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구간 설정
'결정위원회'가 구간 내에서 인상 수준 정해...위원회에 청년·여성·비정규직 등 포함
노동계 "입장 반영할 여지 줄어들었다" 반발
정규재 대표 "얄팍한 속임수...전문가들이 좌익집단이라면 변하는 것 없다"
"인상률을 결정하는 규칙을 작성하고, 중립적인 전문가 그룹 만들어 내야"

 

정부가 7일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개편 초안을 공개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발표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은 1988년 최저임금제도 시행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 초안은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 양측과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되는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먼저 정하면 결정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구간설정위원회는 노동자의 생활 보장뿐 아니라 고용 수준, 경제성장률, 사회보장급여 현황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정한다.

노동부는 고용 수준 등을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추가할 방침이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게 기업의 지급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재갑 장관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포함된 객관적인 지표를 근거로 전문가들에 의해 설정된 구간 범위 내에서 심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그동안 노동계와 경영계의 요구안을 중심으로 줄다리기하듯 진행돼온 최저임금 심의 과정이 보다 합리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간설정위원회 전문가 9명 선정 방법은 노·사 양측과 정부가 5명씩 모두 15명을 추천하고 노·사가 순차적으로 3명씩 배제하는 방안과 노·사와 정부가 각각 3명씩 추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순차 배제 방식은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위촉 등에 쓰이는 것으로, 노·사 양측이 보기에 편향된 인사를 제외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구간설정위원회는 연중 상시로 운영되며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해 이를 토대로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정하게 된다. 노동부는 구간설정위 활동 지원을 위해 최저임금위 사무국 기능도 강화할 방침이다.

결정위원회는 노·사·공익위원 각각 7명씩 21명으로 구성하는 방안과 노·사·공익위원 5명씩 15명으로 구성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노·사·공익위원 9명씩 모두 27명인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보다는 규모가 작아진다.

노·사의 대립 구도 속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 전원을 정부가 추천하는 현행 방식은 폐지된다. 현행 방식은 공익위원이 정부 입김에 휘둘려 최저임금 결정이 사실상 정부에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정위원회 공익위원을 7명으로 할 경우 국회가 3명을 추천하고 정부가 상임위원 1명을 포함한 4명을 추천하는 방안과 노·사·정이 각각 5명씩 모두 15명을 추천해 노·사가 순차적으로 4명씩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장관은 "그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돼왔던 소모적인 논쟁들은 상당 부분 감소될 것이며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논란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정위원회의 노·사 양측 위원도 지금과 같이 주요 노·사단체가 추천하되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 대표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법률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이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구성 방식과 비슷하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은 2017년 12월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된 '최저임금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방안을 토대로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저임금 관련 협약과 외국 제도 등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초안은 이달 중으로 확정돼 관련법 개정 등을 거쳐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부터 적용된다. 

노동부는 오는 10일 전문가 토론회를 시작으로 노·사 토론회, TV 토론회, 대국민 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수렴에 나서기로 했다. 오는 21∼30일에는 대국민 온라인 의견수렴도 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의 이러한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에 대해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한노총은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정부안은 당사자인 노동자보다 전문가 의견을 더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최저임금제를 무력화시키는 내용”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 “전문가들이 미리 구간을 설정하는 것은 노사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노사위원과 공익위원은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노총도 7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결국 ‘내 갈길 가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폭은 통계와 분석이 필요한 전문가의 연구, 분석 영역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인상 한도와 범위를 먼저 설정하면 노사양측이 실제 인상율을 결정하게 한다는 최저임금결정 방식의 변경은 ‘얄팍한 속임수’ ”라며 “마치 제도가 잘못되어 지금의 최저임금소동이 벌어진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이렇게 두 단계로 한다고 해도 1차 범위설정위원회의 소위 전문가들이 시간당 1만원 혹은 두자리 숫자 인상을 고집하는 좌익들이라면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지금의 최저임금 후유증이라는 것도 '공익위원이라는 소위 전문가'들이 해온 짓”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 여성 비정규직 자영업자를 이 위원회에 새로 포함시키는 방안 역시 달라지는 것이 있을 수 없다”며 “위원 개개인의 개별적 경험은 최저임금과 관련한 전체의 경제적 영향을 왜곡되게 만들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최저임금 결정의 해결책은 적용범위를 전체 근로자의 하위 5% 등으로 최소 범위로 규정하고, 인상율을 결정하는 공식이나 규칙을 작성해 이를 지키고, 중립적이며 균형있는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같은 변경 없이 위원회에 이해당사자 참여를 늘리거나 전문가 위원회를 따로 만드는 방법으로 적정한 최저임금에 이른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며 “대통령이 앞장서서 1만원 대선 공약을 지켜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 것이 진정한 원인인데 기재부는 얄팍한 말의 장난질을 그만두라”고 일갈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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