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성·대표성없이 '비례성'만 보고 비례대표 의원 증원? 현실 외면한 이상론
내각제 아닌 대통령제와 다당제 병행 '南美 정치화', 극도의 불안정 초래

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
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

단식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단식에 들어 간지 열흘 만에 중단했다. 두 당의 대표가 함께 단식에 들어갔던 것을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사활이 걸린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선거제 개혁 논의의 핵심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비례성’을 확보하는 장점만 언급했을 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꽁꽁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언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가져올 문제점을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소위 (진보)좌파 학자들의 비례대표제 주장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형 사회당 주도 연립정권’ - 좌파학자들의 로망

(진보)좌파 학자들은 자신들의 로망인 북유럽 소국들이 10여개 내외의 정당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사회민주당 주도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그러한 사회당 계열의 정당이 영구히 집권하는 내각제 정치구도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경제에서는 ‘북유럽형 복지(포용)국가’가 그 모델이라면 정치 영역에서는 ‘북유럽형 사회당 주도 (내각제) 연립정권’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지역과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6~7개의 정당이 함께 경쟁하는 가운데 정당 간 ‘협치’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제 안에서의 연립정부 구성 또는 궁극적으로 내각제 권력구조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개헌을 통해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의원 정수 확대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문제점 등 선거제 개혁 논의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3가지 방안의 선거제 개편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 개혁은 사실 도농복합제의 도입, 석패율 제도의 도입,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 등의 다양한 이슈를 담고 있다. 그래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지난 12월 3일 선거제 개편을 위한 3가지 방안을 공지한 바 있다.

1안은 현행 300석을 유지하되 지역구는 200석, 비례의석은 100석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2:1로 하는 것이다. 이는 2015년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선거개혁안과 가깝다. 대신 의석 배분은 연동형을 선택하고,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석패율 제도란 지역구에서 떨어졌어도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석패율 제도 도입 시 여전히 국민이 아니라 당의 실력자가 비례대표 리스트를 결정한다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2안은 도농복합 선거구제를 도입하되 인구가 100만명 이상인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이하 농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로 하는 방식이다. 의원정수는 300석으로 현행대로 하되 연동형 방식은 재논의하자는 안이다. 자유한국당의 입장과 유사하다.

3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비율은 2:1로 하되 의원정수를 적어도 330석으로 확대한다는 안이다. 현재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253석, 비례대표 47석인데 비례대표를 110석까지 늘리고 지역구는 220석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로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가 부결될 수 있으므로 전체 의석수를 늘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핵심은 자당 의원 늘리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만 언급하지 의원정수를 확대하겠다는 말과 군소정당들이 난립하여 고착화되는 문제점은 숨기는 몰염치함이다.

국민 없는 의원정수 논쟁과 비례대표제의 문제점

위의 안(案)을 종합하여 볼 때 첫 번째 문제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의원정수를 국민의 명시적 동의 없이 의원들이 ‘셀프 증원’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대다수는 현행 300명도 많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의원이 많아져서 국민 생활이 나아질 것은 없고 의원들의 사소한 다툼만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100여 가지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라는 상전(上典)들이 더 늘어난다는 사실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이에 대해 (진보)좌파 학자들과 일부 정당들은 의원수 1인당 주민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여 많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현행 300명에서 360명으로 20% 이상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원 1인당 인구수를 보면 대략 한국이 16만 명, 미국이 70만 명, 일본이 26만 명, 프랑스가 11만 명, 독일이 14만 명, 이탈리아가 10만 명, 스위스는 4만 명 등으로 나라마다 상이하고 정해진 답이 있지 않다. 때문에 미국은 많은 인구수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하원은 의원 보좌진을 평균 15명 이상 배정하여 많은 선거구민을 돌보게 하고 있다. 또 다른 종류의 주장은 인구수의 증가다.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당시 제헌의회의 의원수가 200명이었다. 당시 인구수가 2천만명 정도였으니 지금의 5150만명의 인구수를 계산해볼 때 400명의 의원도 많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981년 11대 국회가 276명이었고 270~300석의 의석수가 37년째나 계속되었으니 이젠 의석수를 늘려도 된다는 주장이다. 명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직이므로 그 대표자를 몇 명으로 할지는 국민이 정해야 한다. 이것이 논지의 핵심이다. 따라서 국민 의사가 빠진 국회 자체의 의원 정수 증가 논의는 부당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원수 증원을 주장하는 안은 불합리를 넘어서 뻔뻔하기까지 하다.

