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8개월, 한국 어디로 가나⑨ 야당은 뭘하고 있나

논란 많은 '朴탄핵' 허용후 보수우파 1년여 '적폐 프레임' 함몰
與보다 '친박·홍준표 때리기' 골몰한 국민·바른, 야권 분열상
'체제까지 흔들리는데'…' 한국당 안일함·조직 복지부동 여전

지난해 5월10일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8개월 동안 대안야당의 부재가 역력했다.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정치 지형에도 불구하고 여야 대립보다 '야야 갈등'으로 더욱 시끄러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정부 여당은 유례 없는 방탄효과를 누리며 이른바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가속할 수 있었다. 한국 정치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렵고 1,2차 좌파 정권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비교해도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는 '급진 좌파정권의 폭주'를 제대로 견제하고 제동을 거는 야당의 모습도 찾기 어려웠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야당(현 여당)이 지금의 야당보다 적은 의석으로도 정권을 쩔쩔 매게 하고 국정의 발목을 잡은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8개월간 정권 초기 허니문(밀월기간)이 끼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정부 견제 기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제1야당 때리기'가 더욱 횡행했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다수의 선택을 받은 좌파 성향 더불어민주당(당시 123석)과 국민의당(38석)이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해 이 때부터 힘의 균형이 무너진 탓이었다.

당대표가 180석까지 공언하다가 고작 122석을 확보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20대 국회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이른바 '국정농단' 여론몰이에 탄핵 저지선(101석)마저 스스로 허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손톱 밑 가시'와도 같던 규제와 공무행정상 오랜 폐단 등을 가리키던 "적폐"는 자유·보수진영 전체를 공공연히 비하하는 용어로 변질됐다. 

(사진=네이버 제20대 총선 결과 캡처)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의석 123석으로 원내 1당 지위를 확보했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122석-국민의당 38석-정의당 6석 순으로 많은 의석을 얻었다. 무소속 당선된 의원은 11명이었다.(사진=네이버 제20대 총선 결과 캡처)

 

비단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박 전 대통령과 친박(親朴)을 수권 대안세력으로 여기던 유권자들까지 졸지에 '적폐몰이'를 당하며 목소리를 감췄다. 탄핵에 적극 가담한 옛 새누리당 일부는 자칭 '개혁보수'를 주장하며 지금의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대다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남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탄핵 낙인'을 벗으려 애썼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19대 대선 내내 탄핵 멍에를 진 한국당 비주류 홍준표 후보(24.03% 득표 2위)와, 박 전 대통령에 이어 한국당 자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6.8% 득표 4위) 두 진영으로 나뉘어 반목했다. 홍 후보를 겨냥한 좌파진영발 '막말 프레임'에 더한 막말공세로 편승하던 바른정당은, 41.1%를 득표한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고 나서도 여권보다는 제1야당으로 전락한 한국당 공세에 치중했다.

당초 33석이던 바른정당이 5·9 대선 직전 의원 13명이 한국당에 복귀하면서 20석으로 쪼그라드는 변화는 있었지만, 원내교섭단체만 네 곳에 달하는 복잡다난한 국회 운영은 정권교체 후에도 반년 넘게 지속됐다. 각당은 총선 이래 형해화된 협치(協治)를 다시금 구호로 꺼내들었지만 이는 제1야당의 투쟁력을 결정적 순간마다 무너뜨리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9년 간의 여당 생활을 청산한 한국당이 기껏 ▲일명 '5대 인사원칙' 파기 ▲공영방송 장악 ▲세율인상·공무원 증원 포퓰리즘 예산 ▲안보파탄 및 북핵 압박 유엔 결의안 기권 등을 의제로 국회 상임위·본회의 보이콧 등 대여투쟁을 전개하려 하면, 중도·합리파를 자임하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국회 의결의 형식적 요건을 채워줘 번번이 정부·여당의 '한국당 패싱'을 야기하는 식이었다.

한국당을 극단세력으로 규정하고 '국정 발목잡기'라는 여론의 비난을 집중시키는 여론전도 제2·3 야당의 몫이었다. 군소야당에 유리한 정당 득표율 반영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편 등을 여당으로부터 약속받고 '6월 개헌'·'공수처 설치' 등에 협력하는 사실상 야합이 들통난 사례(2018년도 예산안 심의 정국)도 있다.

