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국가부채비율 조작 논란' 이어 세금 더 걷기 위해 부동산가격 조작 의혹 파문
민간 감정평가사들 폭로…국토부,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 개입 논란
현진권 前한국재정학회장 "조세법률주의를 피해간 범법행위"…국토부 비판
100% 뛴 명동 표준공시지가 알고보니 국토부 별도 가이드라인 따른 결과
국토부 "감정평가사들에게 표준 공시지가 관련 정부 정책방향 설명했다"

명동8길 네이처리퍼블릭.(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부가 공시지가(公示地價)를 조사·평가하는 감정평가사들에게 구두(口頭)로 공시지가를 크게 올리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부채 비율을 조작하려 했다는 폭로에 이어 이번에는 국가가 나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해 부동산 가격 조작을 사실상 명령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조세법률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국가의 범법행위"라고 지적한다.

4일 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부동산평가과 소속 A사무관은 작년 12월 3일 한국감정원 서울 사무소에서 열린 감정원 지가공시협의회 회의에 참석한 감정평가사 20여 명에게 "4~5년에 걸쳐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를 시세의 70% 수준으로 올릴 예정이지만 시세가 ㎡당 3000만 원이 넘는 토지는 이번에 한꺼번에 모두 올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고 결과적으로 '1회 상승률 최대 100%'로 최종 조정됐다.

한국감정원이 최근 공개한 '2019년 표준지 공시지가'에 따르면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 10개 필지 중 7개의 공시지가 상승률이 비슷했다. ㎡당 가격 기준으로 명동8길 네이처리퍼블릭 부지가 9130만 원에서 1억8300만 원으로 100.4% 올랐고 명동길 우리은행 부지는 100.3%, 퇴계로 유니클로(플래그십 스토어) 부지는 100.1% 올랐다. 이런 결과를 두고 감정평가사들은 "정부가 평가 과정에 구두로 개입해 비싼 땅의 공시지가를 급등시키라는 지침을 내린 결과"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이날 "감정평가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표준지 공시지가 산정 전반에 걸친 정부 개입은 비밀리에 진행됐으며 문서를 남기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강남구, 용산구, 중구 등 고가의 토지를 조사·평가해야 하는 일부 감정평가사들에게 가이드라인이 전달됐고 다른 지역의 감정평가사들은 강남구, 용산구, 중구 등에 정부의 공시지가 가이드라인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감정원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경욱 의원으로부터 관련 회의 자료 제출을 요구받자 '회의가 자유토론으로 진행돼 회의 자료가 별도로 없습니다'라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올해는 지역 간 공시지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1년에 4회가량 진행되던 '균형평가회의'도 생략됐다. 감정평가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공시지가 급등 지침은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낸다는 시민단체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적으로 국토부는 감정평가사들이 산출한 공시지가에 대한 사후(事後) 통제권만 있다. 이번처럼 평가에 앞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작년 10월 국회에 출석한 김학규 한국감정원장도 "공시지가 산정은 민간 감정평가사들이 하는 업무로, 감정원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답한 바 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이나 시행령에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사후 통제권만 가진 정부가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퇴계로 유니클로.(연합뉴스 제공)

전문가들은 국토부의 가이드라인은 고액 자산가에 대한 '징벌적 과세'의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현진권 전 한국재정학회 회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세법률주의를 피해간 범법행위"라고 표준지 공시지가 급등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국토부를 비판했다.

