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지사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아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없어"
"의료비 폭등할 것" 우려에 의료계에선 "영리병원에 대한 잘못된 편견 많아"
대한의사협회 "녹지국제병원 개원 의료영리화 시발점 현행 의료체계 왜곡 유발"

국내 첫 투자개방형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내년 초 개원한다. 정부가 2002년 국내 경제자유구역 안에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을 허용한지 16년 만이다.

그동안 투자개방형병원은 병원이 사적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의료비가 수백만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주장에 막혀 정부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설립에 차질을 빚어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5일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에 들어서는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건부 개원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이날 오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 과로 한정했으며,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으므로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고려해 도민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는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 취지를 적극적으로 헤아려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제주도는 앞으로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 허가 취지와 목적을 위반하면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는 조건부 개설 허가 이유로 국가적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건전한 외국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들었다.

도는 외국의료기관과 관련해 그동안 우려가 제기돼 온 공공의료체계의 근간을 최대한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투자개방형병원 도입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김대중 정부 당시인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당시 이 법은 외국인이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외국인 전용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외국인의 투자와 입주가 예상을 밑돌았고 내국인을 진료하지 않으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정작 병원을 세우겠다는 외국인 투자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당시 재정경제부는 외국인 전용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런 내용으로 2004년 말 법이 개정됐다.

이후 제주도에선 2005년 의료관광을 목적으로 토론회와 공청회를 이어갔고,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11월 국무회의를 통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을 의결하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 법은 2006년 2월 제정됐으며,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인 경우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제주에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게 했다.

2006년 12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서귀포시에 의료산업 활성화를 위한 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이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신규 핵심프로젝트로 확정돼 추진됐다. 그러나 투자개방형병원을 반대하는 각종 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2012년에는 중국 녹지그룹과 제주헬스케어타운 투자유치와 관련한 협약(MOA)을 체결했고, 박근혜 정부가 2014년 2월 투자개방형병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발표하며 투자개방형병원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5년 녹지그룹은 건립 사업계획서를 제주도에 제출했으며, 그해 12월 보건복지부는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사인 녹지그룹이 제출한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이후 2016년 4월 부터 녹지국제병원 건축이 착공됐다. 녹지제주유한회사는 지난해 7월 28일까지 총 778억원을 투입해 녹지국제병원을 준공한 데 이어 의사 등 인력 134명(도민 107명)을 채용하고, 한 달 만인 8월 28일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가 공포된 이후, 공론조사위원회는 지난 10월 4일 도에 '녹지국제병원 불허'를 권고하면서 논란이 또다시 가열된 것이다.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이같은 권고를 근거 삼아 원 지사가 도민을 배신하고 투자개방형병원을 선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녹지국제병원을 시작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지고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의료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이같은 주장이 터무니 없다고 반박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한 교수는 "투자개방형병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너무 많이 깔려있다"며 "기존 병원들은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해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거나, 미래를 위한 각종 투자는 은행 대출에 의존했기 때문에 병원이 잘못되면 의사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입장에선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국내에서도 받을 수 있음에도 아직 한국에선 외국인에게만 허용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녹지국제병원 개원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날 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국내 의료체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의료영리화의 시발점"이라며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용에 따라 현행 의료체계의 왜곡을 유발하고 국내 타 의료기관과의 차별적인 대우로 인한 역차별 문제 등 많은 부작용이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협은 "외국 투자자본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의료기관은 우리나라의 기존 의료기관 같이 환자의 건강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수익창출을 위한 의료기관 운영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외국의료기관이 외국인 환자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본연의 설립 목적을 벗어나 국내 의료체계를 동시에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경우 이는 개원을 허가하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이를 방관한 정부에 있음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문재인 정부의 의료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의협은 "최근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정책 및 문재인 케어를 통한 국민의 의료비 부담 감소, 비급여 비용 지출을 감소시키려는 것과 달리 영리병원의 진료는 내국인의 건강보험 미적용 및 환자 본인 전액 비급여 부담을 떠안게 되므로서 정부의 추진 방향성과 역행하는 것"이라며 "외국인 환자 등 유치에 관해서도 국내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이미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 투자자본을 활용하여 영리병원을 통해 의료를 제공하는 것은 현행 정부의 역할과 정책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일갈했다.

흔히 '영리병원'이라는 잘못된 용어로 불리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주로 외국인 환자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을 의미한다. 지난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주도와 8개 경제자유구역에 외국계 자본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을 유치하도록 허용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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