정국 현안뿐 아니라 각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둘러싼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대북안보·정체성 문제로 그나마 여권에 검증대를 들이미려는 1야당을 2·3야당이 줄곧 공격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기준선에 따라 때때로 협력하는 태도를 보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송영무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심사경과보고서 채택 불발 등에는 청와대의 5대 원칙 '셀프 파기' 수준의 인사검증 실패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또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 본회의 부결에는 구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반대 소수의견(한국당·바른정당), 5·18 민주화운동 가담자 유죄판결 이력(국민의당)이 주된 요인이었다. 반면 바른정당은 민족해방(NL)계 주체사상파 출신들의 공개검증 없는 청와대 대거 입성, 친북정책 노골화 등에 대한 한국당의 검증 시도가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종북몰이"로 규정, 나아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통진당을 해산시켰듯이 극우정당인 한국당도 이제 해산할 때"라는 극언마저 쏟아내며 여권의 방패막이를 자처하는 갈지자 행보도 보였다.

정당별로 뜯어보자면 더욱 복잡하다. 국민의당은 거대양당 중 한국당이라는 한축이 무너지자 정체성 검증대에 오르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반(反)패권 중도 제3당'이라는 입지가 대선 패배 이후 옅어지고, 중요 현안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좀체 당론을 모으지 못했다. 헌법기관인 의원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댔지만, 수권을 도모하는 '이념 결사체'라는 정당의 본분을 놓친 셈이다. 

당내 한쪽에서는 박지원·정동영·천정배 등 호남 지역구 중진 의원들 중심으로 친북좌파 노선으로 '여당과 경쟁하겠다'는 움직임이 점차 노골화했고, 친(親)안철수계로 불리는 현 당권파는 호남파의 안보관을 거부하는 바른정당과의 합당에 경주하면서 화합적 결합이 끊어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다음달 4일 당권파가 합당 여부를 안건으로 부칠 국민의당 전당대회는 호남파 '개혁신당'과의 분당 또는 당권파의 헤게모니 상실로 결론이 날 전망이다. 소규모나마 반북(反北)과 그 외 현안에서 기계적 중립을 추구하는 정당이 확립되든, 38석 정당의 헤게모니가 친북좌파에 그대로 넘어가든 1야당의 여권 견제에 보탬이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바른정당은 당초 '개혁보수' 이미지와 친박계 부정에서 당의 존립 명분을 찾았지만, 한국당의 친박 2선 후퇴 등이 진전을 보이자 홍준표 대표를 겨냥한 무차별적 "정계 은퇴" 요구나 '여혐·막말 프레임' 씌우기 등 정치공세에 과잉 의존하는 구태를 재연했다. 대선 직전에 이어 정권교체 후에도 한 차례 더 남경필 경기지사 등의 한국당 복당 행렬이 나타난 게 그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현재 9석까지 쪼그라든 상태에서 국민의당 당권파와의 합당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7월3일 지도부 선출을 위한 자유한국당 제2차 전당대회가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과 경기도 남양주시 시우리에서 이원생중계로 진행된 가운데, 홍준표 후보(사진)가 65.7%를 득표해 당대표로 당선됐다. 당시 최고위원에는 이철우, 류여해, 김태흠, 이재만, 이재영 후보가 함께 선출됐다.(사진=자유한국당)
지난해 7월3일 지도부 선출을 위한 자유한국당 제2차 전당대회가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과 경기도 남양주시 시우리에서 이원생중계로 진행된 가운데, 홍준표 후보(사진)가 65.7%를 득표해 당대표로 당선됐다. 당시 최고위원에는 이철우, 류여해, 김태흠, 이재만, 이재영 후보가 함께 선출됐다.(사진=자유한국당)

 

한국당은 여당과 친정부 언론에 2·3야당까지 합세한 '탄핵 낙인'과 폄하 공세, 계파 청산·이념정책 노선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내내 험로를 걸었다. 문재인 정권 초기 여권발 협치 '연출'에 끌려다니고, 청와대가 5대 비리 해당자 고위급 인사 원천 배제를 스스로 파기해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정국 현안 주도권도 쥐지 못해, 2등 경쟁을 노리던 2·3야당의 대여 협력으로 번번이 패싱당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7월 홍준표 지도부가 들어서기 전 약 두 달간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체제는 '부자에게 자유를, 서민에게 기회를' 대선 슬로건조차 잊은 듯 갈팡질팡했다. 공무원 1만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한 이른바 '일자리 추경'에 사회적 경종을 울리지 못하고 상당부분을 허용한 게 대표적이다. 당내로 눈을 옮기면, 이념정체성이 그나마 뚜렷한 편인 홍준표 전 대선후보를 겨냥한 전당대회 출마 '발목잡기' 시도마저 있었다.

