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담 미국이 져야 하는 건 부담...이제 그들도 돈 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군부대인 바그다드 서쪽 알 아사드 공군기지를 예고 없이 방문, 장병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외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군부대인 바그다드 서쪽 알 아사드 공군기지를 예고 없이 방문, 장병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외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는 발언을 내놓는 가운데 26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의 경찰일 수는 없다”며 “모든 부담을 우리 미국이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는 전날 발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으로, ‘세계의 경찰’로 상징돼온 미국의 개입주의 외교 노선에 종지부를 찍고 ‘고립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까지 내비치며 동맹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라크 바그다드 서쪽의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전격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시리아 철군에 대한 비판론을 반박하는 가운데 나왔다.

AFP통신은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분쟁지역 내 미군 부대 방문인 이번 이라크 깜짝 방문을 자신의 시리아 철군 방침 방어 및 ‘세계의 경찰’ 역할론에 대한 종식을 선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며 “다국적 동맹국들로부터 철수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방어하려고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라크 방문에서 “모든 부담을 우리 미국이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더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고 우리의 엄청난 군을 이용하는 국가들에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그에 대해 돈을 내지 않는다. 이제는 돈을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군)는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이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에도 있다”며 “솔직히 말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시리아 철수 및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 대폭 축소 등 중동전략 궤도수정에 이어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지역에서 추가적인 철수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의 경찰론’ 폐기를 제시하며 동맹도 비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함에 따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이달 말 조기 교체와 맞물려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의 경찰’은 제2차 대전 때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적극적 ‘개입주의 외교’를 상징하는 말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다시 고립주의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비용 문제를 들어 동맹을 압박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20일 시리아 철군 결정이 거센 후폭풍에 직면하자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더는 ‘중동의 경찰’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24일에는 트위터에 “우리는 전 세계 많은 매우 부유한 국가의 군대에 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무역에서 미국과 미국의 납세자를 완전히 이용하고 있다”며 “매티스 장관은 이를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를 문제로 본다) 그리고 이것을 고치고 있다”고 밝혔다. 올 연말 퇴임하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두고 갈등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25일에는 카타르와 바레인에 배치된 미군 장병들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두 나라는 무제한의 자금이 있다”며 “우리는 두 나라에 훨씬 많은 돈을 요구했고, 두 나라는 기꺼이 하고자 한다”고 했다. 또한 “나는 미국이 불이익을 당하면서 부자 나라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길 원하지 않는다”며 “지금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며 우리는 그에 대해 돈을 내고 있다.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 이 점이 나와 (이전의) 다른 어떤 대통령을 다소 차별화하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언급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록 그가 관련 국가들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선후보 시절부터 한국과 일본 등을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지목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4월 당시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할 정도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했다. 그는 한국이 주한미군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을 합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미치광이’가 있는 북한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대통령 선거 마지막 TV 토론회에서도 미국이 많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잘 사는 동맹국을 지켜줄 필요가 없다며 한국과 일본, 독일을 직접 거론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의 50%를 부담하고 있다는 진행자의 지적에 ‘100%를 부담할 수는 없느냐’고 반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 언급은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의 연내 타결이 불발된 상황에서 나왔다. 따라서 향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3월부터 10차례에 걸쳐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진행했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 가운데 한국이 부담하는 몫으로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와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비용, 군수 지원 등의 명목으로 쓰인다. 한미는 증액 규모 등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또한 10차 회의 이후에도 실무 차원에서 소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견이 커 차기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이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의 인상을 요구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측의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의 2배 규모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 역시 지금보다 1.5배 증가한 연간 12억 달러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도 한국의 분담금 증액 필요성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 11일 한국에서 열린 ‘송년 한미우호의 밤’ 행사 기조연설에서 “미국은 한미동맹을 위해 한국이 제공하는 상당한 자원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한국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는 미 의회에서도 나왔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사이버안보 소위원장인 마이크 라운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방위비 부담 증액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재원을 증가시킴으로써 미국도 대응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고 밝혔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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