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국방부 업무보고, 北에 '敵' 지칭도 않고 군사합의·전작권 분리에 힘줘
통일부도 국정원도 "北核개발 지속" 시인하는데 軍이 '北위협 지우기' 앞장
軍대비태세 해체로 일관해 온 文 "강한 국방력 뒷받침돼 평화의 역사 가능"
靑은 안보전략지침 1년 앞당겨 고쳐, "對北대비태세 완비" "실질적 통일준비" 제거

문재인 정권의 '정경두 국방부'가 올린 내년도 업무보고에는 '한국형 3축 대응체계'는 물론 '북한 위협'과 같은 용어가 배제됐다. 3축 체계는 킬체인(Kill chain·도발 징후 포착 시 선제타격),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탄도미사일 요격)·대량응징보복(KMPR·북한 지휘부 응징)으로 방어 목적의 무기·대응체계인데 군(軍)이 구축현황을 일절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축 체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전후 '지나친 친북(親北) 기조 우려' 목소리가 제기될 때마다 불식시키기 위해 "역점 사업"으로 거론하던 대안이었는데, 집권 3년차에 접어들기 직전 2기 국방부에서 결국 배제된 것이다. 안보상황 인식을 드러내는 용어 중에서도 '북한 위협' 대신 '전방위 위협'과 같이 추상적인 언급이 등장했다. '북핵'은 그저 비대칭 위협 중의 하나인 듯 표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20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국방부, 병무청, 방사청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국민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강한 국방'을 주제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2019년 국방부 업무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이 자료에는 '한국형 3축 대응체계'에 대한 언급이 일언반구도 없다. 업무보고서에서도 한국형 3축 체계 구축 현황은 물론 용어 자체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2019 업무보고에 발언하고 있다. '국민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강한 국방'을 주제로 열린 이날 업무보고에서 문 대통령은 국방부, 병무청, 방사청의 보고를 받고 국방개혁, 한미공조, 남북 협력 시대의 국방정책에 대해 토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2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2019 업무보고에 발언하고 있다. '국민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강한 국방'을 주제로 열린 이날 업무보고에서 문 대통령은 국방부, 병무청, 방사청의 보고를 받고 국방개혁, 한미공조, 남북 협력 시대의 국방정책에 대해 토론했다.(사진=연합뉴스)

현 정권 국방부는 1기 송영무 체제였던 1월 '2018년 대통령 업무보고' 때만 해도 '2017년 성과' 중 하나로 3축 체계에 대해 소개하고 조기 구축 계획, 체계별 무기 계약 현황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20일 보고서는 '북핵·미사일'이라는 용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보도자료에는 핵(核) 언급 자체가 없다. 기존 국방분야 국정과제 중 하나인 '북핵 등 비대칭 위협 대응능력 강화'를 언급할 때 '북핵'이란 용어를 썼을 뿐이다.

국방부는 1월 업무보고에선 한반도 안보 상황 평가, 성과 등에 대해 서술하며 '북핵·미사일'이라는 용어를 수차례 사용했었다. 1월 보고 당시 국방부는 '북한 핵무력 완성 기정사실화' 등으로 대북 위협을 평가했지만, 이번엔 북핵을 둘러싼 안보상황 평가 자체를 내놓지 않았다. 

'북한 위협'이란 용어도 '전방위 위협'이라는 단어로 대체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역시 업무보고 후 발표를 통해 "전방위 안보 위협에 대비해 튼튼한 국방태세를 확립하겠다"며 '북한 위협'이란 용어를 피해갔다.

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겨냥한 주적(主敵)은커녕 '적' 표현조차 사라졌다.

이를 두고 '업무보고 과정에서도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본다'는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1월 이후 급변한 안보 상황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부인했다고 동아일보는 21일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신문에 "3축 체계 구축은 관련 예산이 이미 내년도 예산에 반영된 데다 지속적으로 해오던 사업이고 올해는 역점을 두고 진행 중인 남북 군사합의 이행 등 현안이 따로 있어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해석에 따라선 대북 선제타격도 아닌 방어용 3축 체계 구축이 무장해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9.19 남북군사합의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고 볼 수도 있다. 관계자는 또 "전방위 위협이라는 표현에 북한 위협도 내포돼 있다"는 취지로 강변했다.

