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4인 공동기고] 예비역 장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
[전문가 4인 공동기고] 예비역 장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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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모임’의 주최로 지난 11월 21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 국민 대토론회’는 적지 않은 메아리를 남기고 종료되었다. 필자들은 토론회의 진행자 겸 사회자로 그리고 발제자 겸 기획자로 참여했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전쟁기념관 평화홀 실내와 복도 그리고 건물 앞을 가득 메운 예비역 장성들과 애국시민들이었다. 행사장과 주변은 2천여 명의 참가자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행사장 안은 시작 이전부터 만석이었다. 여러 명의 야당 국회의원들도 입장했지만, 이들도 발표자 및 토론자들과 함께 단상과 바닥 사이에 있는 계단에 걸터앉아 개회식을 지켜봐야 했다. 평생을 군무에 몸담았던 예비역 군인들이 그동안 얼마나 안보에 목말라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북새통 성황을 이룬 행사장

이윽고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장관,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개회사와 축사 그리고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의 안보국방 체제가 무너져내리고 있음을 개탄하고 군사분야합의에 대한 전면 보완을 촉구하자 장내는 처음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행사에는 12명의 전 국방장관, 30여 명의 전 육해공 참모총장 및 해병대 사령관 등을 위시한 500여 명의 예비역 장성들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모임’의 회원으로 동의한 예비역 장성들이었다. 실내에 입장하지 못하고 복도에서 행사를 지켜본 분들과 합치면 족히 700명이 넘는 예비역 장군들이 참가한 것이었다.

제2부에서는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는데, 첫 발제자(박휘락)는 한국의 안보상황을 ‘완벽 폭풍’에 비유하여 총체적으로 진단했는데, 북한의 핵 및 재래군사력 위협, 정부와 국민의 안보불감증, 동맹 약화, 군대의 비전문화 등으로 안보가 ‘완벽한 위기’에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두 번째 발제자(김태우)는 정부의 국방정책과 동맹정책을 좌파적 수정주의 노선으로 분석하고 섣부른 종선선언과 전작권 조기전환 추진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 발제자(신원식)가 작전통으로서의 자신의 군 경험을 토대로 9·19 군사분야합의가 내포한 지상과 공중 그리고 해상에서의 위험성들을 소상하게 분석하고 정부 측과의 ‘맞짱 토론’을 제안하자 장내에서는 연호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김민석 전 국방부 대변인과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토론이 있었는데, 김진 위원이 안보문제에 침묵하는 향군과 성우회(星友會)를 질타할 때 장내 분위기는 다시 한번 달아올랐다.

예비역 장성들이 쏟아낸 ‘송곳’ 질문들

그럼에도 행사의 클라이막스 겸 대미(大尾)는 제3부 행사였다. 제3부는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 회원들만의 행사로 진행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대정부 질문 및 대국민 성명서 발표와 결의문 채택이 이루어지면서 열기와 함성이 장내를 메웠다. 진행자(송대성)가 낭독한 대정부 질문을 통해 예비역 장성들은 정부의 안보국방 기조,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 ‘국방개혁 2.0’에 담긴 의도, 한미동맹 강화 방안, 9·19 군사분야합의서가 내포한 문제점, 지난 10월 31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합의한 연합방위지침 등과 관련한 20개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북한과 공조하면서 동맹이완을 방치하는 것이 국가생존과 경제적 번영에 유리한가? 건국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역사교과서가 개정되고 반시장·반기업적 경제정책들이 펼쳐지는 중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서두르는 것은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인가? 북한이 핵포기를 약속하지도 않았고 중국이 미래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국방역량을 감축하는 ‘국방개혁 2.0’이 시기적으로 적절한가? 동맹보다 남북공조를 앞세우고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동맹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그리고 미군 장성이 부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군사령부 체제 하에서도 유사시 미국이 파병할 것으로 믿는가?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9·19 군사분야합의를 전면 보완할 용의가 있는가? 한국군의 감시·검증·조기경보 능력을 제약하는 비행금지구역을 비무장 항공정찰을 제한 없이 허용하도록 재협상할 의향이 있는가? 군사공동위에서 NLL을 기준으로 평화수역을 재설정할 의지가 있는가? 북한 도발시에도 장병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 행사보다 합의된 교전수칙이 우선인가? 여전히 계속되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 간첩활동, 선동 등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예비역 장성들이 쏟아낸 ‘송곳’ 질문들이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하고 사는 동안 행동한다”

