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신년사대비 "사회주의" 언급 21회→32회로 늘고 "사회주의 국가 단결" 부르짖어
文정권과 합의들 열거하며 "불가침선언" 주장…南에만 "군사연습 불허, 전략자산 반입 중지" 요구
핵폐기→핵동결 물타며 "굳건한 담보" "美와 새로운 관계수립" 운운…사실상 핵보유국 선전
이미 작년 12월 하순·말일 "조선반도비핵화는 北비핵화 아니다" 美·韓에 강변해
국제사회 對北제재·압박 철회 요구하며 "새로운 길 모색 불가피할수도" 핵위협 재개협박
文정권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요구 노골화도…"외부세력 간섭 불허" 美 배격 압박

2019년 1월1일 오전 9시 북한 조선중앙TV가 발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 녹화중계 영상.(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7년째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정은 신년사는 북한 정권이 스스로 '북한 비핵화와 다르다'고 강변한 "조선반도 비핵화"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수사(修辭)만 눈에 띄었다.

자신들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일절 제거하지 않고 미국에 이른바 '상응조치'부터 요구하는 논리도 반복됐다. 특히 이번 신년사에서는 "사회주의" 언급 빈도가 지난해보다 11회나 늘어(21회→32회)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배격하는 것에 다름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정은 신년사는 1일 오전 9시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중계로 방송됐다. 단상에 몸을 의지한 채 신년사를 발표했던 예년과 달리 김정은은 앉아서 A4용지로 약 12장 분량의 신년사를 읽었다. 

2019년 1월1일 오전 9시 북한 조선중앙TV가 발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 녹화중계 영상.(사진=연합뉴스)

조선중앙TV에 따르면 김정은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내부에서 여동생인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3층 서기실 실장'으로 알려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접견실로 이동했다.

접견실 내부는 벽면에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의 대형 액자가 걸려 있었고 서방국가 지도자들의 집무실을 흉내낸 듯 책장으로 장식돼 있었다. 김정은은 이 접견실 내 낮은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읊었다.

신년사 초반부에서 김정은은 "사회주의에 대한 필승의 신념을 지니고 강고한 투쟁의 길을 걸어온 우리 인민"이라며 "자주권 수호와 평화번영의 굳건한 담보를 마련하고 조국 건설이 더 높은 점령하기 위한 혁명적 대진군에 떨쳐나서게 됐다"고 자평했다.

'굳건한 담보 마련' 언급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 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내 경제에 관해서는 "인민경제와 주체화 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의미있고 소중한 전진이 이룩됐다"며 부문별로 성과를 치하한 뒤 "우리 인민의 불굴의 투쟁에 의하여 우리 국가의 자강력은 끊임없이 육성되고 사회주의 강국으로 향한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또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 이것이 우리가 들고 나가야 할 구호"라며 "사회주의 자립경제 위력을 더욱 강화해야 하겠다"고 독려했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 2017년 1월1일 오전 발표된 신년사 영상에서는 단상에 의지해 선 채로 연설하는 모습으로 등장한 바 있다.(그래픽=연합뉴스)

김정은은 "내각과 국가경제 지도부들은 사회주의 경제 법칙에 맞게 비핵화와 개혁과 사업, 재정 및 경제적 공간들이 기업체들의 생산 활성화와 확대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작용하도록 하여야 한다"며 "인민 경제 모든 분야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 수행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 우리 국가의 정치 힘을 백방으로 다져나가야 하겠다. 주체의 인민권. 인민철학을 당과 국가 활동에 철저히 구현하여 광범한 곤죽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며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정세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신념으로 간직하고 우리 식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대남(對南)정책에 대해서는 "조선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를 열어놓으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담아 채택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북남 군사분야 합의서는 북남 사이 무력에 의한 동족상잔을 종식시킬 것을 확약한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써 참으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했다.

아울러 "북남 사이 군사적 적대관계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고 조선반도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라며 "북과 남은 이미 합의한 대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지상과 공중, 해상을 비롯한 조선반도 전역으로 이어놓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를 향해 "외세와의 합동 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고 종용했다. 

