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책임감 혁명'으로 공산화 막아 내자
[김정호 칼럼] '책임감 혁명'으로 공산화 막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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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화·국유화 등 공산화 현상이 근로의욕 줄일 것...국가에 공짜 요구하는 국민들의 의식부터 바꿔야
권리·재산권 확립 내세웠던 서구의 시민혁명과 달리,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민중의 권력을 확립하는 과정
새로운 세대는 대통령이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하면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 해야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에 공산화의 구름이 짙어져 간다.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백두칭송위원회’니 ‘김정은 환영단’이니 하며 설치는 자들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 변수가 없더라도 남한 만의 공산화 추세가 진행되어 간다.

첫 단계는 무상화다. 곧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무상으로 공급될 것이다. 공짜는 수요 폭발과 공급부족을 불러오고 결국 배급제로 모습을 바꿀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학교와 병원과 기업 등의 국유화다. 사립유치원 민간병의원, 사기업들은 비리와 탐욕과 갑질을 이유로 국유화 되어 갈 것이다. 사람들은 수동적이 되고 게을러질 것이다. 경제는 멈추어 설 것이다. 세 번째는 강제노동이다. 멈추어 선 경제를 돌리려면 강제로 일을 시킬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배급에 목을 매는 신세다 된다.

이런 말을 비웃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공산화가 아니라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꿈 깨시라. 그런 복지국가라 되려면 국민이 공짜 심리를 버려야 한다. 복지혜택을 누리는 대신 막대한 세금을 부담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모든 스웨덴 국민은 소득의 최소 32%를 개인소득세로 낸다. 부가가치세는 무려 25%이다. 그렇게 내기 때문에 복지제도가 지속가능하다, 그런 세금을 내고도 근로의욕이 유지되기 때문에 경제가 작동한다.

현재의 심리상태가 유지되는 한 한국인은 그럼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세금이 부과된다면 근로의욕을 잃을 것이고 지하경제는 창궐하여 경제가 마비될 수도 있다. 국가의 간섭과 강제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처럼 가면 한국은 북유럽 복지국가가 아니라 북한 같은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국민은 국가의 노예 신세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멈추려면 국민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국가에 공짜를 요구하는 의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한국인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세 번의 큰 의식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는 625 전쟁 이후의 반공혁명이다. 한국인은 원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서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호적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맞다. 상해임시정부의 강령이나 제헌헌법의 내용이 한국인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잘 드러내 준다. 625를 겪으면서 비로소 대다수의 한국인은 공산주의자를 원수 또는 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총칼로 자기를 해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반공사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 반공 사상은 초기의 자유민주주의, 초기의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국가의 보살핌을 바라는 태도, 그러면서 대가는 치르지 않으려는 태도, 이유 없이 부자를 미워하는 태도 등 공산주의의 씨앗은 한국인의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둘째는 박정희 대통령 이후의 성취감 혁명이다. 한국인은 원래 도전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그 반대였다. ‘한(恨)’은 수백년 또는 천년 이상 한국인를 대표하는 정서였다. 슬픔, 억울함, 원망 같은 것이 덕지덕지 쌓인 상태, 하지만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 한(恨)이다. 한은 바로 패배주의를 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팔자타령을 입에 달고 살았다. 박정희는 패배주의에 찌든 한국인들에게 일어나서 일하라고 독려했다.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 나가서 물건을 팔고 돈을 벌어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될 법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박정희의 절대권력이 무서워서 한국인들은 일했고 해외로도 나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돈이 벌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가난에서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팔자타령을 잊어 갔다. 이제 누구도 ‘한’을 말하지 않는다. 팔자타령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성취감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 번째는 1987년 이후의 민주화다. 그전까지 한국인에게 대통령은 임금 같은 존재였다. 절대적 권력이었다. 민주화를 거치면서 국민이 대통령 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탄핵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감옥에 까지 넣었다. 민중이 최고의 권력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지난 30년간의 이 움직임은 선진국들이 거쳐 왔던 시민혁명인 듯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는 서유럽의 것과 다르다. 서구의 시민혁명이 개인의 권리와 재산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던 반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민중의 권력을 확립하는 과정이었다. 즉 민중이 원한다면 한 두 명 쯤의 자유와 재산권쯤은 얼마든지 빼앗아도 괜찮다는 사고 위에 서 있다. 특히 촛불 탄핵 사태 이후 그 성격은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에트 전체주의,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에 다가가고 있다. 당장은 달콤하고 통쾌할지 모르지만 한국인을 지옥으로 이끌어 간다.

나는 젊은이들이 본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흐름을 막아내야 한다고 본다.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 핵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고 결심하자. 그리고 그 당당함으로 국가 의존증을 쓸어내자. 국가에게 내 필요를 채워달라고 조르는 어리광, 나보다 잘 난 자들을 끌어내려달라고 조르는 비겁함, 이런 것들을 부숴버리자. 대통령이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하면 당신이 뭔데 내 인생을 책임지느냐며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되는 과정을 거쳤다.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책임감 혁명, 네 번째의 사상혁명에 돌입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김정호의 경제TV 대표, 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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