이어서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낭독한 대국민 성명서는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 유지와 확고한 안보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 안보·국방정책, 동맹정책 등의 전면적 재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 한미연합훈련 중단, 전작권 조기 전환 등 동맹역량을 해치는 조치들을 대북 협상카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 9·19 군사합의가 안보원칙에도 맞지 않고 북한의 변화를 선도하는 효과적인 협상전술도 아니라는 점, 지금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체결을 서두를 때가 아니라는 점 등을 강조하고 국민의 공감과 이해를 구했다. 성명서는 외국언론들을 위해 영문으로도 작성·배포되었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심동보 예비역 해군제독이 진행으로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예비역 장성들은 9‧19 남북군사합의의 이행 중지를 위해 노력할 것, 공산화 통일 또는 연방제 통일을 획책하는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를 좌시하지 않을 것, 자유민주주의와 연합방위체제의 붕괴를 수반할 수 있는 남북공조에 결연히 반대할 것,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 지상지고의 명예임을 재삼 다짐하고 각자의 능력을 동원하여 행동할 것 등을 결의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하고 살아있는 동안 행동한다.” 이것이 이날 행사에 참가한 예비역 장성들의 좌우명이었다.

백선엽 장군의 등장으로 숙연해진 행사장

이번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 국민 대토론회’는 예비역 군인들 사이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정체성과 안보가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넓게 확산되어 있음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그 동안 예비역 단체들과 우파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성우회와 향군이 침묵하는 가운데 예비역들의 군심(軍心)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이를 표출할 계기가 부재한 지루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사의 태동을 촉발한 원동력이 된 것은 장 모 예비역 장성이 쾌척한 후원금이었다. 그러나 이 후원금이 더 큰 장소를 예약할만한 정도는 아닌데다 그토록 많은 인원이 왕림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기에 많은 분들이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했고, 이 부분에 대해 주최 측은 행사 직후 SNS를 통해 사과문을 돌렸다. 또한, 신문에 난 행사광고를 보고 후원금을 송금한 분들도 많았고, 행사 현장에 설치한 모금함에도 적지 않은 후원금이 들어 있었다. 결국, 토론회는 부족함이 많은 행사로 시작되었지만 구멍난 곳이 없는 행사로 마감될 수 있었다. 행사가 남긴 미담(美談)들이었다. 미담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제부터 우리가 받는 연금의 1%를 내서 안보기금으로 삼자”고 제안했고, 찬성하는 분은 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제의에 모든 회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 즉석 결의가 이번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만들 원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행사가 남긴 최대의 후담(後談)으로는 백선엽 장군의 등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백선엽 장군이 누구인가? "내가 선두에 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에 임하면서 당시 한국군 제1사단장이었던 백 장군이 했던 말이다. 백선엽 장군은 1950년 8월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막아내고 대한민국을 적화통일의 위기에서 구했고, 그해 10월 한미군이 38선을 돌파할 때와 평양에 입성할 때에도 선봉에 섰으며, 중국군의 참전으로 후퇴한 후 1951년 3월 서울을 재탈환할 때에도 선두에 섰다. 백선엽 장군은 살아있는 6.25 전쟁의 영웅이며,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함께 피를 흘렸던 미군들에게 있어서도 그는 동맹의 상징이자 산 증인이다. 그래서 지금도 주한 미국 대사나 주한미군 사령관이 새로 부임하면 가장 먼저 백선엽 장군을 찾아가 깍듯한 예우와 함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날 주한미군은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정경두 국방장관, 박한기 합참의장, 박종진 육군 1군 사령관,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 미이클 빌스 미8군 사령관, 케네스 월즈바크 미 7공군 사령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 등 200여 명의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98세 생신을 맞은 백선엽 장군을 위해 깜짝 파티를 열었다. 백 장군은 자신의 생신 파티가 끝나자마자 토론회장으로 온 것이다. 개회식 도중 백선엽 장군이 탄 휠체어가 장정들에 손에 들려 비좁은 행사장을 비집고 입장할 때 장내는 조용해졌고, 6.25 전쟁을 몸으로 경험한 노병(老兵)들은 숙연함에 젖어 들어야 했다.

예비역 장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

이렇듯 대토론회는 작지 않은 메아리와 적지 않은 미담과 후담들을 남기면서 종료되었다. 이제 예비역 장성들은 정부의 대답을 기다릴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그랬듯 ‘내편들’만을 주위에 포진시킨 채 외길을 계속 갈 수도 있고, 겉으로 표시를 내지 않으면서 예비역 장성들의 목소리에 유념하여 북핵 정책, 국방정책, 동맹정책 등을 재검토할 수도 있으며, 개선책이나 보완책을 찾기 위해 ‘내편’이 아닌 사람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추진할 수도 있다. 정부에 대해 토론회에 동참했던 전문가로서 하고 싶은 말은 “남북상생을 위한 노력도 국가 정체성 유지와 확고한 안보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비역 군인들이 나서서 계속해서 안보가 허물어진다면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겠노라고 외침을 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정부에게 예비역 장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

공동기고 :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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