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9, 선거 출마자도 소련군정이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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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1.09 10:00:36
  • 최종수정 2019.01.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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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의장 허성택이 도착했다. 김일성이나 로마넨꼬와 회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시를 내리다. (허성택은 10월 7일 평양에 나타났다. 그는 이그나찌예프와의 회담에서 자신이 "파업투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동지들과 접촉하여 지시를 얻기 위해 방북했다"고 설명하고 로마넨꼬나 김일성과의 회담도 요청했다.

[편집자 주] 티렌티 포미치 스티코프(Terenti Fomitch Stykov), 1907년 2월 28일부터 1964년 10월 25일까지 살았던 소련의 군인.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스티코프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남긴 일기를 발굴해 연구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스티코프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 소련의 '북한 김일성 세우기 프로젝트'를 2004년 12월 30일 책으로 만들어 중요한 한국근현대사 자료를 보충했다. 전 교수의 '스티코프 일기' 연구는 미국과 일본에 집중됐던 해외소재 한국사 자료가 서유럽과 동유럽, 러시아 지역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 업적이다. 소련군 정치장교였던 스티코프가 남긴 일기는 단순히 개인사를 넘어 소련의 한반도 정책과 1945년 해방 직후 남북한의 정치, 경제 상황, 한국전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적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스티코프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 주둔 소련군사령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사태전개에도 깊게 개입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티코프의 일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소련공산당이 38선 이북 지역에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 위성정권을 세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적나라하게 개입하여 괴뢰정부를 세웠는지를 입증하는 내용증명이기 때문이다. 스티코프는 일기 형식의 비망록을 통해 소련공산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정해준 사실, 북한 헌법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이 직접 만들어준 사실, 심지어 북한의 역사를 기술할 때 지침이 되도록 역사책의 목차까지 짜 준 사실, 김일성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북한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각의 장차관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회의 대의원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의 재가를 얻어 정한 사실 등을 적어놓았다. 따라서 이 자료를 독파하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을 추종하는 괴뢰집단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내용증명이다.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스티코프 일기'를 펜앤드마이크(PenN)는 전 교수의 해제부터 책 그대로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긴다. 다만 책의 제목이 '쉬띄꼬프의 일기'로 되어 있는 것을 요즘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스티코프 일기'로 바꾸었다. 게재 순서는 전 교수의 해제를 시작으로 스티코프의 일기를 1946년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를 제1부, 1946년 12월 2일부터 1947년 2월 4일까지를 제2부, 1947년 7월 7일부터 10월 4일까지를 제3부, 1948년 7월 26일부터 10월 2일까지를 제4부로 편집하고 있는 책의 흐름을 따를 예정이다. 책 후반부에 별도로 첨부돼 있는 1946년 9월 28일 여운형의 북조선 방문에 대한 스티코프의 보고나 소련 군인으로 1945년 해방 후 평양 소련군정에서 소장 계급으로 민정 사령관을 지냈던 안드레이 알렉세예비치 로마넨코(Andrei Alekseevich Romanenko)와 여운형의 대화 기록도 순서에 따라 게재할 예정이다. 

쉬띄꼬프 일기 1부
(1946. 9. 6~1946. 11. 13)

[10월 1일부터 21일까지]

 

1946년 10월 1일

로마넨꼬가 보고하다. 여운형은 떠나갔고, 38선은 무사히 넘었다. 1946년 9월 30일 하지가 곡물의 자유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보도문을 발표하다. 곡물의 비법적인 반출에 대한 경계를 강화할 것을 지시하다. 라디오 방송을 차단하다. 발렌찐과 대담하다.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회의가 개최되다. 정부 참여 문제(입법의원에 대한 참여 문제를 말한다)가 논의되다. 허헌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다. 여운형은 동요하는 태도를 보였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북조선으로 떠났다.

미군정은 초급 당단체들에 발송된 박헌영의 미군정 반대 투쟁 지령문을 몰수했다. 선거에 대해 논의히다. 선거구들이 확정되고, 각급 선거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선거서류들이 모두 발송되었다.

