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탈원전에 불안해진 에너지 수급…중국·러시아 전기수입으로 해결하는 방안 검토

한국전력공사가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을 막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현재 100% 자국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신뢰도가 떨어지는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면서 문재인 정부 스스로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이 11일 한전에서 제출받은 '동북아 계통연계(전력망 연결) 추진을 위한 최적 방안 도출 및 전략 수립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탈석탄·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러시아의 전기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경유해야 하기에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전이 수립한 '동북아 전력망 연결 사업'은 한국 인천과 중국 웨이하이 사이에 해저 케이블을 연결해 전기가 오갈 수 있는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과 한국 경기 북부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전기가 오갈 수 있는 전력망을 구축하는 사업이 주를 이룬다. 경기 북부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전력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경유해야 한다. 

인천과 웨이하이 사이 370km 구간에 해저 케이블을 연결하고 2.4GW(기가와트) 규모의 전력망을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2조9000억 원이다. 북한을 경유하는 경기 북부와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은 1000km, 전력망은 3GW로 총투자비는 2조9000억 원이다.

한전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기를 수입하겠다고 나선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저렴한 발전 단가 때문이다. 한전은 중국 산둥지역의 발전 단가가 2025~2054년 1kWh당 평균 약 60원으로 이 기간 한국(102원)보다 42원 싸다고 했고 러시아와는 2027~2056년 평균 가격 차이가 47원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 기술이 뛰어난 한국이 탈원전만 하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발전단가보다 저렴할 수도 있는데 애써 탈원전을 하면서 비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나서면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기를 수입해야 하는 위험성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섭 의원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의 폐해가 결국 전기 수입 추진까지 이어지게 됐다"며 "국가 안보를 담보로 한 무책임한 탈원전 정책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것에는 정치·외교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북한을 경계하기 위해 도입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를 자국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하고 일명 '사드 보복'을 한국에 가한 나라다. 국내 유통·자동차·관광 산업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힌 중국이다. 그리고 최근 미국과의 관계까지 좋지 않은 중국이 한미동맹 등 미국의 강력한 우방 중 하나인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유럽에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는 유럽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가스를 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와 협업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러시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심지어 한전도 보고서에서 "정치·외교적 마찰을 고려해야 한다"며 "북한 영토에 설치된 송전망 운영권 확보가 가능한지 고려해야 한다"고 자인하고 있을 정도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주한규 교수는 "중국·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한다는 것은 곧 에너지 속국이 된다는 의미"라며 "수십 년 동안 원전을 통해 이룩해온 에너지 자립이 정부의 무책임한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꼬집었다.

한전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겠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 역시 탈원전이라는 정책을 펼치면서 일어난 인재(人災)를 구조적 문제로 해석하는 오류를 바탕으로 전개하고 있어 비판이 나온다. 한전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면 국내 화력발전소 가동이 줄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 감소 등으로 발생하는 효과가 1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주장했다.

화력발전에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탈원전을 시행하면서다. 발전단가가 비싼 화력발전은 에너지믹스에서 '0순위'인 원전에 밀려 항상 후순위였지만 생산능력도 확보되지 않은 태양광을 무분별하게 육성하며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 원전을 대체하겠다는 에너지업계 시각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현 정부가 펼치면서 석탄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가동이 중단된 원전을 갑자기 돌릴 수 없고 태양광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미미하기에 결국은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한 것이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중국은 주로 석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데 중국이 한국에 전기를 수출하기 위해 석탄 발전량을 늘리면 국내에서 석탄 발전을 줄여도 미세 먼지 저감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중국은 자국의 미세먼지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둥과 푸젠 등에 원전을 집중적으로 짓고 있고 탈원전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느낀 국내 원전 기술자들을 대거 스카웃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한전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고 일본으로는 전기를 수출할 것이라는 계획도 세웠다. 일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을 연결하는 '동북아 수퍼 그리드' 사업을 한전보다 앞서 주장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북한을 거쳐야 하는 현실적 한계가 있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한전은 한국 경남 고성과 일본 기타큐슈(1안)·마쓰에(2안) 구간에 각각 전력망을 설치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경남 고성과 기타큐슈 구간은 220㎞로 총투자비가 1조9000억 원이 소요되고 고성과 마쓰에 구간은 460㎞로 총투자비 3조3000억 원이 든다.

작년 9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력 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경제 번영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 이후 본격적으로 검토가 시작된 해당 사업은 지난 8월 한전이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16억 원을 주고 경제성 등을 분석 의뢰하면서 본격화됐다. 한전은 사업에 최소 7조2000억 원에서 최대 8조6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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