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 전공.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미국이 최고의 부유함을 구가하던 1963년 뉴욕주 로클랜드 카운티에 살던 한 유복한 중산층 가정주부가 책을 썼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엄마가 된 여자의 좌절과 고독을 이렇게 묘사했다. “침대 정리 하고, 시장 보고, 소파 덮개 갈고, 아이들과 피넛 버터 샌드위치 먹고, 보이스카웃이나 걸스카웃에 아이들 데려다주고, 밤이면 남편 옆에 누울 때 나는 자신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게 다 인가?”

물론 그녀는 아주 평범한 가정주부는 아니었다. 명문 여대인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버클리 대학원 연구생으로 1년 다녔다. 결혼과 함께 학업을 중단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지방 신문에 가끔 프리랜스 기사를 투고하기도 했다. 나중에 박사학위를 따고 심리학자가 될 수도 있었을 자신의 커리어가 좌절되었다는 생각에 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도시 근교에 살고 있는 자기 또래 중산층 가정주부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녀는 전업주부들 대부분이 자기처럼 막연한 불만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써냈다. 현대 여권운동의 불을 지핀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가 탄생한 순간이다. 지금 보면 너무나 온건하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책이 1964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백만 부 이상 팔리면서 전 세계 여권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던 1세대 여권운동과 달리 이제 2세대 여권운동은 여성의 자아실현을 위한 투쟁으로 넘어갔다.

여성의 신비

예쁘게 에프론을 입고 남편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주는 아내의 이미지
예쁘게 에프론을 입고 남편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주는 아내의 이미지

2차 대전 후 대기업의 제품 광고들은 행복한 표정의 가정주부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대부분 대도시 근교 넓고 쾌적한 주택에 살고 있었으므로 프리단은 이들을 ‘교외거주 가정주부’ (suburban housewives)라고 명명했다. (우리로 치면 판교나 수지, 분당 혹은 일산에 사는 고학력 중산층 가정주부들이라고나 할까). 용모는 아름답고 성격은 부드러우며 더 할 나위 없이 여성적이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예쁜 옷을 입고 깨끗한 실내에서 아이들과 웃으며 놀고 있는 엄마였고, 지금 막 전기 오븐에서 잘 익은 요리를 꺼내는 예쁜 주부였으며, 식탁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행복한 아내였다. 던 새로운 타입의 여성 군(群)이었다.

이들 서버번 하우스와이프들은 언제나 완벽한 아내 완벽한 어머니였다. 새로운 가전제품이 발명되어 단조롭고 고된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직업은 갖지 않았으며,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 교육에만 올인 하였다. 이것이 1950~60년대 미국의 이상적 여성의 모습이었다. 오로지 가정생활을 통해 여성성을 실현한 여성만이 행복하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베티 프리단은 이런 허구의 여성상을 ‘여성의 신비’라고 불렀다. 여성의 신비는 교육, 언론, 학문을 통해 강화되었다.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은 여성잡지나 상품 광고들이 보여주는 ‘행복한 가정주부’ 상에 자신을 맞추려 애썼다. 그러나 완벽하게 가정을 잘 꾸리고 있는 가정주부들조차 자신에게 뭔가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여성의 신비라는 고정관념에 길들여져, 자신들이 행여 공부를 더 하거나 직업을 갖고 싶어도, 그것이 남편의 직업적 행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이 느껴져, 결국 직업적인 야망을 포기하고 가정주부로 남았다. 그러나 몇 년 지나면 전업주부로서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막연한 불행감을 느끼게 된다.

딱 꼬집어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느낌을 베티 프리단은 ‘이름 없는 문제’(problem that has no name)라고 명명했다. 이상화된 가정주부의 이미지가 결국 여성들에게 정체성의 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자기 세대가 그 첫 번 희생자라고 믿었다. 즉 가정적 여성이라는 이상화된 이미지를 통해 직업을 포기하도록 강요된 첫 희생 세대라는 것이다.

가사 노동이 만악의 근원

요리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가정주부를 보여주는 광고 사진
요리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가정주부를 보여주는 광고 사진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가 정착하게 된 또 다른 요인으로 1960년대 소비자 경제를 예로 든다. 소비자 경제는 가정용품을 구매하는 가정주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연히 광고는 주부들을 타겟으로 삼았다. 밝은 광고 이미지 속에서 여자들은 요리, 청소 등 전자기기를 솜씨 좋게 다루는 가사 전문가로 등장한다. 여성의 신비에서 거대한 이득을 취했던 광고주들은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정주부들을 가사 ‘전문가’로 찬양했다. 여성을 가정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업의 술수라는 것이 프리단의 생각이다.

그러나 시간을 절약해주는 수많은 제품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주부들은 하루 종일 청소와 식사 준비로 종종거리며 늘상 비효율적인 가사 운영을 하기 일쑤였다. 프리단은 이것을 여자들의 무의식적 자기방어 기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할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자기도 모르게 집안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질질 끌어 마치 이것이 풀타임 직업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자기 존재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가사 노동은 만악의 근원이었다. 가정주부로서의 삶은 여성으로 하여금 완전하고 자율적인 정체성을 개발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프리단의 생각이었다. 집에만 갇혀 있는 여성들은 자녀들을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삶을 지배하려 든다는 것이다.

운 좋게 사회에 진출한 여성이라도, 비즈니스건 예술이건 학문이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2류 시민으로 취급 받는다고 했다. 그 근거로 그녀는 당시 크게 주목 받던 심리학자 에이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을 인용했다. 매슬로우에 의하면 이 사회에서 남자들은 좀 더 높은 자아실현을 추구하도록 기대되는 반면 여자들은 기본적, 생리적 욕구만 충족하도록 허용된다. 프리단은 여성에게도 인간으로서 자기를 완벽하게 개발할 자유가 주어져야 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라고 했다. 결국 가사노동을 버리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되었다.

