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시위대 김유○ 씨 5.18 체험기], 무장시위대 오발, 시민들 사망
[무장 시위대 김유○ 씨 5.18 체험기], 무장시위대 오발, 시민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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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12.24 10:14:07
  • 최종수정 2018.12.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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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곧 정권을 잡게 된다는 소문이 있었고, 모두가 그 말을 듣고 총을 들고 시위를 할 때, 고물상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주위의 데모대와 함께 어울려 계속 데모를 했습니다."
[편집자 주] 이 자료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장 시위대로 활동하던 김유○ 씨의 피의자 신문조서 요약 내용이다. 광주시민 김유○ 씨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친구를 찾으러 시내에 나갔다가 시위에 가담하게 되었다. 김 씨는 시위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총을 들고 시위를 할 때, 고물상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주위의 데모대와 함께 어울려 계속 데모를 했다”고 답했다. 그는 또 무장을 하고 다니다가 오발 사고를 내서 35세 가량 된 청년을 중태에 빠뜨린 내용이 신문조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광주사태 당시 시민들의 오발로 인한 피해자도 상당수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무장을 하고 공수부대와 맞섰다. 사진은 군용 트럭을 탈취하고 무장을 한 채 시가지를 질주하는 시민들.(연합뉴스 제공)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무장을 하고 공수부대와 맞섰다. 사진은 군용 트럭을 탈취하고 무장을 한 채 시가지를 질주하는 시민들.(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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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 신문조서(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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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피의자가 김유○인가요.

답 예, 제가 틀림없습니다.

문 피의자는 광주사태 당시 데모에 가담했다는데 사실인가요.

답 예. 사실입니다.

문 피의자가 데모에 가담했던 일시와 장소 및 수단 방법들을 상세히 말하시오.

답 저는 데모하게 된 첫날인 1980년 5월 20일 08시 30분 경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같이 일하는 김봉○가 없어서 주인한테 물어보았더니 데모하는 데 나갔다고 하기에 김봉○를 찾으로 걸어서 도청까지 갔습니다.

김봉○는 없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차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군데군데 모여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구경을 같이 하며 김봉○를 찾다가 점심때가 되어 걸어서 집에 들어와 그날은 집에서 지냈습니다.

다음날(5월 21일) 10시경 김봉○도 찾을 겸 백운동 집을 걸어 나오는데 중앙고속(번호불상) 버스가 데모대를 싣고 지나다 멈추고 서서 수건을 머리에 두른 지휘자 같은 사람이 저에게 타라고 하여 타고 보니 20명 가량의 낮 모르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제가 탄 버스는 “계엄을 철폐하라, 김대중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광주시내를 돌아다니는데, 다른 데모대가 탄 차에서 “아세아(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차를 빼앗으러 간다”고 해 그 차를 따라 동일 11시경 아세아자동차 공장에 가서 보니 먼저 와 있는 차가 8대 가량 있었습니다.

같이 갔던 중앙고속버스 운전사와 저, 다른 사람 3명이 장갑차 1대로 급히 오르고 있을 때 김봉○가 시내버스 운전을 해 잠깐 얼굴만 확인했습니다. 장갑차를 타고 광주시내로 나와 도청 쪽으로 가던 중 충장로 5가에서 차를 세우며 기사와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이 내리라고 하여 그곳에서 저는 내리고 그 차는 도청 쪽으로 가버렸습니다.

문 장갑차의 운전사와 지휘자는 아는 사람이었나요.

답 운전사는 28세 가량으로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었고,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은 23세 가량의 학생으로 보였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광주교도소 습격 실패

 

문 피의자는 그 후에 어떻게 했나요.

답 장갑차에서 내려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서 있었는데, 번호불상 하얀 차체에 빨간색 줄을 두른 마이크로버스가 와서 서더니, 타라고 하여 탔습니다. 뒤따라온 군용 트럭에 탄 사람들이 따라오라고 하여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남평지서 무기를 빼앗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동일(5월 21일) 13시경 군 트럭과 마이크로버스 2대가 나주군 남평지서에 도착, 차가 무기고에까지 들어갈 수 없어 저는 차내에 있는 쇠망치를 들고, 다른 데모대원들도 쇠파이프, 쇠망치 등을 들고 무기고에 들어가 쇠 철문에 잠겨진 문고리를 부수고 무기고 안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를 각자 자기 차에 갖다 실었습니다. 같이 갔던 일행들이 저희 차에도 무기와 실탄을 날라와 M1 소총 5정, 실탄 1상자와 카빈 소총 10정, 실탄 10상자를 싣고 있는 도중, 뒤이어 차가 3대나 또 와서 무기를 실었습니다.

