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급파된 3000여 명의 공수특전단들은 대검을 빼들고 비친 망나니처럼 호박을 찌르듯 닥치는 대로 찔러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체들을 트럭에다 내어던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달아나는 시민들과 어린 여학생들을 대문까지 부수고 끌어내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검으로 난자했다."

[편집자 주] 이 자료는 1980년 5월 광주사태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가 조선대 학생들의 유인물을 입수하여 5월 25일 서울시내 일원에 배포한 것이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유인물을 입수한 후 “이 글은 광주에서 벌어진 처참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조선대 학생이 인간으로서는 차마 논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을 서울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선을 뚫고 가지고 온 유인물을 본 학생총회에서 편집한 글입니다”라고 설명을 달아 서울시내에 뿌렸다. 하지만 이 유인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누가 작성한 것인지 등은 밝히지 않았고, 또 자신들이 편집한 내용임을 밝힌 것으로 보아 일정 부분 가필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격화되고 있을 때 서울대 비상총학생회가 서울시내에 배포한 유인물. 이것은 조선대 학생들이 만든 것을 입수하여 편집 제작했다고 서울대 비상총학생회 측은 밝히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격화되고 있을 때 서울대 비상총학생회가 서울시내에 배포한 유인물. 이것은 조선대 학생들이 만든 것을 입수하여 편집 제작했다고 서울대 비상총학생회 측은 밝히고 있다.

 

전두환의 광주 살육작전

 

아! 민족사의 대비극이다. 하늘은 이리도 무심하단 말인가! 신성한 국토방위의 의무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군인이 제2의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자행하고 있다. 이것은 온 국민이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할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5월) 17일 밤을 기해 전두환과 그 일파는 기존의 비상계엄을 더욱 강화하고 자기의 뜻에 거슬리는 모든 정치인, 민주시민들을 체포·구금함으로써 이 나라 백성들이 기대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까지도 말살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전남 광주의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를 비롯한 각 전문대학과 일부 고등학생·민주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대해 3만여 명의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시민들의 앞과 뒤를 막아 페퍼포그를 쏘면서 포위망을 좁혀 오고가지 못하게 하고, 서울에서 급파된 3000여 명의 공수특전단들은 대검을 빼들고 비친 망나니처럼 호박을 찌르듯 닥치는 대로 찔러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체들을 트럭에다 내어던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달아나는 시민들과 어린 여학생들을 대문까지 부수고 끌어내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검으로 난자했다.

이러한 만행에 온 시민들은 치를 떨며 저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맨손인 시민들은 도리어 칼질을 당했고, 손녀 같은 여학생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공수부대의 멱살을 잡은 70 노파는 도리어 칼로 찔리어 죽음을 당했다. 남학생들에게 돌을 날라다 주었다는 여학생을 대낮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검으로 난자했다. 또한 이를 보고 울부짖는 시민들을 향하여 공수부대는 피 묻은 칼을 흔들어 대며 죽이겠다고 소리쳤다.

여학생들은 옷이 다 찢어지거나 발가벗긴 채로 피를 흘리며 트럭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이제 시민들의 항거에 당황한 공수특전단들은 지나가는 시내버스와 승용차까지 세워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군화발로 짓이겨 병신을 만들거나 연행해 갔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는 이러한 만행에 항거하여 싸우는 시민들과의 싸움 중에 공수부대의 칼에 맞아 죽은 젊은이들의 시체가 대합실에 즐비했고, 미처 치우지 못한 시체는 밤늦게까지 길가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나마 맞아 죽기를 면한 젊은이들은 조기 떼를 얽어매듯 길바닥에 죽은 시체처럼 늘어놓았으며, 이때 공수특전단의 구호는 “젊은 놈은 무조건 죽여라!”였으니 전두환의 친위대 공수특전단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한 광주 시민의 참상을 필설로써 설명할 수 없고, 눈 뜨고는 볼 수 없었으니, 나이 먹은 어른들은 하나같이 6.25 때 인민군들도 이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고 통탄했다.

