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이야기 30] '분배의 정의'보다 '번영의 정의'를 가르치다
[유니샘의 교실이야기 30] '분배의 정의'보다 '번영의 정의'를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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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기만 하면 정의롭다고 할 수 있나
빈곤 탈출로부터 번영의 생산으로 나아가야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 가능
‘절름발이 정의관’으로 정의로운 해법을 가르칠 수 없어
자유주의정의관으로도 사회불평등을 다룰 수 있어야 ‘정의’의 수업 완성 가능
조윤희 부산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금성고 교사

‘정의’의 단원 시간이었다. 정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올바름’이라고 답한다. 무엇이 올바름이냐고 물었다.
거짓이 아닌 것, 진실 된 것, 약자를 위하는 것 등 추상적인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교과서에서는 정의를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 ‘동일한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 등으로 설명한다. 이어서 ‘이러한 정의는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분배의 정의를 다루기 위한 포석 같은 느낌을 받고 다음 장으로 가면 <불평등의 해결과 정의의 실현>이란 단원이 나타난다.

 

● 불평등을 해결해야만 정의는 온다?

<불평등의 해결과 정의의 실현>이란 단원의 첫 그림이다.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못 박고 있다. 왜 꼭 불평등이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인가. 그리고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만이 정의라고 못 박는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시작되는 첫 그림을 보며 아이들의 생각을 진단해 들어갔다.

그림   통합사회 교과서 182쪽 (출판사 비상교육)
그림 1. 통합사회 교과서 182쪽 (출판사 비상교육)

생각을 열어주기 위해 주어진 교과서의 저 그림 밑에 이런 문제가 제시되어 있다.

문제 : 위와 같은 저울의 수평을 다시 맞추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지 이야기해 보자.

예시답안을 열기 전에 먼저 질문했다. 아이들의 답변은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교과서의 진행을 무리 없이 따라가다 보면 예시답안과 같은 그런 답을 하게끔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덩치 큰 왼쪽의 것을 덜어내어 홀쪽 하게 만들고, 오른편에 얹어주면 오른 편 접시와 무게가 같아지게 될 것이라는. 교과서는 그것이 분배의 정의라는 뉘앙스를 깔고 시작하고 있었다 .

“얘들아, 너희들이 말한 대로 부자의 것을 덜어내어 빈곤한 이웃에게 재분배하는 것이 정의라면 말이야, 그러면 이 쪽 저 쪽을 합친 부의 총량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양쪽을 합쳐 점점 더 무게가 많아지고 다함께 건강해지면서 몸도 커지는 것이 정의일까, 아니면 한 쪽을 잘라 다른 편에 얹어줘서 결국은 총량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정의일까?”

아이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을 했다.

“그렇네요. 양 쪽이 다 커지는거요! 그렇지만 한 쪽이 너무 기울면 안 좋은 것 아닌가요?”

다시 이어서 질문을 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점점 더 부자가 되어 몸이 건강해지고 커지면 안 되나?

항상 균형이 맞도록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몸이 같은 사이즈여야만 정의롭다는 생각은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너랑 얘랑 키도 다르고 몸무게도 다른데 그럼 정의롭지 않구나! 네 다리를 하나 잘라 이 친구에게 붙여줘야 정의로운가?”
“헉! 선생님. 그건 아니지만...”

“우린 언제부터인가 ‘고른’ 분배만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열심히 더 노력한 사람의 몫이 커지면 무조건 불의한 것인까?

정의관은 자유주의적 정의관과 공동체주의적 정의관을 배우면서 문제의 해결방식은 어째 공동체 주의적 정의관에만 가까운 것 같지 않아?”

