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발효로 즉시·단계적 관세 철폐…美 복귀는 미지수
USMCA과 RCEP에 이어 3대 자유무역지대...환경·국영기업 등 이슈 규정 포함
일본, 세계 경제 1/3에 달하는 자유무역권 들어간다
한국, 미가입시 세계 무역질서에서 입지 줄어들 수 있어 검토 중

지난 3월 칠레에서 서명식에 참석한 참여국 장관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칠레에서 서명식에 참석한 참여국 장관들 [연합뉴스]

 

일본과 호주, 캐나다 등 환태평양지역 11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30일 발효됐다.

이 협정에 서명한 나라는 호주와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으로 이들 11개국이 세계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9%, 세계 교역량에서의 비중은 15.2%에 달한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이어 3번째로 규모가 큰 자유무역 경제권이 탄생한 셈이다.

이 협정은 6개국 이상이 자국 의회의 비준을 받으면 그 시점부터 60일 이후 발효된다는 조항에 따라 멕시코, 일본,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가 국내 절차를 마치면서 이날 발효됐다.

이들 6개국은 먼저 이날 1차 관세 인하에 돌입했으며 내년 1월 14일 7번째 비준국인 베트남이 관세 인하에 들어갈 예정이다.

비준안이 의회에 계류 중인 나머지 4개국은 말레이시아, 페루, 칠레, 브루나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자국 비준 절차를 완료하고 나서 60일 후 협정이 개별 발효된다.

즉시·단계적 관세 철폐…환경·국영기업 등 이슈 규정 포함

CPTPP는 참여국 간 상품 교역에 관세를 즉각적으로 철폐하거나 최장 21년간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교역 자유화를 골자로 한다.

나라별로 민감한 품목에 대해서는 부분적 감세나 저율관세할당(TRQ), 장기적 철폐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호주는 참여국들에서 수입하는 자동차에 대한 5% 관세를 즉시 철폐했고 캐나다는 6.1%의 자동차 관세를 5년차에 없애기로 했다.

베트남도 자동차 관세를 70%에서 10여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앨 예정이다.

일본은 수입 쇠고기 관세를 기존 38.5%에서 16년에 걸쳐 9%로 낮추고 와인에 대한 15% 관세는 단계별로 인하하다가 2025년 완전히 철폐한다.

CPTPP는 전자상거래, 노동, 환경, 국영기업(SOE), 중소기업(SME) 등 새로운 경제·통상 현안을 다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교역국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 이를 제한할 가능성을 열어뒀고 참여국들이 높은 수준의 환경 보호를 추구하도록 한 규정을 포함했으며 중소기업이 협정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방안을 담았다.

원산지 판정 시 생산 재료와 공정을 모두 누적해 고려하는 완전 누적을 일부 품목에 도입한 것도 특징이다.

이 협정은 2016년 체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모태로 한다.

미국 등 12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무역협정으로 TPP를 체결했다. 그러나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작년 1월 말 탈퇴했다.

이에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 미국·일본 주도로 환태평양 경제협력체를 형성한다는 당초 목적이 퇴색하고 세계 GDP의 37.5%에 달했던 규모도 쪼그라들면서 TPP는 한때 무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머지 11개국은 상품 양허 협상 결과를 유지하되 미국이 주장한 지적재산권·투자·정부 조달·환경 등 부문에서 29개 조항을 적용을 유예하는 데 합의하고 명칭을 CPTPP로 바꿔 올해 3월 협정에 서명했다.

각국의 의회 비준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무역 전쟁 등 통상 환경이 악화하면서 참여국들은 비준 절차 처리에 속도를 냈다.

한국을 비롯해 영국, 태국, 대만 등도 이 협정에 가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세계 경제 1/3에 달하는 자유무역권 들어간다...미국의 복귀는 미지수

일본은 EU와의 FTA 협정인 일·EU 경제연대협정(EPA)의 내년 2월1일 발효를 앞두고 있는데, CPTPP와 일·EU EPA 참가국의 GDP를 합하면 34.9%에 달한다.

두 협정을 통해 GDP 기준 세계 경제의 3분의 1에 달하는 거대 자유무역권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국제무역투자연구소에 따르면 CPTPP 발효로 일본 기업들의 관세 부담은 연간 30억 달러(약 3조3천51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협정 발효를 통해 수입 농수산물의 관세가 철폐되거나 대폭 인하됨에 따라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가격에 육류나 과일 등을 구입하는 혜택을 보게 됐다.