지금 광주에서는 젊다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죄가 되어 생명을 잃어야 하거나 병신이 되어야 하는 처절한 운명에 놓여 있다. “광주 시민 70%는 죽여도 좋다” “개 몇 마리 잡았냐?” 이야기는 공수특전단들의 입에서 구호처럼 나온 이야기다. 더욱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살육작전에 앞서 경찰 간부들의 가족들은 모두 안전지대로 피난했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피를 흘리는 여대생을 사람들이 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받게 하자 공수부대는 병원까지 뛰어들어 간호원을 구타하고 기물을 파손함으로써 치료까지 불가능하게 했으니 베트남 전쟁에서 양민을 학살했던 만행의 선례를 이렇게도 같은 형제들에게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행에 분노한 광주의 애국시민들은 중무장한 공수부대에 대해 맨손으로 항거하다 끝내는 이런 사태를 보고도 계속 허위보도를 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응징의 조치로 문화방송을 불태웠고 몇 군데 파출소와 군용트럭, 페퍼포그를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공공터미널에서는 시민들이 화염병으로 맞서 불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수부대 저지른 만행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닌 이러한 소극적인 항거에 전두환은 오히려 시민들의 파괴행위 끝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양 허위보도를 하고 있다.

(5월) 20일 밤을 계기로 전라남도 내의 모든 통신을 차단시키고 최후 살육작전에 들어갔으며, 이제는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엉금엉금 기어가도록 두들겨 패니 온 시내가 통곡소리뿐이다. 이러한 전두환의 특별명령 살육작전으로 희생된 사망자 수는 200여 명, 부상자 수백여 명이다. 18일부터 21일까지 악몽의 5일 동안 사실보도는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었고, 전두환이가 작성해준 원고를 앵무새처럼 외우면서 광주사태는 일부 외부의 불순세력 책동이라고만 보도하고 있으니 아!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아파 붓을 움직일 수 없구나!

아! 그러나 이제 독재의 사슬을 끊고 항거의 핏빛으로 물든 하늘에 온 국민이 눈물과 분노로 동참하여 일어서고 있다. 전두환이가 21일 발표한 광주사태에 대한 내용에 몇 가지 증언을 적어 보자면 유언비어라고 뒤엎은 사실들이 첫째, 40명 사망 운운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의 나위없는 사실 그대로 공수부대의 칼에 의해서 백주에 피를 뿌리고 죽어갔다. 둘째, 여학생 운운한 부분은 광주역 분수대에다 여학생을 발가벗긴 채 세워 놓고 칼로 유방을 도려내어 죽였다.

현재 상황은 전 광주시민의 봉기로 공수부대들은 쫓겨나고, 광주시내의 전 관공서가 불에 타고 있으며, 모든 교통·통신은 투절되어 있고, 군대의 진주를 막기 위해 시민들이 송정리 철길을 파헤쳐 버리고 온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는 “죽자!” “죽여달라!”이다. 부마사태 때에는 전라도 출신 군인들을 진주시켰고, 금번 광주 살육작전에는 경상도 출신의 공수부대를 투입시켜 지역감정을 유발시키고 잔인하게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의 속셈을 채우려고 하는 전두환 일파의 반민족적 만행을 온 국민은 그대로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친 개 전두환 일파를 몰아내지 못한다면 이 땅의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은 끝없는 억압과 착취뿐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우리 모두 투쟁의 일선에 일어서자.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

--이상의 믿어지지 않는 참상은 40만 광주시민이 그 증인이다. 광주시민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투쟁할 것이다.-- 조선대학교 민주투쟁위원회

 

서울시민 학생 여러분!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광주의 우리 형제들의 피흘림을 헛되이 하겠습니까? 미친개 같은 유신잔당의 손에 우리 형제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남의 일처럼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

자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함께 할 때가 왔습니다. 저 극악한 전두환 일당을 몰아내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할 때까지 우리 힘차게 싸웁시다. 그 길만이 억울하게 죽어간 광주시민·학생들의 피흘림에 대한 보답이 될 것입니다.

서울대 비상학생총회

(이 유인물을 주우신 분은 주위 사람과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사실보도를 외면한 신문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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