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1~3면에 자세하게 소개..."미국, 2차 미북정상 앞두고 이번 사건 민감성 우려"
'서방망명 타진' 北 조성길은 김정은 사치품 조달 담당...한국엔 오지 않을 듯
태영호 전 공사 “사실상 김정은의 ‘유럽쪽 금고지기’이자 ‘사치품 밀수 조달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부인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가운데)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앞서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베네토 주에서 열린 한 문화행사에 참석한 모습. 조 대사대리의 잠적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등 외국 정부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제3국으로 망명을 타진 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부인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가운데)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앞서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베네토 주에서 열린 한 문화행사에 참석한 모습. 조 대사대리의 잠적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등 외국 정부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제3국으로 망명을 타진 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이탈리아 유력 일간이 4일(현지시간) 지난해 11월 초 이탈리아주재 북한 공관을 이탈해 가족과 함께 잠적한 조성길 북한 주이탈리아 대사대리(44.1등 서기관)가 미국 망명을 원하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이날 조성길과 관련한 내용을 1~3면에 걸쳐 자세하게 보도했다. 

신문은 이탈리아 외교부가 조성길로부터 망명 요청을 받은 적이 없고, 그를 보호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이탈리아의 한 외교 소식통으로부터 "조성길 대사대리가 미국으로의 망명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정보기관들에 도움과 보호를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대사관을 이탈한 조성길이 11월 중순 이탈리아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후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정보당국의 수장들이 미국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조성길의 신병과 관련해 은밀하게 협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탈리아 정보당국이 조성길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은 즉시 미국에 이를 알렸다고 전했다. 정보당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조성길의 망명 타진 시도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조성길의 잠적 소식이 처음 공개됨에 따라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신문은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제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양측의 조율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의 민감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성길이 미국과 망명 관련 논의를 시작한 사실을 북한이 알게되면 미북협상에 부정적인 효과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탈북 외교관들은 “(조성길도) 태영호 전 공사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어떤 대접을 받는지 봤을 것”이라며 “지금 한국에 올 경우 본인과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했다. 또한 “10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했는데 그걸 보고도 한국행을 택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조성길은 김정은의 사치품 조달 책임자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타는 영국제 호와 요트와 고급 와인 등 사치품은 이탈리아를 통해 북한에 조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조성길이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 정권의 치부를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한 명인 셈이다.

국정원은 3일 조성길에 대해 “고위급은 아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조성길은 부친과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엘리트 외교관이자 본인도 평양외국어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길의 부친은 1980년대 아프리카 국가의 대사를 지냈고 2000년 사망했다. 장인은 리도섭 전 주태국 대사다. 리도섭은 외무성에서 의전국장 자리를 오래 맡았으며, 김일정 정권 때 정상 행사를 관리했다. 주홍콩 총영사도 거쳤다.

조성길은 2015년 5월 현지에 부임했다. 3년 임기가 끝난 후 작년 11월 말까지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11월 초 잠적했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제3의 서방국가로 망명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제재로 사치품 등 물품 조달에 차질을 빚자 처벌이 두려워 잠적했을 것이란 설명이 나온다. 자녀 교육 문제가 망명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현재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당국에 의해 은신처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엘리트 외교관의 망명은 대북제재 장기화로 민심이 동요하는 북한 내부 상황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김정은의 지시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당·정·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검열·숙청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전 세계 대북제재가 더욱 강화되고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더욱 극심해지면서 엘리트층의 탈북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한으로 올지는 미지수다.

한편 조성길의 망명 시도와 관련해 북한당국은 당 국제부와 외무성 등을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와 함께 ‘놀가지’ 색출과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놀가지’는 노루를 뜻하는 북한말로 체제를 이탈해 해외나 남한으로 망명하는 인사를 지칭한다.

이번 사건은 김정은이 집권 8년차에 접어들며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돌발 사건으로 북한 내에서 충격파가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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