정작 북측이 남북 정권간 합의와 관련 어떤 '실천적 조치'를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월1일 김정은의 신년사 녹화중계를 방송하면서 '새벽 1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그대로 내보냈다가, 이후 장면에서 모자이크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은 대미(對美) 메시지로는 "역사적인 첫 조미 수뇌상봉(6.12 미북정상회담 지칭)과 회담은 가장 적대적이던 조미(북-미) 관계를 극적으로 전환시켰다"고 운을 뗐다.

이어 "6.12 조미 공동선언에서 천명한 대로 새 세기 요구에 맞는 두 나라의 요구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발언했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라는 수사를 제외하면, 한반도 내 미 핵우산 철수를 노린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 '조선반도 비핵화'가 결국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바로 전날(지난해 12월31일)까지도,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궁극적목적이 과연 무엇인가)를 비롯해 '조선의 오늘'(안보전략이 아니라 대결전략이다), '메아리'(곰팡내가 나는 안보전략) 등 각종 선전매체를 통해 "남조선 당국은 아직도 '조선반도 비핵화'와 '북 비핵화'라는 개념의 차이가 무엇이고, 그것을 뒤섞어 쓰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과연 모른단 말인가"라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청와대가 최근 '국가안보전략'을 발간한 것이 기존의 대북원칙론보다도 크게 후퇴했음에도, 북측은 "조선반도비핵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나란히 명기"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 등 문구가 담겼다며 노골적인 내정간섭에 나선 것이다.

북한 정권은 지난해 12월 하순쯤에도 '우리민족끼리' 등 선전매체를 통해 "조선반도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그릇된 인식"이 있다면서, "조선반도비핵화라는 큰 개념을 '북 비핵화'라는 부분적 개념과 동일시한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동안 미국과 한국 자유진영과 국제사회에서 촉구해 온 북핵 폐기는는커녕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2018년 12월31일 북한 관영 선전매체 중 하나인 '조선의 오늘'이 청와대의 국가안보전략 발표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아직도 조선반도비핵화와 북비핵화라는 개념의 차이가 무엇이고 그것을 뒤섞어 쓰면 안 된다"고 강변한 논평 일부.(사진=대북동향사이트 캡처)

아울러 선전매체들은 잇따라 "낡은 길에서 장벽에 부딪치기보다 새 길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대미 회유 메시지를 보냈는데, 공교롭게도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을 미국에 요구했다.

김정은은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다"며 사실상 '핵 폐기' 문제를 '핵 동결'로 치환하는 논리를 폈다.

이어 "우리의 주동적이며 선제적인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하는 실천 행동으로 화답에 나선다면 두 나라 관계는 보다 더 확실하고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하는 과정을 통해서 훌륭하고도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될 것"이라며 "하루 빨리 과거를 매듭짓고 두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시대 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갈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 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도 "(미국이)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모습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수도 있다"고 '핵 위협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신년사 말미에서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에 따라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과 협조를 계속 강화하며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상 반미(反美) 사회주의 국가 단결을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단된 북한 개성공단.(사진=연합뉴스)

이밖에도 김정은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현금이 반입되는 창구 역할을 하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노골적으로 요구해 문재인 정권의 향후 대응 귀추가 주목된다.

김정은은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공고히 하고 온 겨레가 북남 관계 개선의 덕을 실제로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며 "당면하여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모두 북측이 수혜자인 사업인데, 마치 북측이 '허가 주체'라는 듯한 궤변으로 풀이된다. 금강산관광은 2008년 북한 군인의 한국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 피살사건으로 중단됐고, 2010년 천안함 폭침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5.24 조치 이후 제재대상이 됐다. 개성공단은 북측의 일방적인 통행·물품반입 제재 갑질, 나아가 핵·탄도미사일 고도화 강행에 따라 2016년 박근혜 정부 들어 폐쇄됐다. 

김정은은 그러나 "북과 남이 굳게 손잡고 겨레의 단합된 힘에 의한다면, 외부의 온갖 제재와 압박도 그 어떤 도전과 시련을 민족 번영의 활로를 열어나가려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문재인 정권 회유에 나섰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남 관계를 저들의 구미와 이익에 복종시키려 하면서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외부 세력의 간섭과 개입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배격' 의지를 재차 밝혔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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