홍준표 지도부 출범 이후에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 실세' 당적 정리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자 김태흠·류여해 최고위원을 지도부로 입성시킨 친박계가 역으로 '홍준표 사당화' 프레임을 제기하고, '성완종 리스트' 대법원 유죄취지 판결 가능성을 높이려는 언급을 남기는 등 '지도부 흔들기'에 나서 점입가경을 연출했다.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 결사 옹위에 나선 이 하나 없었음에도 소위 '내부총질'에는 부단히 열을 올린 친박계였다. 홍 대표 역시 불필요한 '박 전 대통령 출당' 등의 발언으로 가뜩이나 문제 많은 '탄핵 정변'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전통적인 지지세력의 반발을 샀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홍 대표가 외부 인사로 구성한 '류석춘 혁신위'는 건국과 산업화의 상징인 "이승만·박정희 정신"을 천명하고도, 박 전 대통령 출당을 가장 먼저 공개 권고해 친박계의 공세 대상이 됐다. 혁신위를 측면지원하던 홍 대표는 직접 칼을 빼들었으나, 당 윤리위-최고위 의결 절차가 삐걱대자 최고위 권한을 위임받아 직권으로 마무리지었다(11월 초). 그 직후 반문(反文) 스탠스와 박 전 대통령 당적 정리를 복당 명분으로 판단한 바른정당 김무성계가 합류하면서 한국당은 옛 새누리당 시절 최대 의석(129석) 중 116석까지 회복했고, 바른정당은 11석으로 줄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한국당의 의석 수는 최근 바른정당 중책도 내려놓고 탈당한 김세연·박인숙 의원의 복당으로 118석까지 회복됐으나, 실질적 원내 투쟁이 어렵다는 만성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2012년 개정 국회법)이 보장하는 쟁점법안 저지선(121석)을 독자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보수층으로부터는 '배신자들의 복당을 허용했다', '말뿐이고 정부 견제 능력이 없다'는 상충된 비난을 동시에 받으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그나마 접점이 가장 많은 바른정당 등으로부터 적어도 3석을 끌어와야만 실효적인 원내 투쟁이 가능하고, 4석 이상이 될 경우 20대 국회 하반기 원(院)구성 협상에서 '원내 1당'에 올라 법안의 본회의 직권상정 등 결정권을 갖는 국회의장을 비롯해 핵심 상임위원장 몫 다수를 노려봄 직하다. 대여투쟁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지만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공동 통합선언까지 나서는 등 실현 가능성이 아직까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원내 투쟁의 악조건 외에도 한국당은 자체적인 이슈 추적과 세련되지 못한 대응·홍보 능력을 꼬집는 지지층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전희경·김진태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현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 등을 제외하면 제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탄핵과 출당의 여파인 듯 홍준표 대표-김성태 원내대표 '투톱'에게는 대여투쟁 평가보다 책임론과 불만부터 쏟아지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의원 118명을 다 합쳐도, 암호화폐 규제 논란에 천착해 정부에 '40분간 엠바고 작전 의혹'을 홀로 제기하고 나선 바른정당 의원 한 명보다 이슈 추적·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냉소적 반응도 있다. 권리당원 등 유권자와 '온라인 집단행동'같은 단결력까지 과시하는 민주당 '디지철소통위'과 달리, 한국당 디지털정당위는 정무감각과 가독성이 떨어지는 홍보물을 간헐적으로 냈다가 "외주에 맡기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집권 시절 언론과 관계 유지에 실패해 야당으로 전락하고도, 원내 정당 중 가장 높은 언론 진입장벽을 고수하는 동시에 우군 확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위기감 결여'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 당시 홍 후보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 조직 대부분이 복지부동하던 당의 모습이 '여전하다'는 내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고조되는 반문정서에도 불구하고 당대표의 승풍파랑(乘風破浪,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나감) 구호처럼 되지 않는 요인들로 꼽힌다. 정부·여당이 도 넘은 친북·좌경화로 단순 야당의 정적(政敵)을 넘어 사실상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폭주하는데도 제1야당인 한국당은 뚜렷한 대안세력으로 국민 사이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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