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2년 동안 보수는 참 많이 배웠다. 법치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의해서 대통령이 쫓겨나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자신들이 만들어 온 나라가 한 순간에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집에서 분노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거리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루 종일 “석방하라” 외쳐봐야 목만 상한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 힘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까지 배웠으니 이제 기초 학습은 끝난 셈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입당 운동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가치 실현을 위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지난 4개월 간 자유한국당에 가입한 숫자는 대략 1만 5천 명 정도다. 평소의 2~3배 정도라고 한다. 1만 5천 명. 결코 많은 숫자 아니다. 그러나 ‘티핑 포인트’라는 것이 있다. 변화는 완만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서 피치를 올리며 급격하게 확산되는 것이 티핑 포인트다. 15만 명이 되면 자유한국당이 긴장할 것이다. 150만 명이 되면 민주당과 청와대가 기겁을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부 갈등도 있고 노선과 방법을 놓고 서로 핏대를 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서 운동 역량도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후원도 방향이 있어야 후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변화는 보수가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또한 제대로 밟아가는 학습 코스다. 몇 년 전 미국 보수주의 운동을 배우러 갔던 한 활동가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념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펀드레이징(정당ㆍ자선 단체의 모금 활동) 얘기만 지겹도록 들려주었다. freedom은 절대 free가 아니라는 사실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전제 조건이었다. 그건 기본이고 어떻게 모금을 하고 어떤 식으로 후원자들을 늘려 가는지가 관심사이자 고민이었다. 운동은 자금이다. 군자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촛불 시위가 전부 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게 없었더라면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후원도 제대로 해야 한다. 방향이 없으면 노력이 아니라 ‘삽질’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념도 없고 노선도 없고 그저 들을 때만 시원할 뿐인, 정부 욕만 해대는 ‘자위형 활동가’에게 계속 후원이 이어진다면 대한민국 보수주의 운동의 희망은 없다. 후원이 운동에 기여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현명하게 지갑을 여는 법을 이제 보수는 배워야 한다.

문화적 고립에서의 탈출은 보수 운동의 핵심

지난 달 27일 홍대 앞 한 카페에서는 조촐한 사은행사가 있었다. 후원자들을 모시고 감사하는 의미로 만든 자리였다. 사실 이런 모임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날 행사가 의미 있었던 것은 이 후원이 목적과 방향이 뚜렷한, ‘문화에 대한 후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부역자들’로 탄핵 사건의 가증스러운 협잡을 폭로한 최공재 감독과 그 일당들은 후속작을 준비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인터넷을 통해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 작업을 했다. 원래 목표는 7천만 원이었다. 세워놓고도 내부에서는 목표액 달성에 회의적이었다. 보수 운동에 호의적인 사람들에도 영화 제작비 후원은 낯선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우려는 빗나갔다. 최종 모금액은 1억 1천만 원이었다. 4천만 원의 초과 달성액은 그대로 영화에 반영된다. 세상 말로 하자면 그만큼 영화의 ‘때깔’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 자금으로 만들어진 ‘부역자들 2’와 ‘부역자들 3’는 내년 3월 만나보실 수 있다.

이 후원은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다. 영화로 고스란히 남아 보수가 계속해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후원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작품을 볼 때마다 그게 자신이 후원한 것이란 사실에 뿌듯해하실 것이다. 후원금의 사용도 투명하다. 영화 제작비로 쓰인 만큼 내역이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내가 낸 후원금이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따위의 구질구질한 염려를 하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문화는 보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보통 한국 보수의 위기로 정체성 상실, 어젠다 실종 그리고 문화적 고립을 꼽는다. 세 번째가 가장 심각하다. 정체성은 세우면 된다. 어젠다는 만들면 된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문화적 고립은 당장 타개할 방법이 없다. 타개는커녕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출발점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문화에 대한 보수의 인식도 문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좌파들로부터 문화를 통해 두들겨 맞고도 자기가 뭘로 맞았는지를 모른다. 몇 년 전 역사전쟁을 하자고 했더니 정말로 역사책을 펴 들고 나오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 전쟁은 문화로 하는 것이다. 이 고루한 인식이 이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깨지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너무 많이 나간 것일까. 아니다. 내년 3월 영화가 공개되고 조회 수가 100만, 200만, 300만을 넘어가면 생각들이 정말 많이 달라지실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작품의 기획이 가능할 것이고 보수는 이승만을, 박정희를 그리고 진짜 대한민국을 스크린에서 만나보실 수 있게 된다. 기대되고 든든하지 않으신가.

또 하나의 문화적 이정표, 그림 한 장

이 날 행사의 마지막에는 특별한 순서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생전 모습을 담은 그림 한 장의 경매였다.

(김정희 작. 종이에 수채. 72.7 X 60.6)

 

김정희 작가(본명이다)가 그린 박정희 대통령 내외 그림은 50만원에서 출발해서 치열한 호가 경쟁 끝에 220만원에 낙찰됐다. 경매는 그림 값을 기계적으로 환산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작품에, 그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행위다. 그림을 구입한 사람은 사업을 하는 임준택씨(57세)다. 북파 공작 해군 첩보부대 UDU 동지회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고 한다. 평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했기 때문에 그림을 구입했다는 너무나 당연한 소감을 남겼다. 보수 진영에서 이런 이벤트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취소되는 나라다. 동상 하나 세우자는 데도 눈을 부라리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박정희가 그림이라는 상품으로 등장하고 구매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박정희라는 인물의 이미지는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는 그의 재임 중 사진과 글씨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과문한 탓인지 10ㆍ26이후 박정희를 그린 작가나 그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이것이 사건인 것이다.

이 그림의 가치는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원본의 가치는 복사본의 숫자와 비례한다. 엽서 크기 복사본을 만들어 판매도 하고 그림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게 문화다. 만날 옛날 사진만 들여다 볼 게 아니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로운 이미지의 박정희를, 대한민국을 그려 나가야 그게 보수의 정신적인 힘이 된다. 존경과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가치에 물질적 가치를 부여해 줘야 그 가치는 현실에서 힘을 얻는다. 임준택씨는 11월 27일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한 것이었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