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칼럼]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영구지배를 꿈꾸는 여의도 ‘맥베스 300’
[김규나 칼럼]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영구지배를 꿈꾸는 여의도 ‘맥베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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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원작 영화 맥베스, 2015
진실과 명예, 존경심과 긍지를 상실한 시대, 권력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순결한 꽃처럼 보이려 하지만, 정체를 드러내고야 마는 그 밑에 숨은 뱀들처럼
모든 밤과 모든 낮을 지배하려는 저들의 꿈을 깨울 이, 누구인가!
김규나 작가
김규나 작가

"맥베스께 경배하라! 왕이 될 분이시다."

반란의 무리를 소탕하고 돌아가던 길, 왕이 되리라는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된 맥베스는 자기 안에 권력에 대한 커다란 욕망이 잠들어 있었음을 깨닫는다. 머리에 왕관을 쓴 자신의 이미지가 마음에 각인되는 순간, 왕과 왕국에 대한 존경과 충성은 물론 자신이 평생 지켜온 명예와 양심조차 눈 녹듯 사라진다. 그는 승전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영지로 찾아온 왕을 아내와 공모하여 시해한다. 그렇게 맥베스는 반역자를 물리친, 새로운 반역자가 된다.

“나는 젖을 빨고 있는 어린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내가 당신처럼 맹세를 했다면,

그 아이가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웃고 있다고 해도,

그 말랑말랑한 잇몸에서 젖꼭지를 빼내고, 머리통을 부셔버렸을 거예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권력의 단맛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빌려 상상하건대 아마도 권력이란, 사랑스러운 자식의 머리통을 박살내서라도 얻고 싶을 만큼 대단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하물며 다른 이의 머리통이라면!

그러나 맥베스는 자신이 제압한 반란군처럼, 군사를 일으켜 왕권에 도전할 용기조차 없는 비겁자였다.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자신을 신뢰하는 왕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배짱은 없어서 아내의 추동을 받고서야 칼을 쥐고 일어설 수 있었다. 무참한 난도질의 죄는 왕의 부하들에게 덮어씌우고 변명 한마디 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처단한 얍삽하고 비열한 인간. 살인현장을 목격한 왕자를 죽이는 대신 겁을 주어 도망치게 함으로써, 아들이 아비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한 신하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을 뿐이다.

탄핵에 찬성하고 권력에 협조, 방관하던 사람들이, 경제, 외교, 안보가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데도 잘 한다 잘 한다 박수만 치던 사람들이 내 편 네 편 구분 없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 관련 법안을 처리하자는 선거제 개혁안에 재빠르게 합의한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의 기초가 될 합의의 목적이 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제 전환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는 강력한 중앙집권제인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권력을 분산한다는 미명 하에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의원 수가 지금보다 수십 명 증가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스파르타 군사 300명은 그들의 명예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맞서 싸웠다는데, 대한민국의 여의도 국회의원 300인은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일까.

"순결한 꽃처럼 보이되 그 밑에 숨은 뱀이 되세요. 앞으로 다가올 모든 밤과 낮들은 우리의 지배와 통치를 받게 될 테니."

거사를 망설이는 남편을 독려하던 레이디 맥베스의 속삭임처럼, 정치인이란 꽃 속에 숨은 뱀, 영원한 지배를 꿈꾸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볼 때, 탄핵에 대한 사과나 반성도 없이 미래를 위해 과거를 묻고 가자는 말의 속뜻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아무런 불법 사실도 드러난 것 없이 탄핵된 채 지난 2년 가까이 수감되어 있는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운운하던 사람들이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며 무의미한 립 서비스를 했던 이유조차 헤아려진다. 탄핵을 열렬히 찬성했던 입으로 반문연대를 외치며 보수의 전사로 탈바꿈하던 과정도 비로소 아귀가 들어맞는다. 원내 대표 경선 전에는 "한평생 감옥에 있을 정도로 잘못을 했느냐?"고 묻던 입술로 “과거로 가선 안 된다, 그에 대한 석방결의안은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일'이라고 말을 바꾸며 당선되자마자 신속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또한 정치인의 본질을 생각할 때 수긍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유권자에게 과시할 명분이 필요할 때마다 뱀의 혓바닥을 내두르는 것은 기본, 지배 권력을 위해서라면 좌우 구별 없이 애초에 하나, 진작에 마음이 딱딱 맞는 일심동체였음을 그들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왕은 천성이 온화하시고 오점 하나 없는 왕도를 걸어오셨기에 살해된다면 그의 덕망이 천사들의 나팔처럼 세상의 원성을 깨우리라.”

