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보도..."이탈리아 당국에 가족과 함께 신병 보호 요청"
한국행 희망 여부는 확인 안 돼...김정은 집권 후 대사급 망명은 처음
국정원 "지난해 11월 초 공관 이탈 후 부부가 함께 잠적...망명 타진 확인"
외교부 "확인해줄 수 없다", 청와대 "아는 바 없다"
자유한국당 "정부가 한국으로 모셔오라"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이탈리아 가톨릭 자선단체 산테지디오의 마르코 임팔리아초 위원장 일행과 면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이탈리아 가톨릭 자선단체 산테지디오의 마르코 임팔리아초 위원장 일행과 면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한의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44)가 최근 잠적해 서방 국가로 망명을 타진 중인 것으로 3일 확인됐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이날 조 대사대리가 최근 망명을 타진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에서 정보위 소속 민주당 간사인 김민기 의원에게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망명설'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초 공관을 이탈해서 부부가 함께 잠적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조성길 대사대리는 2018년 11월 말 임기가 만료되는데 임기만료에 앞서 11월 초 공관을 이탈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국정원은 조 대사대리가 잠적한 후 한국정부와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조 대사대리의 현재 행방이나 부인 외 다른 가족도 함께 잠적했는지 여부, 출신 성분, 북한의 파악 여부 등에 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국정원은 조 대사대리의 망명 의사가 타진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공관을 이탈해 잠적 상태에 있다"고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기 의원은 "제3국 망명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2달간 한국정부와 연라을 취하지 않은 것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조성길은 75년생으로 올해 44세다. 2015년 5월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한 뒤 1등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주 이탈리아 북한 공관에는 3등 서기관 1명, 1등 서기관 2명, 참사관 등 4명이 근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급상으로는 조 대사대리보다 상급자인 참사관이 있지만, 참사관은 농업 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 조 1등 서기관이 대사대리를 맡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때문에 아그레망(외교 사절 정식 임명에 대한 상대국의 승낙)이 나지 않아 정식 대사가 아니라 대사대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이탈리아는 2000년 1월 수교했다. 북한은 같은 해 7월 이탈리아에 대사관을 개설하고 대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2017년 9월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 등 지속해서 핵미사일 도발을 벌이자 이탈리아 당국은 문정남 대사를 추방했다. 

앞서 중앙일보는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이탈리아 로마에서 근무 중이던 북한 대사관의 대사대리가 지난달 초 이탈리아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서방국가로 망명을 요청했고 이탈리아 당국이 그의 신병을 안전한 곳에서 보호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변보호 요청은 제3국 망명을 진행하는 동안 본국(북한)으로 송환되지 않기 위한 외교 절차다.

이탈리아 당국은 그와 가족들의 신병을 확보해 안전한 곳에서 보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 대사대리의 망명 시도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2015년 5월 현지에 부임했던 점을 고려하면 3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근무한 뒤 본국에 귀환(소환)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이에 불응해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는 점에서 자녀 교육 문제로 망명을 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한국행도 자녀 교육 문제가 직접적인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는 중앙일보에 “북한 외교관 중 특별한 경우 한 곳에 10년 이상씩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2~3년 주기로 인사이동이 있다”며 “특히 선진국에서 근무하던 외교관들은 평양으로 들어오라는 소환명령을 받으면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 출신 인사는 “선진 교육을 받았던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소환 소식을 접한 일부 외교관은 망명을 고민하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북한에선 외교관이나 해외 대표부에 나가는 사람들의 가족 일부를 평양에 남기도록 하는데 출신성분이나 배경이 든든한 이들은 모든 가족이 동행한다”고 덧붙였다. 조성길은 부인 및 자녀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생활했다. 이를 놓고 그가 북한 내 최고 핵심계층 집안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탈리아 대사 역할을 하던 조 대사대리의 잠적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당국은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주축이 돼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반이 구성됐고, 이 조사반이 최근 이탈리아를 찾아 상황 파악과 함께 외무성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는 첩보가 돌고 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들은 “이런 정도의 사안이면 최고지도자에게 당연히 보고됐을 것이고 역시 당연히 철저한 조사 지시가 내려갔을 것”이라며 “최고지도자가 격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과거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던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은 고영환(1991년, 콩고 대사관 1등 서기관), 현성일(96년, 잠비아 대사관 3등 서기관) 등 여러 차례가 있었다. 2016년엔 태영호 영국 공사가 망명했다. 앞서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영국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형(장승호)과 가족을 동반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한 뒤 대사급의 망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이날 오전 조 대사대리의 망명 타진 소식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는 우리나라가 이분을 모셔올 수 있도록 노력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멈칫거리거나 해서 귀하게 모셔야 할 사람을 다른 나라로 가게 해선 안 된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최근 우리 쪽으로 넘어온 탈북인사조차도 여러 가지 신변 안전을 걱정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며 "앞으로 북한 체제는 이와 유사한 일들 많이 일어날 건데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반드시 이런 문제를 챙겨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조성길의 한국행 희망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는 상황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버리고 우리민족끼리를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엊그제 KBS 대담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이 '비핵화 평화정착 앞으로 잘될 수 있게 천안, 연평도 일을 이해하면서 가자'고 했다. 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두 차례나 천안함 폭침이 아닌 침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결국 천안함 폭침을 조작이라고 규명할 날이 머지않을 것 아닌가"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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