(편집자 주-1946년 9월 5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소련군정의 지시를 받아 「선거법령」을 공포했다. 민주선거라는 이름하에 공산당이 지명한 단일 후보자에게 형식적인 찬반 의사를 표시하는 흑백함 선거방식, 즉 단일 후보에 찬성하면 투표용지를 흰색 함에, 반대하면 검은색 함에 넣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 1946년 11월 3일,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북민전)에서 추천한 단일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형식으로 도·시·군 인민위원회(남한으로 치면 지방의회 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공산당이 내세운 후보들이 모두 당선되었다. 이런 선거방식은 스탈린 시대에 고안된 것으로, 최대의 특징은 단일 입후보제다. 이른바 소련군정과 김일성의 북조선노동당이 허가한 사람만 단일 후보로 입후보하여 당선되는 제도다. 단일 후보자가 입후보한 상황에서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를 식별할 수 있는 구조인 흑백함 투표제가 채용된 결과 단일 후보자가 패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김일성이 처음부터 선거를 남한의 제헌의원 선거처럼 자유로운 선거를 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지명한 단일 후보 지명식 흑백함 선거를 한 이유는 공산당 인사들이 모든 자리를 독식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전 유권자 가운데 99.97%가 참가하여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추천한 후보자가 98.49%의 높은 찬성표를 획득할 수 있었다. 북한은 1962년 제3기 대의원 선거 때부터는 흑백함 선거 대신 ○×식 선거방식으로 변경했다. 즉 단일 입후보자에 찬성할 경우 투표용지를 그냥 투입하고, 반대하는 경우 연필로 ×표를 하여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흑백함, ○×식 선거는 경제적 공산체제 확립(토지개혁 등)과 보조를 맞춰 정치적 공산체제 확립을 위한 획기적인 수단이었다.)

남조선 정세와 조선 인민의 동향 및 소련군과 북조선 주민간의 관계 등에 대해 발라사노프와 대화를 나누다. 로마넨꼬가 보고하다. 남조선에서 공산당 기관지를 제작하는 노동자들이 넘어왔다. 그들은 파업투쟁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에서는 노동자들과 경관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남조선 사태에 대한 북조선의 반응은 어떠한가? 남조선 인문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집회 개최와 남조선 인민을 지원하기 위해 매일 2시간식 노동시간을 늘려 그 임금액을 남조선 지원 기금으로 공제하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위를 시작할 예정이다. 3백만 엔을 요청하고 있다.

이강국의 차장 임명에 대해 김두봉이 반대하다. 군부대에 지급할 모포에 대해 논의하다. 불가닌에게 전화하다. 우리의 동지들에게 3백만 엔을 지원하는 문제 및 집회개최와 공제(남조선 파업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북조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1-2시간 더 늘리고 그 임금액을 공제하여 남조선 파업투쟁 기금으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에 대해 논의하다. 모든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듣다.

 

1946년 10월 2일 

뻬쁘시스와 조선인들을 위한 병원의 개설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뻬쁘시스와 그리고 리예프에게 병원 개원 문제에 대한 일체의 서류와 명령서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다. 쥬벤꼬에게 병원에서 일할 관계자들을 준비시키고 인사체계를 확립하라고 지시하다. 로마넨꼬가 보고하다. 서울에서 남조선신민당 조직부장 심운의 연락원이 도착했다. 신민당 중앙위원회의 다수는 백남운에게 사퇴를 요구하다. 백남운은 미군정과 경찰의 보호하에 당대회를 소집했는데, 대회에는 당에서 제명당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김두봉은 대회를 무효로 인정할 것과 부위원장 정로식을 위원장으로, 허헌을 부위원장으로 승인할 것을 제안했다.

김일성과 통화하다. 조소해상운수회사와 원산석유정련회사 설립 문제를 신속히 마무리하고자 합의하다. 화학꼼비나뜨를 위해 많은 운송수단이 필요하다. 선거에 이용할 비행기와 차량의 지원에 대해 논의하다. 3백만 엔의 지원과 집회 개최를 허용하는 지시를 내리다. 용지와 물감 공급을 요청하는 전보를 보내다. 샤찔로프와 조선인 학생의 파견에 대해 대담하다. 까파노프는 강사들을 줄 수 없다고 한다. 대외무역성에서는 상품들을 줄 수 없다고 한다.

 

1946년 10월 3일

오늘 무엇을 해야 하나?

1. 조선인 유학생들에 대해 모스크바로 전보를 보내야 한다.

2. 그리고리예프에게 로마넨꼬의 민정담당 부서의 정원에 대해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다.

3. 20개 병원에 지시를 내린다. 꼬르꿀렌꼬의 기구(북조선 산업고문 기구를 말한다)에서 일하는 기사들의 봉급 문제에 대해 협의한다.

로마넨꼬가 김일성종합대학에 대해 보고한다. 모든 학부에 다음과 같은 일반 교과목이 개설되었다. 러시아어, 세계사, 철학, 다원주의, 정치경제학.

