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국정 망친 정권에게 ‘버전 2.0’은 안 된다
[김행범 칼럼] 국정 망친 정권에게 ‘버전 2.0’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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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레임덕 피할 수 없어...안보-경제 정책 틀 완전히 바꿔야
버전 바꿔서는 국가 실패로 귀착될 것...궁극적으로는 정권 교체 필요
더 이상 국정을 실험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성과 주도 심판’ 내려야...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버전(version) 2.0’은 기존 프로그램의 결함을 보완해 출시되는 제품이다. 이 정부의 경제팀 교체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지지보다 많아진 채 새해로 넘어가는 이 시점이다. 이 정부의 국정 기조 중 가장 중요한 안보와 경제의 참담한 실패를 보면 단지 그 버전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우선, 안보 실패는 방위력 약화의 차원이 아니라 표적을 상실하고 허무 상태에 빠진 수준이다. 2018년 초 김정은의 신년사 한마디로 이 나라 대통령이 깜박 죽어, 흥분과 환상 속으로 일 년 내내 나라를 끌고 다녔다. 요란한 회의들, 전방 초소(GP) 파괴 쇼 및 남북 철도 연결의 이벤트를 벌였다. 그러나 이 연말 시점에 돌아온 결과는 참담하다. 북이 핵실험을 멈춘 것은 문재인의 중재 결실이 아니라 핵 실험은 끝내고 대량생산 단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일 여년 후 북핵 탄두는 200개가 된다고 한다. 온갖 평화 놀음 벌인 것이 세계 앞에 무안하고 절망스럽다.

참담한 건 그 뿐 아니다. 비핵화를 위해 뛰어다녔다 대통령은 자찬하겠지만 비핵화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바로 며칠 전 북한은 비핵화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핵위협제거’라며 규정하고 나왔다. 이런 걸 간과하고 대통령은 제 좋을 대로만 해석하곤 저 혼자 웃고 다닌 셈이다. 김정은과 몇 번 만나면서도 그 점 하나 제대로 명확히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처음으로’ 주재한 것은 취임 후 19개월이나 지나 몇 주 전이었다. 그만큼 오직 북핵에 몰두해 온 것이다. 안보의 최고책임자가 북에게 핵의 대량생산에 들어갈 시간을 주면서 미국의 비핵화 혹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위해 부지런히 뛰어 다녔단 셈이다. 한반도 운전자가 아니라 김정은의 조수노릇하다 뒤통수 맞고 또 다시 그의 새 신년사에 목을 빼고 있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또 다른 대실패는 경제이다. 대통령은 몇 주 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새로운 경제정책의 보완조치 필요성을 공언함으로써 이제 바른 정책으로 돌아서리라는 기대를 잠시 주었었다. 그러나 그 뒤에 보여주는 상황은 그와는 딴 판이다. 오히려 청와대 측근들은 내년엔 소득주도성장이 뭔지 명확히 보여줄 ‘소득주도성장 2.0'을 보여주겠단다. 더 나쁜 결과들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최저임금법시행령 개정이 오히려 최저임금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도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공정경제도 지금의 정책기조를 일관할 것이라고 선포되었다. 변화를 기대하던 경제계에 찬물을 뿌렸다. 과거 30년 동안 공정경제가 실패한 이유는 방법론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니 이제 더 효과적인 새 방법으로 다루겠다고 한다. 결국, 경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공정경제 정책 근본을 재검토하기보다 집행 방법의 버그만을 고쳐 계속 밀고 가겠다는 게 이 정부의 의도이다.

문재인 경제정책의 골간이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책 실패의 자백이 되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할지언정 자신들이 틀렸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018년 세밑에 나온 좋은 소식은 한국이 세계 7번째로 6천억 달러의 수출 대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간과해선 안 될 점은 그 중 2/3인 4천억 달러 성과는 한국 기업들 중 0.9% 정도에 불과한 대기업들이 만들었다는 것. 민주주의를 왜곡해 만든 ‘경제민주화’와 ‘공정경제’ 밑에서, 적폐와 악덕경영자로 낙인찍히고 그토록 투옥되고 얻어맞고도 이만한 성과 만들어 가져 오는 걸 보니 한국 대기업들은 참 대단하고, 지나치게 선량하여 정부에 화를 낼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 성과를 이 정권의 경제 성과로 해석해선 안 되며, 실은 오히려 경제 실패의 또 다른 반증이다. 기업에게 반(反)시장적 적대가 아니라 경제 활동 여건을 잘 만들어 주었더라면 분명 더 좋은 성과가 나왔을 것이다. 가장 구박했던 자녀가 뜻밖에 효자로 되어 돌아온다면 그 칭송은 그를 쫓아내었던 분별력 없는 부모가 아니라 자녀에게로 돌려야 할 것이다. 체면 세워준 기업가들에게 대통령은 진정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망외의 성과마저 없었다면 문재인은 지금 쫓겨나도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성과를 냉철히 종합하면, 밖으로는 북핵 무장의 조력자나 방조자로, 안으로는 경제몰락의 주역이라고 요악된다. 그가 공을 들여온 안보와 소득주도성장에서는 삽질만 했지만, 억압과 징책의 대상으로 삼았던 기업가들이 오히려 가장 바람직한 성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국정의 기조 및 중점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에서 만든 성과를 보면 이제 레임덕(lame duck)에 들어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지 집권자에 대한 대중의 식상함 때문이 아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안보와 경제의 두 핵심 정책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어색한 ‘v. 2.0’식 미봉책으로 도주하지 말라. 당신네 정권의 실패로 끝날지언정 국가의 실패까지 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정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단지 정책집행상의 버그(bug) 정도라 변명하며 버전 수 바꾸어 폭망을 이어가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고용 및 기타 지표가 사상 최악으로 내려앉는 상황에 ‘소득주도성장 버전 2.0’은 의미도 없다.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될 안보정책에서 버전 2.0식 아류를 꺼낸다면 그 자체가 파국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버전을 바꾸려 말고 프로그램 자체를 버려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 국정운영 게임의 주체인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 국정을 더 이상 실험대상으로 삼을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성과가 주도하는 심판’을 내려야 한다.

세밑은 새 날에 대한 희망을 말할만한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보와 경제에 너무 무능하거나, 북 정권 동조에 너무 유능한 대통령을 두었다. 그 때문에 한국인은 돼지띠의 새해 아침부터 ‘복 돼지’는커녕 핵탄두를 몸에 감은 ‘핵 돼지’(核豚)의 이미지에 눌려 살아야 할 판이다. 새해에는 이미 무수한 헛삽질로 지지를 조기 상실한 레임덕, 곧 다리를 절뚝거리는 오리가 핵 돼지의 앞길을 부지런히 쓸어주고 있는 장면을 정말 보고 싶지 않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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