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뚜렷한데도 선택권 막는 권력 횡포
어린 학생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무모한 정책 강행
지역 정치권은 여당 일색으로 반대운동에 우군(友軍) 부재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서울 송파구의 헬리오시티라는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신학교 반대운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이 아파트 내에 신설되는 3개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려고 하자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주 열린 주민간담회에서는 조희연 교육감이 지역 주민에게 등짝을 맞고(경찰 주장), 임산부인 학부모가 부상당해 119구조대에 실려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조 교육감은 혁신학교 지정을 1년 뒤로 미루는 한편 해당 학교들을 ‘예비혁신학교’로 만들기로 했다. 혁신학교 지정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이 사례는 현 정부와 관련된 여러 시사점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좌파 교육감들이 도입한 혁신학교는 올해 출범 10년을 맞으면서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공부 안 시키는 학교’ ‘전교조 학교’라는 평판이 나온다. 또한 학생 인권을 강조해 두발 염색과 파마, 장발을 허용하는 학교도 있고, 세월호 동성애 페미니즘 등 민감한 이슈를 놓고 토론 수업을 하는 학교로도 소개됐다. 좌파 쪽에서는 ‘민주적 학교 운영과 토론식 교과과정’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문재인 정부의 선거공약에 따라 ‘전국 확대’가 진행 중이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력 저하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학생들의 기초학력 미달비율이 일반 학교보다 3배 높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한국 교육에서 한번 학력이 뒤쳐진 학생은 상급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만회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혁신학교가 지향하는 교육목표는 현행 입시에서 대학들이 중시하는 수험생 역량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당연히 혁신학교에 배정되면 대학 진학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를 10년이나 해봤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더 이상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지 말고 빨리 그만두는 게 옳다. 혁신학교가 너무 좋은 곳이라고 선전하는 좌파 교육감들은 정작 자기 자녀는 외고 과학고에 보냈다. 자녀교육에 관한 한 전문가들인 수도권 교육청의 고위공무원 가운데 자녀를 혁신학교 보낸 사람은 32명 중 1명에 불과했다. 혁신학교 반대 시위에서 ‘우리 자식은 마루타로, 자기 자식은 외고로’라는 구호가 나온 이유다.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일은 문재인 정부 아래서 소득주도 성장, 탈 원전,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 ‘덜 내고 더 받는’ 매직 복지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무모한 교육의 실패는 곧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혁신학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도박이다. 진보 진영 인사들이 자식 교육에선 보수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혁신학교가 일단 들어서면 그 동네 학생들은 무조건 혁신학교에 다녀야 한다. 혁신학교를 피할 유일한 방법은 일반 학교가 있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것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학교를 전국 모든 학교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런 횡포가 없다. 혁신학교가 많아질수록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통해 학력 보충을 꾀할 수밖에 없고 사교육비는 크게 불어날 게 뻔하다.

정부는 혁신학교에서 한 술 더 떠 ‘민주시민학교’를 내년부터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는 학교라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선 모든 학교가 민주시민학교이지 따로 이름을 내거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다른 학교는 모두 ‘비민주학교’라는 말인가. ‘민주’라는 단어를 독점해온 이들의 편집증을 보여주는 동시에, 만만해 보이는 교육 분야에서 특정 이념을 드러내놓고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다. 현 정부에서 확대되고 있는 국가 개입과 통제의 검은 손길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번 사태가 함축하는 또 다른 단면은 헬리오시티 주민들에게는 정치적 우군(友軍)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서울시장, 송파구청장, 송파구 소속 시의원 6명 전원, 지역(송파을) 국회의원까지 모두가 혁신학교를 지지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중점 정책에 겁 없이 반기를 든 학부모들에게 어떤 보복을 할까 궁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반대해 거리로 뛰쳐나온 자영업자들에게 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아파트 주민들은 일당(一黨) 지배 체제 속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어 거대 권력과 힘겨운 싸움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는 경제학 용어인 ‘합리적 무지’가 작동한 대표적인 선거였다. ‘합리적 무지’는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를 설명하는 정치학 용어로도 사용되는데 선거 후보자를 잘 모르거나, 그들이 내놓은 여러 정책들에 대해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 단순하게 정당의 이념만을 보고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유권자들은 인물과 정책을 일일이 비교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보고 차라리 ‘무지(無知)’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간판만 내걸면 그가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대부분 표를 던졌다. 물론 이전 정권에 대한 응징의 성격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합리적 무지’가 아닌 ‘비합리적 무지’였다.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요즘의 국정 난맥상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지고 국가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무소의 뿔처럼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우기면 국민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 힘없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그토록 사정사정하는데도 강행되는 ‘혁신학교 독재’도 마찬가지다. 혁신학교 사태는 현 시국을 압축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