소고기 수입 관세는 38.5%였던 것이 협정 발효로 27.5%로 낮아지며 다시 향후 16년에 걸쳐 9%까지 내려간다. 키위나 포도 같은 과일의 관세는 협정 발효와 함께 철폐된다.

하지만 저가의 해외 농수산물이 밀려들면서 일본 내 농가들은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 정부는 CPTPP 발효로 농수산물 연간 생산액이 1천500억엔(약 1조5천190억원) 줄어들 것으로 보고, 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농가를 보조금 등을 통해 지원할 방침이다.

협정 발효로 일본은 다른 가입국에 수출하는 공산품에 대해 관세 인하 효과를 보게 됐다. 캐나다에 수출하는 승용차의 경우 6.1%인 관세가 5년 후 철폐된다.

일본은 당초 함께 협정을 주도했다가 작년 초 탈퇴를 선언한 미국이 협정에 복귀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미국이 일본과의 양자간 FTA 협정에 힘을 쏟고 있는 미국이 복귀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당장 다음달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양국간 '새로운 무역 협정' 협상에서 물품은 물론 서비스와 지적 재산권 등도 포함한 FTA 수준의 협의를 요구하며 일본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미가입시 세계 무역질서에서 입지 줄어들 수 있어 검토 중

CPTPP의 경제 규모가 크지만 당장 우리 무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우리나라는 11개국 중 일본,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9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 CPTPP가 아니더라도 기존 FTA를 통해 시장개방 효과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주요국에서 우리나라에 버금가는 시장개방을 얻어내고 CPTPP가 향후 세계 무역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 우리도 가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먼저 CTPPP로인해 우리 기업이 이들 국가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할 때 누려온 FTA 이점은 사라진다.

CPTPP 전에는 일본이 캐나다, 호주 등에 수출할 때 이들 국가와 FTA를 체결한 우리나라보다 높은 관세를 냈지만, 앞으로는 수출 조건이 비슷해진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일본이 FTA를 안 하는 동안 우리가 여러 국가와 FTA를 체결하면서 일본 기업에 비교우위를 많이 갖고 있었는데 일본이 우리를 상당히 추격하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향후 CPTPP에 더 많이 국가가 가입하고 영향력이 커질 경우를 대비해 가입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특히 CPTPP는 거의 모든 상품의 관세를 철폐하는 등 자유화 수준이 상당히 높고, 노동·환경, 전자상거래 등에 대한 선진 규범을 담아 세계 무역질서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향후 CPTPP를 중심으로 새로운 무역 분야인 디지털 통상 등에 대한 규범 논의가 진행될 경우 우리나라가 배제될 위험이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CPTPP가 세계 무역질서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단순히 경제적 이해만 따질 게 아니라 세계 무역질서에서 한국의 입지나 전략 차원에서 가입을 중장기적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CPTPP 제조업계 간담회'(서울=연합뉴스)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린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제조업계 간담회'에서 김기준 산업통상자원부 FTA 교섭관과 기계산업진흥회, 석유화학협회, 자동차산업협회 등 17개 협·단체와 무역협회, KOTRA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2018.8.16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산업부 'CPTPP 제조업계 간담회'(서울=연합뉴스)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린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제조업계 간담회'에서 김기준 산업통상자원부 FTA 교섭관과 기계산업진흥회, 석유화학협회, 자동차산업협회 등 17개 협·단체와 무역협회, KOTRA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2018.8.16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산업계에서는 멕시코·베트남·말레이시아 등에 대한 수출 확대 기대와 한일 시장개방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가 공존한다.

CPTPP는 일본과 FTA를 체결하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그러면 일본과의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 일본과의 교역에서 283억1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에 국내 시장을 개방할 경우 자동차, 기계, 부품·소재 등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경영난을 겪는 자동차 업계는 CPTPP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이 탈퇴한 상황에서 한국의 CPTPP 가입은 일본과의 FTA 체결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에 대한 민감성을 충분히 고려한 양허가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가입을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에는 미국이 CPTPP로 복귀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한국이 서두르지 않으면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미국의 가입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은 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CPTPP 같은 다자무역체계보다 상대국을 힘으로 누르기 쉽고 더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양자 무역협정을 선호해 현재 일본, EU와 각각 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더군다나 CPTPP 회원국들은 아직 가입 희망국에 대한 가입 절차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들은 내년 1월에야 가입 조건을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산업계 영향과 다른 국가 동향 등을 분석하면서 가입 여부를 계속 검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해관계자와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서 현재 당면한 통상환경, CPTPP측의 신규 가입 논의 동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가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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