저희들이 도청으로 돌아와서 무기를 내려놓자, 학생들이 무기를 나누어 주고 저도 카빈 1정과 실탄 15발 케이스 1개를 갖고 군용차에 탔습니다. 그 차에는 10여 명이 탔으며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다 동일 14시경 버스, 군용차 등 12대가 광주교도소를 습격한다고 하여 군 트럭을 타고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무장한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으니 후퇴하라고 지휘자가 말하여 다시 도청 광장으로 돌아와서 무기가 없는 사람들은 다시 무기를 휴대하고 그날 15시 40분 경 각종 차량 20여 대와 같이 그 차로 다시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러 갔을 때 군인과 데모대 간 약 10분간 저희들도 교도소를 향해 쏘고 대치했습니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어 후퇴하여 광주시내로 나와 계속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다 동일 18시 30분경 도청 앞 광장에 가자 학생들이 총을 반납하라고 하여 총과 실탄을 반납했습니다. 그리고 백운동 고물상으로 돌아와 잠을 잤습니다.

그 다음날(5월 22일) 10시 30분 경 데모를 하기 위해 걸어서 현대극장 앞으로 가는데 데모대 9명이 탄 군용트럭이 지나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세워 그 차에 올랐습니다. 모두 카빈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그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총을 놓고 내린다고 하여 그 총과 실탄을 받아서 제가 휴대하고 그 차 데모대들과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시민군 오발사고로 무고한 시민 사망

 

그날(5월 22일) 17시경 전남대학교 앞에서 차가 정차할 때, 도로가에 군중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의 옆에 탔던 25세 청년이 총을 2발 쏘았는데 50세 가량 된 남자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제가 놀라서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다 저도 그만 1발을 오발을 한 것이 35세 가량 된 청년 옆구리에 맞았습니다. 차에 탔던 9명이 내려가 총에 맞아 쓰러진 2명을 저희들의 차에 싣고 전남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시켰습니다.

저희들은 다시 차를 타고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시위를 하다 19시경 도청 앞 광장에서 학생들이 총을 반납하라고 하여 총과 실탄을 반납했습니다. 백운동 집으로 돌아오면서 병원에 가서 총 맞은 사람의 상처를 알아보았더니 50대 중년은 사망했고, 35세 가량 청년은 치료중이나 중태란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습니다. 그 후 총에 맞은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몰랐습니다.

1980년 5월 23일 10시경 집을 출발하여 도청에 도착하여 그곳에 있는 군용 지프차를 탔는데, 그 차에 무전기까지 들고 있는 대학생 1명이 “우리는 지금부터 시체를 운반한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시내에 있는 성모병원, 적십자병원 등의 시체실에서는 시신을 도청 앞에 있는 체육관으로 날라다 차례로 두고 관을 준비하는 등 그 다음날인(5월 24일) 18시경까지 그 작업을 했습니다. 그 후 데모는 하지 않았습니다.

문 피의자는 남평지서 무기고 습격 및 교도소 습격 시 총지휘자를 알고 있나요.

답 가끔 데모차를 만날 때 자주 본 사람인데 27세 가량으로 보이는 군용 지프차를 타고 다닌 사람이 지휘를 했는데, 모르는 사람입니다.

문 피의자는 누구의 지휘를 받고 행동했나요.

답 아세아자동차 공장을 들어갈 때 중앙고속 버스를 운전했고, 그 공장에서 장갑차를 타고 나온 운전사가 도청 상황실에도 들어가 지시를 받고 나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상당히 주모자로 생각합니다.

문 총은 어디에 쓰는 것인가요.

답 간첩이나 김일성이 침입할 때 쓰기 위한 총입니다.

문 교도소는 어떤 곳인가요.

답 사회를 혼란시킨 범인들이 갇혀 있는 곳입니다.

문 피의자가 총을 휴대하고 교도소를 습격하고 데모를 한 것은 누구와 싸우기 위한 것인가요.

답 계엄군과 대항하여 싸우기 위함이고 교도소에 갇혀 있는 범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교도소를 습격했습니다.

문 피의자가 데모를 계속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답 김대중이 곧 정권을 잡게 된다는 소문이 있었고, 모두가 그 말을 듣고 총을 들고 시위를 할 때, 고물상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주위의 데모대와 함께 어울려 계속 데모를 했습니다.

문 “전두환 물러가라”는 말은 무슨 이유에서인가요.

답 전두환이 계엄군을 전남에 파견하여 데모하는 광주시민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고 들었습니다.

문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친 이유는요.

답 전남에서 대통령에 출마할 사람인데 계엄군이 구속했다 해서 외친 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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