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 기자.

언론계 선배들은 "기자는 의심이 많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2011년 6월부터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수많은 선배들을 만났지만 간혹 '의심'이라는 단어를 '호기심'이라는 다소 능동적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로 치환하는 선배는 있었지만 기자가 쉽게 누군가나 무엇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조언을 벗어나지 않았다.

직업적으로 순진과 거리를 둬야 하는 이유는 기자가 무르면 이용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발달하면서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만큼 공급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정보를 발굴하고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전문적인 직업훈련까지 받는 기자의 손과 입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취재하는 과정에서 의심을 가장 많이 하는 경우는 제보자가 나타났을 때다. 제보자는 겉으로는 사회정의를 운운하지만 대개는 특수한 목적을 갖고 있다.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여론을 이용하려는 것이 제보자가 가진 특수 목적의 주다. 

의심 수위가 가장 낮아지는 취재는 정부를 대상으로 할 때다. 특히 정부가 공개하는 보도자료는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국가가 국민을 속인다는 것은 발각됐을 때의 위험성이 너무 크기에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다는 근거없는 안도감이 기자의 임무를 무디게 만든다.

보도자료는 기자들의 취재를 돕기 위해 작성된 문건이지만 사실 제보자와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환경부가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사실관계가 잘못 정리된 내용이 포함돼 다수 기자들이 가짜뉴스를 보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환경부는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에서 올해 6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4대강 자연성회복 사업의 성과로 낙동강 강정고령보에 8년 만에 멸종위기 철새, 흑두루미가 발견됐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흑두루미는 4대강 정비사업과 무관하게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낙동강 강정고령보를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베리아 습지에 서식하는 흑두루미는 겨울이면 일본으로 이동하는데 낙동강에 잠시 머문다.

문재인 정권의 환경부는 4대강 보 개방이 강의 자연성을 회복시켰고 그 결과 낙동강 강정고령보에 흑두루미가 8년 만에 찾아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4대강 정비사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 중에 11개 보를 개방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추어올리고픈 환경부의 목적은 달성됐다. 

4대강 정비사업과 무관하게 매년 낙동강 강정고령보를 찾는 흑두루미를 마치 4대강 보 개방의 효과로 8년 만에 발견됐다고 작성된 환경부의 보도자료를 받은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가짜뉴스를 작성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대한민국 언론의 역사 그 자체인 주류 신문사들까지 이 우스꽝스러운 가짜뉴스 행렬에 동참했다. 

환경부는 4대강 정비사업이 완료된 후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강정고령보에서 흑두루미가 발견됐다는 보도자료를 냈었다. 당시는 4대강 정비사업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올해는 4대강 정비사업을 역행하는 자연성회복 사업의 효과로 흑두루미가 8년 만에 강정고령보를 찾았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정권이 바뀌면서 4대강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고 보도자료의 목적도 달라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도자료를 낸 것이지 기자들에게 기사를 작성하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이번 흑두루미 가짜뉴스 사건을 어떻게 수습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가짜뉴스를 보도한 책임은 사실 기자의 몫이다. 기자에게 제보자와 보도자료는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진실을 검증하는 일은 우리의 유일한 업무고 그 시작은 의심일 것이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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