(편집자 주-1946년 9월 1일 김일성대학이 개교했고, 초대 총장에 김두봉이 취임했다. 김일성은 9월 15일 자신의 이름을 딴 김일성대학 개교 축하식에서 민주주의적 국가건설에 헌신할 인재를 양성해 줄 것을 당부했다. 축하식에는 미군정청에 의해 강제 해산된 서울 법정학교 출신 학생 40여 명도 참석했다. 이들은 장학금을 받으며 북한의 엘리트로 성장했다. 이로써 스탈린대학도 없고, 모택동대학도 없는데 김일성대학이 존재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김일성대학도 소련 지도부의 구상에 의해 학과목이나 교재, 교칙, 학생들 중 10%에게 장학금 지급, 강사진 구성 등이 정해져 지령되었다는 점이다. 스티코프 일기에 의하면 1946년 10월 3일 로마넨코가 상관인 스티코프에게 김일성대학에 일반 교과목으로 러시아어, 세계사, 철학, 다원주의, 정치경제학 과목을 개설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보도'를 통해 선거와 관련된 정치동향 자료를 보도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별도의 선거구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왜 총회에서 여성들을 대의원으로 선출하지 않는가? 선거에 이용할 차량에 대해 검토하다. 발라사노프가 보고하다. 번스는 자신의 특별히 비공식적으로 방문했음을 강조했다. 짜랍낀(짜랍낀 세묜 꼰스딴찌노비치, 소련외무성 미국과장)에 의하면 번스의 방문단이 실수를 범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승만과 김구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표명했다. 여운형으로 타협을 보는 것이 좋겠다. 번스는 소련공산당이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아 불만이라고 한다. 미소공동위원회 재개를 위해 하지와 치스짜꼬프의 서한을 교환하자고 한다. 

 

1946년 10월 5일

로마넨꼬에게 번스와 조만식의 회견을 허락하다. 번스와 김일성의 회견에 대해 협의하다. 

 

1946년 10월 7일 

이그나찌예프가 보고하다. 1946년 10월 6일 박헌영이 남조선을 탈출하여 북조선에 도착했다. 박헌영은 9월 29일부터 산악을 헤매며 방황했는데, 그를 관에 넣어 옮겼다. 박헌영이 휴식을 취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합당 사업은 도 수준까지 진척되었고, 지하에 정치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선거에 대해 보고하다. 지식인들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다. 지주들의 동향 -지주들은 토지를 다시 몰수할 것이라는 선전을 해대고 있다. 각급 인민위원회 위원 입후보가 시작되었다. 발라사노프가 보고하다. 번스는 서로 상의하여 타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번스와 조만식의 대담에 대해. 번스와 김일성이 대담에 대해 보고하다. 

(번스와 김일성의 회담 기록은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군 0102. 목록 6, 문서함 2, 문서철 3, 2-10쪽(번스와 김일성의 대담)에 수록되어 있다. 번스와 김일성의 회담에는 발라사노프와 그의 부관 샵쉰도 동석했다. 번스는 남조선에서 우익은 좌익을 반대해 투쟁하고 좌익도 좌우합작을 원치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번스는 이승만과 김구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며 박헌영도 정당들의 통일을 방해한다고 비난한 반면 김규식은 인민에게 영향력 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친일파와 투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번스는 김규식과 여운형이 추진하는 좌우합작에 기대를 표명했다. 그는 박헌영과 여운형의 합작은 미군정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번스는 모스크바 결정에 반대한 일부 세력을 용납할 필요가 있을 언급했다. 번스는 미소공위 재개조건으로 반탁세력을 용인하되 이승만 김구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좌우 양극단이 아니라 김규식과 여운형으로 대표뇌는 중도 좌우파에 기초해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1946년 10월 8일 

남조선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의장 허성택이 도착했다. 김일성이나 로마넨꼬와 회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시를 내리다. (허성택은 10월 7일 평양에 나타났다. 그는 이그나찌예프와의 회담에서 자신이 "파업투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동지들과 접촉하여 지시를 얻기 위해 방북했다"고 설명하고 로마넨꼬나 김일성과의 회담도 요청했다. 허성택과의 대담 기록은 러시아연방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 문서군 142. 목록 540935, 무서철 1, 116-122쪽에 수록되어 있다)

(편집자 주-1946년 9월 총파업의 전위부대였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의장허성택은 10월 7일 평양에 나타났는데, 그는 이그나티에프와의 회담에서 “파업투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동지들과 접촉하여 지시를 얻기 위해 방북했다”고 설명하고 로마넨코나 김일성과의 회담을 요청했다. 이처럼 파업 지도자의 방북 및 소련군정 지도부와의 만남, 그들로부터의 지령 접수 사실 등을 보면 1946년 9월 총파업과 그에 이은 10월 대구폭동은 명백히 소련군정의 지시를 받은 남한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임을 밝혀주는 역사적 증거다. 허성택은 월북하여 1948년 9월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출범할 때 노동상에 임명되었다.)

 

1946년 10월 16일

북조선의 대외무역에 대해 꼬스띌레프스끼와 협의하다.

