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는 성문법(成文法)과 불문법(不文法)이 있다고 배웠다. 우리는 성문법 국가다. 우리나라 성문법은? 제일 위로는 헌법. 그리고 밑으로는 민법, 형법, 상법... 등. 그리고 하위법으로 각종 법률 등등등 상당히 복잡하고 찾기도 힘들다. 내가 업무상으로 자주 접하는 각종 세법(국세기본법, 국세징수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등), 거기에 각 법의 시행령, 시행규칙, 훈령, 예규, 각종 법원(대법원 등) 판례 등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실생활, 특히 이 정부들어 몇 년째, 아마도 정권이 끝날 때까지 갈 적폐청산 등 정치에 적용되는 법은 무슨 법이 최고일까? 형법, 형사소송법? 아니다. 난 고거법이라고 생각한다. 고거법이란 이 정부에서 어느 한 범죄자를 기어이 죗값을 치루게 하기 위해 적용되는 법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요고(법) 적용해서 집어(잡아)넣어’ ‘안되겠는데요’ ‘그럼 조고 적용해 봐’ ‘그것도 좀 어렵겠는데..’ ‘그럼 이거로 넣어’ ‘그건 국민 감정상...’ ‘어이, 그러면 저거는 어때’... 해서 기어이 얽혀서 넣는다. 그리고 판결도 그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게 내가 말하는 ‘고거법’이다.

고거법의 대가가 현직 어느 지검장이라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박근혜와 최순실 엮을 때부터 이 친구가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 고거법에 앞서 국민 감정법, 또는 정서법으로 먼저 범인(犯人)으로 몰아간다. 이젠 공영 방송이 민노총이 장악했으니 더욱 쉽다. 인민재판처럼 이른바 그루빠 로우(떼법, group law)로 일단 여론으로 확신범을 만들어 놓는다. 그래놓고 고거법을 찾아 나름 적법(適法)하게 형량(刑量)을 선고해 집어넣곤 한다. 고거법마저 적용이 어려워지면 이미 개망신을 준 것으로 족하다. 그야말로 아니면 말고다.

예를 들어 볼까? 너무 많다.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

우선 한진그룹 관련이다. 회장님 사모님과 따님 둘이 연달아 누가 봐도 도덕적으로 흠결(欠缺)있는 행동들은 했다. 비행기를 회항시킨 큰 따님은 죄가 될 것이다. 작은 딸은 글쎄... -그래도 그런 짓을 저지르면 안되지만- 경범죄 위반 정도? 하여간 국민 감정상으로는 일단 싸가지가 없었다. 그러나 고거법은 이 사람들(딸, 모친)만이 아니라 그룹을 족치기 위해서인지 우리나라 공권력이란 공권력은 죄다 동원된다.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밀수, 회장님 자택공사에 회삿돈 사용 여부, 외국인 가사 도우미 불법 취업... 회장 부인은 조사를 받는 것 같더니 결과는 잘 모르겠고, 딸 둘은 대충 끝낸 거 같다. 아직도 회장은 몇 번 검찰이나 경찰 포토라인에 서는 것이 간혹 보도되었지만 잡아 넣을 정도는 안되는 모양이다. 거기에 직원과 노조분들은 경영진 사퇴하라고 가면쓰고 데모.. 아직도 고거법이 진행중이다.

거기다 아시아나 항공까지 비슷하게 가는데 요즘 다른 사건에 덮여서 조용하긴 한데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것 같다.

기무사의 이른바 ‘계엄령, 위수령’ 검토 문건도 그렇다. 대통령의 진노(震怒)와 외국에서의 특명으로 독립수사단 설치... 수사 결과는? 적용된 고거법은 공문서 위조라고 했던가? 전 기무사령관의 도피로 기소중지 처분 내리고 수사 종결. 그 사람이 기무사 문건을 전역할 때 갖고 다니고 지금도 보관 중인가? 전 사령관이 잡히면 쿠데타인가? 쿠데타를 사령관 혼자하냐? 당시 여자 국가원수의 피묻은 머리를 축구공 차듯이 퍼포먼스를 하는 이른바 ‘촛불혁명’, 그에 반대하는 ‘태극기 부대’의 데모... 공공질서를 해치고 국가는 위기에 빠질수도 있는데 게엄령을 실제 하지는 않더라도 검토는 당연한 직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면 ‘직무유기’ 아닌가? 쿠데타 한다는 무리가 그 내용을 국방부 내부 컴퓨터에 등재까지 했단다. 하여간 기무사까지 해체하고... 이걸 쿠데타 음모라고?

삼성(三星)은? 옛날 어느 대통령분이 세 가지 문제(첫째, 강남, 둘째 서울대, 셋째 삼성)를 없애거나 혼을 내거나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지. 이 삼성에 요사이 가해지는 양태를 보라. 박근혜에게 뇌물죄, 노조 설립 방해죄, 삼성 바이오 분식회계... 안 건드리는 기관이 없다. 그중 공정거래위원회가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다. 비록 졸병이자만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나름 와이로(뇌물)도 받아 먹은 적이 많다. 액수도 적었지만 그래도 내 손에 직접 다 받았다. 현찰로...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직접 현금을 주었나? 왜 주었지? 하여간 100% 고거법으로 엮을 것 같다.