하지만 최근 대북문제 관련 다른 부처들에서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국방부가 선제적으로 안이한 안보인식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한 비핵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게 맞다"고 말하고(12월18일 통일부 기자단 송년회), 국가정보원이 "(미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지속 중"이라고 보고해온(지난 11월 중순) 것과 국방부의 '북한 위협 지우기'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다.

이에 대해 한 군 관계자는 "업무보고서가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만큼 북한의 비핵화 후속조치를 견인하고 대화를 이끄는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북핵 및 미사일' 등의 용어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군의 대외적인 저자세가 북한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논리로 해석될 여지가 커서, 좌파여권의 자주국방 구호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내년도 역점 추진 과제로 '9·19 남북 군사합의 적극 이행을 통한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을 소개하며 감시초소(GP) 철수,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그간의 합의 이행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이행 계획을 밝히는 데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도 이날 업무보고 자리에서 군사합의 이행을 두고 "우리 군이 정말 큰일을 해냈다. 한반도 평화의 역사는 우리 군의 강력한 국방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고 극찬했다. '강력한 국방력'을 자임할 뿐, 6.25 침략세력을 상대로 선의(善義)를 기대하며 '대비태세 해체'로 일관하는 가운데 나온 언급이다.

그러면서 "지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가 잘 진행되고 있지만 완전히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며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군은 상황에 걸맞은 신속한 국방개혁으로 더욱 강한 군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수사(修辭)를 늘어놨다.

국방부는 또 '조속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준비'를 보고해, 결과적으로 전시(戰時) 주한미군 영향력을 배제하는 '전작권 분리'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작권 전환 기준이 될 한국군의 미래 연합방위 주도 능력을 들여다 보기 위한 '최초작전운용능력 평가'는 내년 8월에 실시되는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PX) 때 이뤄질 예정이다.

국방부는 "전군의 노력을 집중해 내년 최초작전운용능력 평가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작전권 전환 검증절차는 최초작전운용능력 평가에 이어 완전운용능력(FOC) 평가, 완전임무수행능력(FMC) 평가 등 단계적으로 이뤄지게 돼 있다.

한미는 검증 이전평가(Pre-IOC)를 생략하고 1단계인 기본운용능력(IOC) 검증을 내년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1단계인 IOC 검증 이후 2단계인 FOC 검증, 3단계인 FMC 검증이 이어지게 된다.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 및 위기관리체제를 규정하는 근거문서의 초안도 내년 8월까지 완성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2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2019 업무보고에서 군 지휘관 등과 만나 인사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2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2019 업무보고에서 군 지휘관 등과 만나 인사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한편 청와대가 같은날 공개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역시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전략들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국가안보전략지침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발표된 것 이후 4년 만에 수정된 것이다.

청와대는 국가안보의 3대 목표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항구적 평화 정착 ▲동북아와 세계 평화 번영에 기여 ▲국민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안심사회 구현으로 제시했다. 

이 중에서도 북핵 관련 "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에 따른 종전선언 추진과 비핵화가 완전히 해결되는 단계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종전선언을 비대칭 위협 제거 요소에 불과한 북한 비핵화와 동시에 추진할 과제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경제특구 건설 등 이른바 '한반도 신(新)경제구상'을 거론하며 "국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협력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남북경협, 즉 대북 투자사업과 관련해 "각 사업의 성격에 부합하는 다양한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정부와 민간은 물론이고 국제금융기구, 글로벌 기업, 투자 자본 등 국제사회의 참여와 협력을 유도해 범정부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해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국가안보전략에는 전임 정부 국가안보전략지침까지는 포함됐던 '전방위 대북군사대비태세 완비',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위협 대응능력 확보', '실질적 통일 준비' 등의 항목이 빠졌다.

국가안보전략지침은 통상 5년에 한번 바뀌지만, 청와대는 '바뀐 안보상황을 감안해 지침 수정을 앞당겼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공개된 전략지침 외에도, 외에 2급 비밀로 분류된 세부지침이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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