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박병대-고영한 前대법관에 소위 '사법농단' 혐의로 영장 청구
檢 "사법행정권 남용에 두 前대법관 연계...직권남용·직무유기 등 혐의 포착"
박병대 고영한 前대법관, 檢조사에서 혐의 대부분 부인
非좌파정부 행정부 '대거 숙청' 이어 사법부에도 칼날
'법관 탄핵' 문제와 관련해 중견 판사 이어 소장 판사 사이에서도 반발 움직임 확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61), 고영한(63) 전 대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해 소위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또 양승태 전 대법원장(70)을 공범으로 적시해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도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3일 오전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에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 비밀누설·직무유기·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공전자기록 등 위작 및 행사 혐의가 적용됐다. 고 전 대법관은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를 받는다. 영장 청구서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한 부분이 158쪽·고 전 대법관에 대한 부분은 108쪽 분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사법행정관 남용) 사건은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휘감독에 따른 범죄행위"라며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적 이익을 위해 몰래 범행한 것이 아니라, 두 전직 대법관이 상급자로서 더 큰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재판 독립이나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헌법적 가치이며 이를 훼손한 범행은 매우 중대한 구속사안이라고 판단했다"고도 했다.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두 전 대법관이 혐의를 부인하고, 하급자들의 진술과는 다른 진술을 한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그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형사재판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상고법원 반대 판사 뒷조사 지시 등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또 헌법재판소에 파견한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 내부 동향을 수집하고, 판사 사찰을 지시하는 등의 불법 행위도 있다고 봤다.
고 전 대법관은 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2016년 2월부터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다. 그는 '부산 판사 비리' 의혹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산고법판사가 지역 건설업자의 뇌물 사건을 맡았을 당시, 건설업자 측으로부터 향응·접대를 받은 뒤 항소심 재판 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고 전 대법관이 부산고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선고 기일을 미루고 변론을 재개해 뇌물 사건에 대한 재판이 제대로 되고 있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며 그가 재판에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또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 확대를 막는다는 혐의 등도 적용했다.
법조계는 이번 영장 청구로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조사도 점차 가시화될 것으로 본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한모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전범기업 측 변호를 맡은 한 변호사와 독대한 정황도 파악했다고 했다.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은 앞서 검찰 조사에서 "정당한 업무지시였다" "업무는 (법원행정처) 실장 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며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권 검찰의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로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았다. 또 박근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들과 장차관, 국정원 관계자 등 30여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청구는 소위 '적폐 청산'의 칼날이 전직 사법부 고위직으로 본격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최근 전국법관회의에서 통과된 '법관 탄핵' 문제에 대해 법원 내에서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소장판사 사이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원지법의 한 소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망에 "이번 법관회의 결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회의에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고, 의견 수렴과정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등은 이제 와서 따지지 않겠다"면서도 "나는 탄핵 요구를 할 만한 의사도 분별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판단과 결정으로 타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 역시 "대부분 판사의 심정이 저 판사(수원지법 판사)와 같다"고 했다.
지난달 19일 '판사 탄핵' 요구안은 1표 차이로 통과(찬성 53, 반대·기권 52)됐다. 당시 수원지법 법관대표인 A판사가 투표기기 오작동 탓에 재석자 수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정 상 문제제기도 지속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도, 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대부분 판사가 소속 지법의 전체 의견이 아닌 '개인 소신에 따라' 판사탄핵 투표에 참여했다는 보도도 나와 회의에 대표성이 있냐는 물음도 제기된 바 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