깊은 신뢰를 받았고 반란 진압에 대한 상으로 더 큰 영지를 하사받은 맥베스는 왕의 훌륭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재산과 명예에서도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런데도 정체불명의 마녀들에게서 “왕이시여.” 하는 한 마디를 듣자 맥베스는 세상의 원성을 사게 되리라는 부담을 지면서까지 왕좌를 탐냈다.

왕이 되어 무엇을 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타국의 침략을 받지 않는 강력한 왕국, 어느 누구도 반란을 꿈꾸지 못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진 군주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더 이상 전쟁에 나가 죽는 일 없이 평화로운 땅에서 백성들이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잘 사는 부강한 왕국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작품 속 맥베스에게서는 왕이 되어 이루려는 그 어떤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녀의 예언대로 왕이 되긴 했지만 그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왕국을 통치할 생각도,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그의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오직,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잘라 왕관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뿐이었다.

"이런 일들은 이승에서 심판 받는 법. 간악한 짓을 가르치면 배운 자가 찾아와 되갚아주고 공정한 정의의 신은 우리가 독을 탄 잔을 우리의 입술로 가져온다."

맥베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씨앗이 어떻게 자라 어떻게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모든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왕의 아버지가 되실 분"이라고 예언 받은 뱅코우 장군과 그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보낸다. 자신의 만행을 의심하는 맥더프 장군이 반란군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그의 아내와 어린 아이들, 시종들까지 모조리 살육한다. 그렇게 맥베스의 광기는 왕국을 죽음의 공포로 뒤덮으며 그의 운명 또한 파국으로 몰아간다.

최고 권력자 앞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통치와 지배가 그것이다. 튼튼한 국력과 부강한 경제를 기반으로 국민들이 전쟁 걱정 없이,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도록 하겠다는 야무진 통치의 꿈은 정치인의 가슴에서 언제나 외줄 위를 걷는다. 매 순간 자신을 수양하지 못하고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면 제어 불가능한 군림과 지배의 세계로 달려가기 십상이다. 타인과 세상을 고통에 빠뜨리며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 제어되지 못하는 권력 욕망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성숙하지 못한 우리나라 정치 풍토에서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이 개헌을 통해 이루려는 꿈은 무엇일까. 통치를 위해서인가, 지배를 위해서인가. 그들은 현재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어찌 보면 약하디 약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인지도 모르겠다. 단독자로서는 최고 권력자가 될 자신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 함께 왕이 되자고 손에 손 잡은 300명의 맥베스.

단 하나의 최고 권력도 용인하지 못해서 법을 이용하여 불법 탄핵을 자행, 조장, 묵인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제외한 299명의 최고 권력자들을 너그럽게 두고 볼 수 있을까. 장차 300명의 맥베스가 일으킬 혼란이 지금보다 300배 더 커지고 더 많아지리라 상상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더구나 비례 연동제를 통해 의원들의 수가 수십 명 더해진다면, 400명 가까이 되는 최고 권력자들. 그들 모두가 최고 중의 최고가 되고 싶은 더 큰 욕망을 과연 얌전히 잠재울 수 있을까.

“여자로부터 태어난 인간은 멕베스를 해칠 힘이 없으며, 숲이 궁전으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

아버지 살해 누명을 쓰고 도망간 뒤 복수의 칼날을 갈아야 했던 왕자와 처자식을 무참히 잃은 맥더프 장군이 맥베스를 치러온다. 불안에 빠진 맥베스는 다시 마녀들을 찾아간다. 숲이 움직일 리 없고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 없으리라 안심했던 맥베스는, 그러나 마녀들이 들려준 예언의 허상을 확인하며 끝내 맥더프의 손에 목이 잘린다.

여의도 맥베스 300인도 어쩌면 세간에 떠도는 세 가지 예언을 들었을지 모르겠다. “미중전쟁에서 중국이 지지 않는 한, 그들이 조리 돌림해서 내쫓은 여인이 돌아오지 않는 한, 그들의 권력은 영원하리라.” 아마도 그들은 맥베스처럼 불안에 떨면서도 자신들의 권력이 무너지는 일 없으리라, 믿고 싶은 것 같다.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하는 예언은 세 번째다. 그렇기 때문에 숲을 움직인 맥더프의 군사들처럼 당신과 내가, 우리가 함께 실현시켜 저들의 철석같은 확신을 무너뜨려야 할 것도 바로 이 세 번째 예언이다.

“국민이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으로 깨어나지 않는 한, 그들의 지배는 영원하리라.”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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