아이들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 ‘지금’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만이 정의인가

지금 나와 내 옆의 친구들이 모두 고르게 잘 살아야 하는데, 누군 잘 살고 누군 그렇지 않으니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에는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

누군가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며, 태어날 때부터 열악한 조건을 물려받아 노력조차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이 고르게 나누어 가져야만 정의로운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근로소득세의 면제자가 47%나 되는 현실 속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그만큼 세금을 내, 그 세금이 복지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세금은 보편적이지 못하면서도 복지에 대한 요구는 국민 대다수가 세금을 내는 나라 수준의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은 부자도 빈자도 모두 포함한다. 국가는 가난한 이의 최저생활을 보장할 의무 못지않게 열심히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도 지고 있다. 그럼에도 가난한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부자의 재산을 덜어내도 좋다는 논리가 정당화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대가가 격차로 주어지는 세상은 무조건 정의롭지 못한 것인가. 부자의 부를 덜어내어 ‘재분배’를 구현하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가, 차분하게 질문을 하자 학생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든 내기 어려운 사람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그 보호의 기준은 법이어야 한다.

세금 역시 법을 근거로 부담하게 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감정이 법을 앞질러 ‘떼’의 목소리가 정의 행세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 법은 제쳐두고 정의가 광장에서 나온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또한 짚고 넘어가야 했다.

 

● ‘과거보다 나아진’ 번영이 정의일수도 있다

지구도 평평해지고 대한민국도 평평해졌다. 즉 과거에 비하면 국제사회에서의 장벽들도 허물어지고 수많은 격차들의 간극도 점차 완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빈곤과 기아에서 허덕이던 사람들이 차츰 그 빈곤의 위기에서 탈출하기도 하는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에서 언급되었고, 최근 출간된 렌들 홀콤의 <번영의 생산>에서도 다루어졌다.

홀콤 교수는 번영을 매우 구체적이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데 번영이란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재화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우리가 지금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전에 없었던 컴퓨터와 스마트 폰을 쓰게 된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이 골고루 잘살게 되어야만 한다는 억지보다는, 과거에 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살게 된 것이 번영이며 성장이라고 말한다. 절대적 빈곤을 탈출하게 된 것이 과거보다 평등해진 삶이 되는 것이니 이 또한 정의로운 분배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린 지금 기업가 정신이 잘 발휘된 덕분에 새로운 재화를 풍족하게 소비할 수 있게 된 사회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번영이야말로 삶의 질을 생각할 여유를 가져다주고 잃었던 도덕심을 되찾아준다. 인간이 염치와 도덕을 갖고 체면을 생각하는 것도 기본적인 배고픔의 욕구를 해소하고 난 다음일 것이다. 경제적 성장이 안정적인 나라일수록 낮은 범죄율을 보이는 결과 등만 보더라도 번영이야 말로 양심과 도덕이 작동하는 정의로운 세상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한 가지 정의관으로만 해법 찾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던 저울 장면 속 ‘왼편 덩치’와 ‘오른편 홀쪽이’들로 돌아가 보자. 저울의 양편이 함께 커진다면, 특히 ‘홀쪽이’들이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다면 저울의 양편, 즉 국가의 발전 총량은 이전에 비해 더욱 성장하고 확대 될 수 있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정의관은 ‘자유주의적 정의관’과 ‘공동체주의적 정의관’ 둘 모두이다. 그러면서도 사회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공동체주의적 정의관’에 입각한 해법으로만 다루어진다.

그림  통합사회 교과서 182쪽 질문의 예시답안 (출판사 비상교육)
그림 통합사회 교과서 182쪽 질문의 예시답안 (출판사 비상교육)

사회불평등을 해결하는 해법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관점(자유주의적 정의관)이 아닌 평등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관점(공동체주의적 정의관)으로만 제시된다면 이 또한 ‘정의’롭지 못하다고 하겠다.

기울어진 저울의 균형점을 찾아주기 위해, 빈곤한 사람들의 집합 쪽이 과거보다 더 풍요로워지고 규모가 확대되도록 하여 부유한 집합과의 격차를 줄여나가도록 하는 것은 어떤가. 과거보다 골라서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빈곤한 계층 사람들의 일자리가 골라서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늘어나 소득이 늘고 건강해지는 것은 어떤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기업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하며, 양팔 저울에서 오른 편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왼편도 함께 커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또 어떤가. 결국 이 사회의 힘, 소득의 총량이 늘어가는 정의를 즐겁게 바라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벌써 부자가 된 듯 기분 좋게 수업을 마무리 했다.

균형이 곧 정의인 듯 가르치면서 한 가지 정의관으로만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의로울 수 없음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이었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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