그녀는 책이 나온 후 남편과 이혼하고,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를 창설하여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2000년에 나온 회고록에서는 자신이 매 맞는 아내였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여성의 신비』 비판적으로 읽기

“이것이 다 인가?”라는 한 젊은 여성의 질문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듯 보이지만 실은, 고등교육이 현저히 팽창하여 많은 여성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된 1960년대의 서구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여권 운동의 새 물결은 고등 교육 기회와 함께 기혼 여성들이 대거 노동현장으로 유입된 역사적 배경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의 백인 중산층 여성 이야기일 뿐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걸핏하면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무슬림 문화권까지에는 아직 관심이 없었다 해도, 미국 내 흑인 여성 또는 백인 저소득층 여성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도 없다. 6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가정을 박차고 나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한 욕구를 표출했지만 그것은 결코 경제적인 필요 때문이 아니었다. 수입이 그러한 욕구의 한 부분이었다 해도 그것은 수입 자체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의 허가 없이 지출과 저축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들이 집밖으로 나가려는 동기는 어디까지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요구였다. 남편과 가족의 부속물로서가 아닌 자기 이름으로 하나의 인간이 되려는 요구, 주부와 어머니라는 한 종(種)의 일원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평가받고 싶다는 요구였다.

『여성의 신비』1장은 “나는 남편, 아이들, 가정 그 이상의 것을 원해” 라는 여성들의 내면의 소리를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으로 끝맺고 있다. 남편, 아이들, 가정을 넘어서는 ‘그 이상’이란 직업적인 커리어를 말한다. 가사노동은 하찮은 것이고, 밖에 나가 자기 직업을 갖는 것만이 자아실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주부 자신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어 남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누가 돌보고 집안 청소는 누가 하는가? 이런 일을 시키기 위해 집으로 불러들일 또 다른 여성들에 대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편 없고, 아이 없고, 집 없는 유색인종 또는 저소득층 백인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소위 전문직 여성의 ‘커리어’만이 여성의 자아실현이라고 한다면 파출부, 보모, 공장 노동자, 점원 등으로 일하는 여성들의 노동은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허드렛일을 하는 계층은 따로 있다는, 굉장한 계급의식이거나 아니면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공감능력의 부재다.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를 썼을 때 미국에서는 이미 여성의 3분의 1이 노동 현장에서 일 하고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가정주부가 되기를 원했지만 오로지 유한계급의 여성들만이 여유 있는 가정주부가 될 수 있었다. “직업이나 일을 결혼생활 및 가족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게 프리단의 문제의식이었는데, 이런 선택은 당시 세계 대부분의 여성과 빈민여성들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여성은 행복해졌는가?

“마침내 자유롭게 해방되어 자기 자신이 될 때 여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베티 프리단은 55년 전에 이런 질문으로 책의 끝을 맺었다.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2018년 현재 미국에서 고교 졸업생과 대학졸업생의 수는 여자가 남자 보다 많다. 평균 수준의 4년제 대학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55%이다. 운전면허도 여자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독신 여성은 독신 남성보다 두 배 더 좋은 집을 산다.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살고, 신용 등급도 높다. 국회의원에 출마할 경우 여성은 남성보다 당선될 가능성이 더 높다. 남자와 여자의 임금 차이는 거의 없다. 어떤 직업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임금을 상회했다. 전문직에서도 여성의 숫자가 남성을 넘어섰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대부분의 상사는 여성이다.

“이게 다 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여성들은 투쟁하여 사회에 진출하고 자아를 실현했다. 베티 프리단이 설정한 기준에 따르면 여권 운동은 완전히 승리했다. 그런데 그 수혜자들은 어떻게 느끼는가?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시카고대학에서 1972년부터 사회조사 데이터를 수집했는데, 놀라운 것은 지난 40년 간 여성들의 행복도가 급속하게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연구 초기에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큰 행복감을 표시했었다. 그런데 그 후 여자들은 점점 덜 만족스러워 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만족해한다. 수입에 관계없이 그렇다. 여성들은 1972년 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돈을 번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행복해 하지 않는다. 아마도 돈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연구자가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여자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경우 결혼 생활은 더욱 불안정하고, 이혼으로 귀착되는 비율이 높았다.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압축적 근대화를 이룬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그 변화는 더욱 극적일 것이다. 심각한 결혼난이나 출산율 저하, 또는 응답자 50% 이하의 젊은이들이 반드시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여론조사 결과라든가, 빠르게 전파되는 동성애 경향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아이는 누가 키우고 집안 청소는 누가 하는가?”라는 가상의 질문에 아예 “결혼하지 않으면 되지”, 또는 “아이 낳을 생각이 없어”라고 젊은 여성들은 대답한다. 우리는 현모양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고, 세상은 진보하였다.

그러나 여성 차별에 항의한다고 혜화역에 여자들 수 만 명이 모인다든가, 최근 이수역에서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 육탄전을 벌인 사건이라든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여혐이니 남혐이니 하며 악다구니 하듯 싸우는 젊은 남녀들을 보면 한국 여자들도 그렇게 행복해 진 것 같지는 않다.

지겨운 가사노동을 버리고 사회로 나와 직업을 갖고 자아실현을 했는데, 여성들은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또 다시 “이게 다 인가?”라는 쓸쓸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비록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채식주의자』니『82년생 김지영』이니 같은 기괴하고 황당한 소설로 우회하거나 또는 과격한 운동의 모습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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