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자발적 행위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음주운전과 주취감형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글이었다. 음주운전에 비해 취기로 저지른 일반적 범행은 그 동기나 고의성의 여부에도 불구하고 주취감형이라는 이름으로 편견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국가(더 정확하게는 입법부)는 또 한 번 음주운전에 대하여 법을 강화시켰다. 편견의 폭이 더욱 벌어진 것이다. 이번에 강화된 내용은 술을 마신 채로 운전대를 잡았을 경우 그 사람의 취기가 얼마인지를 불문하고 오직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형량을 가중하는데 그칠 뿐이다. 이러한 규정의 일관성은 곧 인간을 세포화, 기계화, 나아가서는 무생물화로 보는 경향으로부터 기인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주취감형이 피의자의 진술에 따라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고 범행당시 그 사람의 취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분석해내어 그 정도가 이성을 상실한 정도인지 그 여부를 판단하여 이루어진 결과라면, 분명 취기는 불문하고 혈중알코올농도에만 의존하여 형벌을 가하는 음주운전과는 형평성에 있어서 서로 어긋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될 경우 누범이 아닌 이상 음주운전에 대한 양형기준에서는 사람의 인격이나 신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개인적 특수성은 완전히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각자에게 나름의 성품이 있고 인격이 있으며 신체기능이 같지 아니한데도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적이며 통일성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 사람이 그 종교에 언제 입문했는지, 종교에서 정하고 있는 교리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는지, 또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양심도 달라질 것이며, 무엇보다도 양심이라는 낱말의 해석이 일반과 사법부가 각각 다르며 그 역시도 사람마다 미묘하게나마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개개인의 행동과 지각은 그 범위가 너무나 넓고 예측불허이며, 사회와 결부되어 군집을 이루면 또 하나의 초유기체로서 기능하므로 필자처럼 따져 든다면 여기에 기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허무한 일이다.

한편, 우리의 문화 일면에는 어떤 개념을 공간과 시간적으로 분류하고 이를 구상화하는 습성이 있다. 위에서 설명한 음주운전의 사례와 같이 양형기준에 있어서 그것을 어느 방향으로 일관화하여 통일하고자 하는 것은 구상화의 일면이다. 구상화의 사례 중에서는 양분원리란 게 있다. 예컨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기혼과 미혼, 선의와 악의, 정의와 불의 등으로 양분하는 것이다. 엄격하게 보면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색깔론이나 블랙리스트도 양분원리에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나 분류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엄청난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양분 본성은 엔트로피의 증가에 대응하는 행위로서 무질서를 질서로 바로잡는 행위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번에 강화된 음주운전 관련법은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윤창호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법안으로 일명 ‘윤창호법’이다. 김영란법, 신해철법, 김용균법 등 법률 앞에 사람이름을 붙이는 것도 요즘의 트렌드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의 양분 본성과는 다소 무관하게 보이지만, 불특정의 어떤 사람이 한 번의 사고를 내면 또 하나의 법률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수천만의 인구를 품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아직 정해질 법률이 무수히 많다는 의미이며, 우리에게 뭔가를 분류하거나 정리할 기회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법률이나 제도는 아직까지도 매우 무질서한 상태라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에 양분 본성이 개입된다는 데 있다.

우리의 양분 본성은 대한민국을 남북으로 갈라놓더니 급기야 남녘을 태극기와 촛불로, 적폐와 비적폐로 양분하기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새해 덕담에서부터 촛불 운운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앞장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양분 구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한지면 위에서 ‘함께’를 무려 열 두 번씩이나 언급하고, ‘소통’ ‘공감’ ‘공정’ ‘평등’ ‘양보’ ‘타협’ 등의 미사여구로 도배를 하면서도 끝내 정의로운 것은 촛불이고 촛불과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신년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대필자가 있었다면 그 대필자의 문장실력에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화자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알 수 없는 언행이나 극단적인 사고가 오래도록 지속되거나 정도가 지나치면 그것은 질병으로 간주된다. 신체적으로 진단소견이 없더라도 이러한 증세가 더욱 구체화되거나 정도가 심해지면 강박증이나 결벽증, 치매, 더 나아가서는 정신분열이라는 질환으로 분류될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법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사람들. 사회를 리더하거나 통치하고 있는 사람들. 필자는 기해년 황금돼지해의 벽두를 맞이하여, 그들의 증세가 더 이상 질환으로 발전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창우 독자 (㈜정안PCE부설 기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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