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만취음주운전 등 적발 계기 "무거운 마음으로 펜 든다"며 내부 E메일 돌려
지난 6일 '대통령 부재중 장관급 대동 DMZ 軍시찰 논란' 때도 국회서 "옷깃 여미겠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사진=연합뉴스)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발언하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사진=국회 방송 캡처)

정치권 안팎에서 '왕실장'으로 불리며 '비서의 월권 논란'을 종종 불러일으킨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26일 청와대 전(全) 직원들을 상대로 "우리는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라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께 폐가 되고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있다"고 '기강 잡기'에 나섰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이날 김종천 의전비서관의 '면허 취소 수준' 만취 음주운전 적발 등을 계기로 오전 중 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번 일이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게 해야겠기에 스스로 몇가지 다짐을 하면서 여러분께 당부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일에 몰두해 계절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바쁘실 여러분들께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든다"고 운을 뗀 뒤 "최근의 일들로 청와대를 향한 걱정의 목소리가 있음을 모두들 아실 것이다. 청와대 구성원들을 독려해야 하는 저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대통령께 면목 없고 무엇보다 국민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익숙함"이라며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이 넘은 시점에서 일이 손과 눈에 익었을 것"이라고 했다.

임 실장은 "그런 상태로 관성이 이끄는 대로 가면 긴장감은 풀어지고 상상력은 좁아질 것"이라며 "익숙함, 관성과는 단호하게 결별하시라"고 지시했다. 특히 그는 "우리는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이다. 더 나아가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이라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께 폐가 되고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 순간 사소한 잘못이 역사의 과오로 남을수도 있다"며 "더 엄격한 자세로 일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옷깃을 여밉시다"라고 했다. 이어 "저부터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청와대에서는 경호처 5급 공무원의 "내가 누군지 아느냐" 시민 음주폭행, 김종천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과 '의문의 동승자들'의 음주운전 방조 의혹, 송인배 정무비서관(직전 제1부속비서관)의 정치자금 불법 수수 혐의(드루킹 특검 수사 과정에서 포착) 등 사건과 잡음이 불거졌고, 일부 직원은 이로 인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지난 10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의 7박9일 유럽 순방 도중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장관급들을 대동하고 군(軍)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 고지 등의 지뢰 제거 작업을 시찰하고 '홍보 영상'까지 청와대 홈페이지·SNS로 배포한 바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임 실장은 이달 들어 두번째로 자숙을 뜻하는 '옷깃을 여민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재 중 장관급 대동 DMZ 선글라스 시찰' 관련 2인자 행세 논란 해명을 요구받은 자리가 첫번째였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신동근 의원이 '선글라스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다'고 자신의 질의 시각까지 할애해준 가운데, 임 실장은 "제가 햇볕에 눈을 잘 뜨지 못한다" "선글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 "오해의 빌미가 될 수 있어 고민" 등 해명을 내놨다.

지난 10월17일 자신의 나레이션까지 입혀 DMZ 최전방 화살머리 고지 방문 과정을 담은 홍보 영상을 배포한 것이 GP 통문 번호 노출 등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군사기밀에 속하는 상황은 아니나 군사훈련상 비공개"라는 모호한 답변으로 피해갔다.

그는 그러면서도 "오해를 받게 된 데 대해 제가 억울해하기 보다는 이 자리가 갖는 어떤 특수성, 무거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옷깃을 여미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임 실장은 문 대통령이 휴가 중이던 지난 2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2인자'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의 방한(訪韓) 때 이낙연 국무총리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제치고 직접 면담했으며, 이보다 앞서 10월29일에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제쳐둔 채 먼저 만나 '한미 워킹그룹 출범'에 합의를 이루기도 해 '비서 정치 논란' 여파는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이후에도 이달 6일 국감에서 정권 핵심 지지기반인 민노총과 전교조에 대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설교'에 나서거나, 14일 국회 예산 심사에선 두 전직 대통령을 엮어 '투옥'시킨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삭감하지 말아달라"고 강변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017년 12월 이후 올해 11월초까지, 사실상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왕세제 최측근이자 '2인자'로 불리는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수차례 접선하는 등 한-UAE간 외교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5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사업이 유엔의 제재 면제를 인정받았다"며 "평양선언에 담긴 착공식도 연내 가능할 것"이라고 존재감을 연신 노출했다.

특히 "우리가 연결하게 될 철도와 도로는 남북을 잇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만주의) 동북 3성은 지금 중국 땅이지만 장차 한반도와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될 것"이라면서 "2억이 훌쩍 넘는 '내수'시장이 형성된다"는 낙관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국내 수요'를 뜻하는 내수를 북한-중국과 형성하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그러면서 대북(對北) 원칙론을 촉구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과거의 틀에 우리의 미래를 가두지 않아야 한다"고 치부했다.

임 실장은 'DMZ 선글라스 시찰'에 앞서서도 ▲지난달 문 대통령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 및 여야 5당 대표가 수행해달라고 공개 기자회견으로 요청한 사례 ▲의전서열상 우위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9.5 대북 특별사절단에 페이스북으로 '훈시'한 사례 ▲7월30일부터 닷새간 문 대통령과 '동시 휴가'를 간 사례 ▲6월말부터 사실상 비서실장 보좌 목적의 업무조정(정책조정)비서관 신설이 거론돼 현실화한 사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사표를 직접 반려한 사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양측 수행원 상견례 순서에서 정의용 안보실장을 제치고 가장 앞줄에 선 사례 등으로 '비서실장이 아닌 부통령이라도 되느냐'는 비판을 사 왔다.

또한 더욱 이전에 ▲4월12일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 의혹을 해명한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자신의 명의로 질의서를 보낸 사례 ▲국회에 헌법 개정안과 국민투표법 처리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직접 압박한 사례 ▲2월11일 북한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등 평창 동계올림픽 북측 고위급대표단 환송 만찬을 직접 주재한 사례 ▲지난해 12월 비밀리에 대통령 특사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향한 사례 ▲지난해 11월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舊)통합진보당과 같은 '진보적 민주주의' 용어를 사용한 전대협(4기 의장 출신) 강령 동의여부를 물은 야당 의원에게 "모욕적"이라며 반발한 사례 ▲지난해 10월 이른바 '세월호 7시간30분' 브리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격한 사례가 있어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본분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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