1. 석탄 공급에 대해

2. 우리 측의 계약이행과 상품납입에 대해

3. 탄성고무 300톤의 발송에 대해 4. 쌀과 시멘트의 적재에 대해

 

1946년 10월 18일

북조선 선거 준비 활동과 남조선의 정세에 대해 로마넨꼬와 대화하다. 

 

1946년 10월 19일 

로마넨꼬와 대화하다. 강진이 10월 21일까지 북조선에 머물겠다고 약속했다. 로마넨꼬와 강진의 회담 후에 김일성이 강진과 대담할 것이다. 

 

1946년 10월 21일 

비행기로 해주에 갈 예정이다. 해주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선거와 관련된 문제들

1) 선거 선전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선전원들의 활동, 실물 선전자료(도표, 포스터 등), 간행물의 준비 상태를 점검한다.

2)정당별, 사회성분별(재산상태별), 교육수준별 각급 인민위원회 위원 입후보자의 구성을 분석한다.

3) 유권자 수와 공민증 교부 상황을 점검한다.

4) 선거투표소 설치 사업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5) 각급 인민위원회에 특별 선전실을 설치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6) 선거 선전 사업에 대한 미술가, 문필가, 사진사, 영화촬영가의 활동을 점검한다.

7) 선거일을 어떻게 표시할 것인지 검토한다.

8) 보안경게에 대해, 경찰에 하달할 훈시와 군부대에 하달할 지시에 대해 점검한다.

 

2. 경제문제들

1)산업기관들의 이양

2)기술자들

3) 석탄

4) 계획화와 재건

5) 관개수로

6) 합작기업의 구조와 인민위원회의 기구

 

3. 주식회사의 설립 문제 - 해상운수회사

 

4. 교육문제

1)김일성종합대학의 현황과 강사 모집

2) 번역 문헌의 간행

3) 기업소에 기술전문학교와 야간강습소를 설치하는 문제

 

5. 문화인에 대한 결정과 문화인회의

6. 물품조달 문제

7. 인민위원회에 대해

1) 행정국들의 증설에 대해

2) 보궐선거에 대해

3)특수부대들에 대해, 지도부의 임명

4)은행, 현금의 양도

5) 양곡의 조달과 납입

6) 토지소유권증명서 발급에 대해

 

8. 정당 및 노동조합

1) 북조선로동당

2) 조선민주당 지도부

3) 북조선 천도교청우당 지도부을 호출하여 대화한다.

4) 북조선 민주여성동맹 지도부를 호출하여 대화한다.

 

9. 기타 현안들

1)식량전표에 대해

2) 서울로 도주한 상인들 문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한다.

3)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양도한 공장들에 입간판을 설치하는 문제

4)스메르쉬를 호출하여 북조선의 정세와 대중들의 동향에 대해 청취한다.(스메르쉬는 소련 제25군 산하에 설치된 소련비밀경찰(KGB)의 반정탐활동부서를 말한다. "스파이에게 죽음을"이라는 "스레르찌 쉬삐오나"에서 온 말이다) 우리 동지들 -김일성과 최의 근황을 파악한다. 

김일성과 대화한다. 종파주의자들과 강진은 인민대중을 기만했다. 그들은 17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소집하여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반대파의 통합이라는 구실 하에 대회를 개최하여 다시 한 번 인민대중을 기만했다. 그들은 대회에서 선거인단을 선출했고, 이 선거인단을 통해 박헌영, 이강국, 강진 등을 포함하는 중앙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두 조직의 중앙위원회 성원은 모두 종파주의자들과 친미분자들로 구성되었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조두원이 향후의 행동방침에 대해 묻고 있다. 여운형과 결정적으로 결별하는 것이 필요한지 문의하다. 조선공산당 서울시당위원장이 서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미국인들은 허헌과 김원봉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연합할 것을 제의했다." 여운형을 비판하되 너무 과격하지 않게 비판하라고 제안하다.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를 서명으로 선출할 것을 제안하다.

부산에서는 농민들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지금 파업운동의 어느 정도 축소되었다. 그는 향후 투쟁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묻고 있다. 그에 의하면 빨치산 부대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반동진영과 민주진영 사이에 전투가 전개되고 있다. 그는 빨치산투쟁을 본격적으로 개시해야 할지 혹은 자제해야 할지 묻고 있다.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내의 동요와 관련하여 지도부를 재조직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현영과 대화하다. 파업투쟁은 폭동으로 성장·전화했다.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식량과 탄약이 부족하다. 그들의 향후 투쟁방침에 대해 교시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다. 가까운 시일에 농민들의 투쟁이 개시될 수 있다. 지주들은 수확의 50 퍼센트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합당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1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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