두 번째 문제점은 비례대표제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우리의 비례대표제는 사실 실패한 제도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구와 달리 국민의 선택의 자유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비례대표 리스트는 결국 당의 권력자들이 결정하는데 그렇게 리스트에 올라가 당선된 의원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권력자에게 충성하게 되고 결국 친박, 친이, 친노, 친문, YS, DJ 등 파벌정치의 원류가 된다. 한마디로 비례대표제는 투표 결과의 ‘비례성’은 확보할 수 있지만 책임성(responsibility)에서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킨다.

또 비례대표 국회의원 본래의 취지가 어긋 난지 오래다. 비례대표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을 충원하여 국회의 전문성을 높이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직능을 대표하는 이들을 선발하여 국회의 국민적 대표성을 높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 의문이다. 국회의원들 가운데 학계, 체육계, 또는 바둑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그 전문성을 가지고 법안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컴퓨터 전문가가 꼭 국회의원으로 들어가야 활동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 대변은 국회의원이 기본적으로 하는 활동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고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만을 대변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만을 대변하는 별도의 국회의원이 필요한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조경태 의원은 과거 “비례대표제는 한국 정치사에서 공천장사, 계파정치의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공천헌금을 내고 당선된 후보들이 국회에 입성한 사례는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했다. 그리고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출마를 위해 의정활동은 뒤로 하고 지도부와 야합하고 지역구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지역구 출마를 위한 발판으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정치의 오래된 숙원 과제는 비례대표 선발 제도의 개선이었다. 그런데 비례대표 선발 제도의 개선도 없이 투표의 ‘비례성’ 확보라는 명분만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자는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이 될 뿐이다.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에는 투표의 비례성을 확보하여 사표(死票)를 방지하자는 논리가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한 측면만 본 것이다. 비례성이 확보되고 사표는 줄겠지만 대신 국민 누구를 대표하는지 그 대표성과 책임성(responsibility)은 떨어지게 된다. 미국과 영국과 같은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 비례대표제만이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선거제인 것처럼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의견은 일부의 의견일 뿐 학계의 일치된 합의는 아니다.

내각제와 조응하는 다당제

마지막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가져올 다당제가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선 다당제는 대통령제와 조응하지 않는 제도다. 우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5당 체제이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당 진영’과 ‘야당 진영’으로 나뉘어 결국 양당제 스타일로 운영되어 왔다. 일부 학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다당 체제’를 만들어 양당체제의 극단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이번 2019년 예산안 통과를 보면 결국 대통령제에서는 양당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제3당이나 제4당의 중재가 있어도 제3의 안의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완화된 여당안이 채택되는 것이고 표 대결에서는 여당과 주변 제1당, 제2당과 야당과 주변 제1당으로 나뉘어 진영 대결이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찬성하는 이유는 선거제를 개혁하여 다음 2020년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당으로 우뚝 서고 나머지 정당들은 그만그만한 중소 정당으로 만들어 북유럽식으로 사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정당 체제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南美 정치화’의 국가 위기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다당제는 연립정부를 형성하는 내각제와 어울리기 때문에 다당제와 대통령제를 병행하는 남미(南美) 정치가 극도의 불안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다당제하에서 여야가 편짜기로 허송세월(虛送歲月)하다가 ‘남미 정치화’라는 정치적 불안정의 상시화를 가져올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장기 집권을 위한 정당체제를 만들기 위해 또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자당 의원을 늘리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당의 이익을 위해 국가적 위기의 초래 가능성을 외면하는 부도덕한 주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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