박근혜는 또 어떤가. 뇌물수수죄 외에 하도 고거법의 죄목이 하도 많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러나 검찰 신문조서를 보면 내가 보기엔 무엇이 죄가 되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약간 무능해 보이긴 했지만 외국 나가서 하는 행동 보면 현 대통령님보다는 훨씬 유능해 보였다. 적어도 국가원수 대접도 더 잘 받고 대화도 가능했고, 잠을 자거나, 참석 사진도 못찍는 모자란(?) 행동은 별로 하지 않은 것 같다. 하여간 몇 십 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정부가 지원한 국립대학(교도소)에서 뒤늦게 -어쩌면 형을 살다가 생을 마감할- 늦은 학창생활을 하고 있다. 뇌물수수죄도 직접 돈을 받은 것은 없단다. -뇌물을 주고받을 만한- ‘독대(獨對) 등’ 정황증거도 많고, -살다가 처음 듣는- 경제공동체(?)라는 최순실이 받았단다. 그것도 마장마술경기(馬場馬術競技)용 말 지원했다고...

김관진 전 안보실장은 어떤가. 독사파(獨師派, 독일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대부라고 했던가? 하여간 저 북한에서 눈엣 가시처럼 여기던 우리의 장수(將帥)가 아니었던가? 정의를 위한 눈매라고 할까? 이북 친구들도 불편해 하는 보기드문 전형적 장수여서 개인적으로 존경해 마지 않는다. 여간해서는 불의와는 상종을 하지 않을 -삼국지(三國志)의 ‘관우(關羽)’의- 애국심에 불타는 눈매를 갖고 있는 그런 분 같다. 그렇지만 그 양반도 ‘고거법’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계속 이일저일 트집을 잡는 것을 보니...

며칠 전 자살을 선택한 전 기무사령관 이재수 중장 또한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고거법을 피해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든 김관진과 엮으려 했을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항상 하던 수법,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말이다. 공무원 생활 2~3년 지나면 전출을 간다. 감사(監査)는 1년 뒤에 나온다. 1년 전 업무인데도 제대로 했는지 긴가민가 한다. 하물며 4,5년 전 일이라면 까마득하다.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아들 방까지 수색하다니... 거기다 관련 서류와 컴퓨터 자료까지 싸악 압수수색하였다니 그중에 무엇이 문제가 될지 당사자(이재수)로선 깜깜이다. 자살하지 않았다면 100% 고거법에 안 걸려들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명예를 중시하는 참군인 같다. 삼가 명복을 빈다.

1988년 일이다. 당시 ‘5공 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증인으로 나왔던 각종 인간들이 노무현같은 의원들의 칼같은 질문에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30대였던 나는 출장 중 TV를 보면서 ‘저런 죽일 놈들’ 하며 욕을 해댔다. 불과 7~8년전 일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 나이 60 넘기고 보니, 아니 훨씬 전부터 치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상당하다. 오히려 10대나 20대 때 기억은 잘 나는데 최근 일은 증거(사진 등)를 보고나서야 ‘그랬나?’ 싶다. 집사람과 애들에게의 놀림은 이제 오히려 자연스럽다.

고거법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전 육군 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이 아닐까 싶다. 이 양반도 김관진 실장의 후배인 독사파라지. 그렇다면 육사 성적도 괜찮았을 것이다. 매년 졸업생중 미국 육사와 독일 육사에 1,2명씩 유학을 보낸다고 하니 애국심은 물론 철저한 국가관과 실력이 있어야 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육군 대장을 사령관 때 부하인 관사의 ‘당번병’ 인권(?) 문제를 ‘떼법’으로 반쯤 죽여 놓는다. 국민 감정으로 우선 ‘쥑일 놈’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고거법을 적용한다. 그래도 먼지 털듯이 털다털다 결론으로 적용한 고거법은 친구인 고철업자로부터 몇 백 만원 상당의 여행경비를 지원받았다는 죄였다. 박대장의 당번병 사건은 잘 아다시피 흐지부지 되고 전혀 다른 범죄인 뇌물수수죄라는 고거법을 적용해서 개망신을 시킨다. 검찰 수사로 대장 연금을 주지 않아도 되니 국고에 보탬이 되었나?

이 ‘당번병’이라는게 병(兵)에게는 기가막힌 보직이다. 웬만한 빽으로는 가기도 어렵지만 육군 출신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1년에 한 번 받는 유격훈련(遊擊訓練)도 빼 준단다. 거기다 사령관이나 사단장, 연대장 쯤 되어야 당번병을 둘 수 있다 보니 아무나 함부로 대하질 못한다. 나도 처가 쪽에 사단장 출신 장성이 한 분 있어서 잘 안다. 1990년대 쯤 일이다. 육사를 나온 이 양반이 경기도 모처에서 대령으로 여단장을 할 때 아이들을 데리고 토요일 저녁에 숙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혹시 별을 달지도 모를 대령 계급 이어서였나? 처가쪽으로 언니뻘 되는 부인의 말 한마디가 멋있다. 당번병에게 “×병장, 우리 동생부부야, 사적(私的)인 손님들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쉬어” 아예 나오지도 못하게 한다. 솔직히 난 ‘쇼’한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들으니 대부분 장급(長級)부인들이 이런 당번병들을 직접 고르(뽑)지도 않고, 사적인 손님 등이 올 때면 전혀 심부름 등을 부탁하지 않는단다. 왜? 말 나오는 것이 두렵고, (당시) 보안대 등에 찍히면 승진도 어렵단다. 그분 말씀이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이기 때문에 인격을 존중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속으로 꽤 존경스러웠다. 벌써 20년 훨씬 전인데도 그랬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이 요즘 말하는 별건(別件) 수사다. 수사기관에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고거법을 가지고 장난을 쳤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이거 아니면 저거 식으로 상대방(국민)을 괴롭혔던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지금에서야 후회가 된다. 국민이나 기업에게 이제 치사하게 ‘고거법’은 써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영원히 없어져야 할 병폐다. 더구나 법을 전공한 분이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 아니신가?

김명호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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