현 전 회장은 이날 펜앤드마이크(PenN)와의 통화에서 "조세정책을 입안하는 원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조세법률주의고 이는 세금에 대한 정책은 반드시 국민들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통과해야만 집행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국가가 국민들에게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즉 국민들을 세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헌법에 명시된 조세법률주의를 피하기 위해 공시지가를 올려 세율을 조정하는 것은 명백한 꼼수고 이는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 전 회장은 "세금액은 세율 곱하기 과세표준인데 세율은 국회를 통화해야 하기에 세금액을 올리는 방법으로 과세표준인 공시지가를 감정평가사들을 압박해서 올리게 했다는 것은 조세법률주의가 아니라 조세행정주의고 이는 명백한 헌법위반"이라며 "소득-소비-재산에 정부는 세금을 부과하는데 재산은 소득·소비와 같이 정확한 데이터가 없기에 객관적인 자료를 얻기 위해 공시지가를 조사·평가하는데 공시지가라는 과세표준을 고가의 토지에 높게 측정하도록 감정평가사들을 압박했다면 부자를 때려잡겠다는 것이기에 조세 형평성 문제도 야기한다"고 덧붙였다.

국토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은 감정평가사는 '집중 점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감정평가사 B씨는 "지침을 어기고 상승률 100%에 미달하는 공시지가를 제출한 평가사들은 그러한 결과에 대해 이른바 '집중점검'을 받았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국토부와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사의 평가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집중점검 대상이 되면 평가 과정을 일일이 검증한다. 업계에서는 일종의 '징계'로 통한다. 또 다른 감정평가사 C씨는 "집중점검은 팀 단위로 늦은 시간까지 이뤄져 동료에게 '민폐'이기 때문에 평가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이라고 말했다.

감정평가사의 업무인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에 개입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국토부는 행정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토부는 감정평가사들 주장을 전면 부인하다 결국 지침을 내린 사실을 인정했다. 국토부는 시세가 급등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토지의 공시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감정평가사에 전달한 바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작년 12월 중순 표준공시지가 심사 과정에서 실무자가 감정평가사 등 심사 담당자에게 "그동안 시세가 급등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토지에 대해 공시가격의 형평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취지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토부는 "표준공시지가 조사 업무를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하면서 공시가격에 대한 정부 정책방향을 설명하고 공시가격 조사·평가 보고서 심사 과정에서도 공시가격의 적정성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공시지가 산정이 감정평가사의 고유 업무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정부가 조사·평가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는 지적에 대해 반박했다.

감정평가사는 유무형 재산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판정하여 그 결과를 가액으로 표시하는 전문직업인으로 국토부에서 주관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시행하는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일정 기간의 수습과정을 거친 후 공인된다. 정부에서 매년 고시하는 공시지가와 관련된 표준지의 조사·평가가 주된 업무다. 

공시지가는 국토부 장관이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해 토지이용상황이나 주변환경 기타 자연적,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해 표준지를 선정하고 적정 가격을 조사·평가해 매년 1월 1일 기준 단위면적당(㎡) 가격을 말하며 이를 공시지가 또는 표준공시지가라고 한다. 

공시지가는 재산을 갖고 있을 때 내는 보유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토지에 대한 보유세는 시세에 상관없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메긴다. 증여나 상속 재산에 대한 시가(증여일 전후 3개월 내 혹은 상속일 전후 6개월 내 매매가)가 없으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한다.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부과되고 있는 양도소득세도 공시지가에 영향을 받는다.  

세금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공시지가를 인상하겠다고 나선 국토부는 정책 입안 과정에서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인상 시나리오도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국토부 부동산평가과 소속 사무관 D씨는 "저희 과에는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세금 인상분에 대한 자료가 없고 검토한 적 없다"며 "국토부는 공시지가를 세금을 더 징수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실제 거래가격을 따라가지 못하는 공시지가를 올려 현실성 있는 정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시지가 인상 정책을 펼친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부동산세무팀에 따르면 네이처리퍼블릭 전체 부지의 공시지가는 작년 150억 원대에서 올해 300억 원대로 인상됐다. 국가에 내야 할 보유세는 2018년 6619만 원대에서 9929만 원대로 늘었다. ㎡당 가격은 네이처리퍼블릭 부지보다 낮지만 전체 부지가 더 커 보유세 부담액이 큰 명동 우리은행과 유니클로 부지도 올해, 작년보다 각각 1억 4000만 원, 1억 원 늘어난 세금을 내야한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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