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600년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내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전(大戰)이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졌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가 거느리는 서군(西軍)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군이 주축이 된 동군(東軍)이 천하의 대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일전을 겨루었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의 쇼군(將軍)이 되어 그후 2백여 년의 에도(江戶)시대를 열었다. 서군이 이처럼 중대한 전투에서 패한 이유는 이시다 미츠나리와 다른 다이묘(大名)간에 야습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전술을 놓고 사소한 다툼이 벌어졌는데 이를 고깝게 여긴 다이묘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군대를 진격시키지 않아 전세를 그르친 것이다. 작은 것에 억매어 단결하지 못하고 대세를 거르친 전형적인 예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뒤집어지기 직전에 있는 배와 같다. 어떻게 해서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배의 조종간을 모든 선원이 힘을 합쳐 반대쪽으로 돌려야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어지지 않고 전진하여 항구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재봉 전총리는 자유한국당에 대하여 이미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나 마찬가지 신세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가라앉는 배에서 누가 배를 이 거센 바다로 몰아넣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앞에 놓고 함상에서 서로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이른바 친박 비박의 탄핵책임론이 그것이다.

모든 정치인에게 권력은 궁극의 목적이요, 마약과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권력욕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씨도 안 먹힐 것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만은 국민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제발 서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탄핵에 대한 책임논쟁은 정권을 찾아온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사소한 다툼으로 천하를 놓진 세키가하라 대전의 서군처럼 되지는 말아야 한다.

박근혜 자신도 탄핵에 대하여 완벽하게 자유스럽지는 않다. 박근혜는 성녀(聖女)가 아니다. 필자는 2016년 10월 말경 서울역에서 목요일마다 서경석 목사 주도로 탄핵반대 집회가 열렸을 때 처음부터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 태극기 부대의 일원이다. 필자가 참여한 이유는 박근혜 개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면 나라가 종북세력에게 넘어가 혁명적 상황이 닥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의 ‘적폐청산’과 김정은 위인맞이 대규모환영단 구성이 그런 상황이 아닌가?

프랑스 작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라는 소설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아니?’ 어린 왕자가 대답한다. ‘성공하는 것?’ 여우는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라고 답한다. 박근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 주변 정치인들의 마음,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 이는 박근혜의 가장 큰 실정(失政)이다. 가짜 정보이든, 거짓이 산처럼 쌓여서이든 촛불 집회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 조금만 일찍 마음을 비웠더라면 얼마든지 수습할 길이 있었다. 짧은 지면에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과정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한 가지 예만을 들면 초기에 자신이 외교와 의전 상의 국가원수로 남고 황교안에게 실질적인 대통령 권한을 이양하였으면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끝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시기를 놓쳤고 그 후 나라의 상황은 지금처럼 국가폭망의 아수라장으로 흘러갔다.

박근혜는 백화점식 개혁으로 국민 모두를 골고루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개혁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며 국민 골고루를 기분나쁘게 하는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개혁이라는 것은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면 개혁이지만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면 폭정(暴政)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국민의 80%는 자신의 절대적인 지지그룹으로 만든 다음 민노총 같은 포악한 거악(巨惡) 집단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개혁의 전쟁을 벌였어야 했다. 그랬으면 현재의 무소불위 괴물집단 민노총은 과거에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개혁을 표리부동한 몇 몇 친박 아부꾼들만 거느리고 벌여 나갔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군이 정치적으로 사망하고 있음에도 누구하나 몸을 던져 국회에서 탄핵을 막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지만 정권초기에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준을 연 4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낮추었는데 이는 상당히 많은 중산층과 부유층을 모두 적으로 만든 대 실패작이었다. 공무원 연금, 김영란 법, 공무원 골프 금지, 전두환 재산 강제환수, 전교조불법화, 노조와의 갈등, 경제 민주화, 4.3사건 희생자 추념일 제정 등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보수, 진보를 똑같이 등돌리게 하는 개혁을 전방위적으로 몰아부쳤다.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다고 믿은 국민이 부글부글 끓는 심정(心情)을 누르고 있었는데 그만 최순실 사건으로 폭발하고 만 것이다. 처음에 촛불들고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좌익세력인 것은 아니다.

그기에다 박근혜의 개인 스타일도 불에 기름을 끼얹듯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얼음공주’라는 별명처럼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냉랭한 처신도 아주 좋지 못했다. 필자는 지금 도덕적 당위성을 논하기 위하여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왜 이렇게 되었는가 과거의 상황을 서술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한국인은 아시아의 라틴민족이라고 일컬어진다.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기분에 좌우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지도자를 평할 때 자질과 본성, 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외관과 표피적으로 평가한다. 뒤에서는 국민을 배신하고 나라에 대한 반역을 저지를지언정 앞에서는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지도자에게 깜빡 죽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다. 비록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현실이 그렇다면 주변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하고 전화도 받아주고 했어야 했다. 전화 안 받는다고 토라져서 중요한 개혁 안건에 대하여 딴전 부리고 직권상정을 거부한 국회의장이라는 자가 천하의 비열한 인간이라고 욕할 수 있으나, 그렇게 만든 지도자 역시 하다못해 1%의 책임이라도 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영어(囹圄)의 몸이다.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박근혜를 석방하고 박근혜가 휠체어 타고 머리를 산발한 채 관중앞에 나타나면 야권이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거짓의 산위에 이루어졌든 어찌 되었든 그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다. 진정 박 전대통령이 이처럼 침몰하는 대한민국 호를 다시 떠올려 대양을 항행(航行)할 수 있게 하려면 자신을 뛰어넘어 자유한국당이 모든 것을 풀고 서로 단합할 것을 호소하여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영원히 사는 길이요 자유한국당이 사는 길이다.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 중에서도 자신이 당의 화합과 전진에 장애가 된다면 기꺼이 백의종군하여 일신의 부귀영화(富貴榮華)보다는 진정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진충보국(盡忠報國)하겠다는 분이 많이 나오시기를 바란다. 지금 추하게 살아서 추명만대(醜名萬代), 더러운 이름은 만대에 남길 것인가, 지금 죽어서 백세유방(百世遺芳), 유구한 역사에 꽃다운 이름을 전할 것인가? 지금 어떤 결정을 해야 내가 영원히 살고 이 나라의 자유시장경제가 번영할 것인지 자유한국당의 정치인은 성찰하시기 바란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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