에 대한 비판이 일자 다시 해명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식으로 바로 연이어 또 사건이 터졌다. 지난 2017년 청와대 4급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에게 인사 관련 사항을 협의하자며 카페로 호출하자 4성 장군이 바로 달려 나갔고 그와 관련한 문건을 이 행정관이 담배 피다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 합격한지 두 달 밖에 안 된 직업적 경력조차 아직 쌓지 못한 행정관의 부름에 장군이 달려 나갔다는 것은 사실 누가 봐도 어색한 상황이지만, 이 정권하에서는 당연하다는 느낌마저 있다.

일전에 미국의 국방부 장관 매티스는 트럼프를 향해 “대통령께서는 견해가 더 잘 맞는 국방부 장관을 둘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물러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됩니다."라며 항의성 사임을 한 바 있다.

이런 장면을 설마 기대한 걸까.

서두에 쓸 말이 너무나 길어졌다.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의 지난 1년여는 이렇게 흘러갔다.

요약해보면 한마디로 정의된다.

권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나라였다. 군인이건 공무원이건 시민이건 간에 권력근방에서 멀어지면 살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 바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정체였다.

문재인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과거 이미 경험했던 '조선' 

그러나 과연 역사적으로도 처음 경험하는 나라일까?

국가권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정치에 모든 것이 집중된다. 정치권력만 가지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 나랏돈을 내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바로 정치권력. 그러나 이런 무도한 정치권력은 결코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반드시 소수세력들이 독점해야하고 사실 그 독점 때문에 위력이 발휘된다. 다수결이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민주주의독재를 방지하는 법치주의는 아예 없는 나라.

바로 조선이었다.

조선은 변변한 군대도 없으면서 허구한 날 양반네들 상소문 놀이로 죽음의 굿판을 벌였다. 조선의 법치주의 원님재판은 양민들의 편이 아니었다. 권력을 가진 양반들의 집권수단에 불과했다.

세월호 사건에 관련됐다는 이유만으로 해경의 상훈에 청와대가 개입하고 그것은 청와대 권한이라고 대놓고 얘기하질 않나, 수사권이 없으면서 임의제출은 적법하다고 말하는 작태는 법에 대한 지력의 부재 이전에 권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조선의 양반 정신 그 자체다.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을 다음에 대입해보자.

무신은 문신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게 조선이었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당쟁에서 이긴 양반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조선의 정치예법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대를 이어 해먹으며 상인에게 빨대 꼽는 것이 당연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국가의 이권은 시장의 자유경쟁이 아니라 양반들이 정해줘야 진입할 수 있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증세는 있을지언정 감세는 없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

군대는 없지만 의금부를 동원해 사약잔치를 벌였던 나라가 조선이었다.

조그만 힘 있는 나라가 들어오면 싸움보다는 사대주의부터 하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100여년 만에 부활하는 완벽한 조선이고 완벽한 유교탈레반이다.

해방이후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은 미개한 조선과의 단절이었다. 개인은 없고 양반과 그 양반에 부역하는 종놈의 나라였던 조선과의 결별이었다.

이렇게 70년을 달려왔지만, 건국정신과는 달리 우리는 내로남불 유교원리주의자들을 민주화세력이라고 칭송해왔다.

대한민국, 조선으로 회귀하나? 

우리에겐 책임이 없을까?

얼마 전 산업안전법 개정안 표결에 유일하게 반대 투표한 의원은 전희경 의원 1명이었다. 소위 김용균법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법은 도급인을 형사처벌하고 국가가 시장의 자연질서와 상관없이 도급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인데, 소위 보수우파라는 정치권조차 전 의원을 제외하고 찬성표를 던졌다.

다수 언론의 보도 수준은 더 참담하다. 반대 견해가 김용균이란 청년을 보호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 산업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 형사처벌을 통한 국가권력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는 점에 있음은 생각지도 못한다. 형사처벌보다는 민사배상이 더 중요하다는 근대 자유법 이론은 소위 이 나라 먹물들에게 생소하다.

국가가 해결해 준다는 것은 양반들이 나온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게 권력에 전 국민들이 미쳐가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눈을 부릅뜨자. 조금만 생각을 하자. 모두가 동의하는 자유주의적 아젠다마저 못 알아채고 설명도 못하는 수준에 벗어나자.

조선은 망했고 대한민국은 흥했다.

나의 권리가 양반에게 휘둘렸던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나으리’를 외치는 종놈으로 살 것인가.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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