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후원이 뇌물죄로 엮이면서 '정현 마케팅' 나설 분위기 안 돼
정현 후원계약 3월 만료...훈련지원 연장 불투명
다른 스포츠 종목에 대한 지원도 줄여나가는 움직임 확산

노박 조코비치를 꺾고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정현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 뜨겁다.(연합뉴스 제공)

 

한국인 최초로 테니스 메이저대회 8강에 이어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면서 대한민국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쓴 '테니스 혜성' 정현(21·세계랭킹 58위)에게 많은 국민이 열광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 곳곳이 우울하고 어두운 뉴스로 가득하고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국인이 테니스 메이저대회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것에 평소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런 국민적 응원에 힘입어 정현은 24일 8강전에서도 승리를 거둬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전에 진출했다. '테니스 황제'라 불리는 세계랭킹 2위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세계랭킹 20위 토마스 베르디흐(체코)의 8강전 승자와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앞서 16강전에서는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인 노박 조코비치(세계랭킹 14위)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정현에 대한 뜨거운 국민적 관심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1992년부터 국내 테니스를 육성하는데 앞장섰고 2012년부터 정현을 후원해온 삼성은 소리내서 웃지 못하고 있다.

보통 기업이 후원하는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정현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란다"면서 "그 외에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체육계에서는 삼성의 승마 후원이 제3자 뇌물공여죄로 '황당하게' 엮이면서 적극적인 '정현 마케팅'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삼성은 최근 스포츠 후원으로 그룹 차원의 위기를 겪고 있다. 승마 후원 과정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제3자 뇌물공여죄’ 혐의로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정현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는 삼성증권의 오랜 후원도 한몫했다"며 "삼성증권은 정현의 해외 대회 체재비와 숙소 비용 지원 등 테니스 훈련을 위한 비용을 지원해 왔고 대회 성적과 세계 랭킹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 2015년 자체 테니스팀을 해체하면서 정현에 대한 개인 후원 계약을 진행했다. 지난 3년간 삼성은 정현에게 16억5천만 원을 후원했다.

 

대한민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쓴 정현 선수.(연합뉴스 제공)

 

삼성이 스포츠 후원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3월 만료되는 정현에 대한 지원을 삼성이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테니스협회에 따르면 후원을 연장하겠다는 삼성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 

대한테니스협회 관계자는 "최순실 사건 이후 삼성이 스포츠 후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스포츠계에서는 팽배하다"며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정현 선수에 대한 추가 후원 계약도 없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야기가 많이 떠돈다"고 말했다. 

삼성이 비인기종목에 대한 후원을 일부 줄이고 있는 분위기도 정현에 대한 후원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삼성은 5대 프로스포츠(야구, 농구, 축구, 배구, 게임) 외에도 럭비, 탁구, 테니스, 배드민턴, 육상, 태권도, 레슬링, 승마 등을 지원해왔다. 지난 2015년 럭비와 테니스팀을 해체했고 최근 승마 지원으로 그룹차원의 위기에 빠진 상태다.

테니스 유망주 발굴과 육성을 위해 지난 3년간 삼성이 테니스협회에 지원하던 후원금은 사라지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에 따르면 유망주 발굴 및 육성 후원금에 대한 삼성과의 대화는 현재 없다.

정현은 호주오픈 4강에 진출했다. 대한민국 테니스 선수 중 메이저 대회 4강 진출 선수는 정현이 유일하다. 영국, 미국, 호주, 프랑스 등 4대 메이저 대회 중 지난 2000년 이형택(42)이 미국 대회에서 16강에 든 것이 남자 단식 최고 성적이었다.

이형택 역시 삼성의 지원의 성공사례다. 1995년 19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 이형택은 삼성의 공식 후원을 받기 시작했고 2007년 8월 세계랭킹 36위까지 달성한 바 있다.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정현이 삼성의 후원이 종료되면 훈련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랭킹 58위인 정현은 이번 호주오픈이 종료되면 50위권 안으로 들어갈 것은 확실시되고 있다.

4강전 결과에 따라서는 30위권 진입도 가능하다는 프로 테니스 협회(ATP·the Association of Tennis Professionals)의 분석까지 나오고 있어 이형택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대되고 있다. 

정현의 에이전트 관계자는 "현재 삼성과의 후원 계약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삼성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논의해야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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