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비공개 강연서 '백두칭송委' 등 활개에 일침
"자유로운 표현 보장되는 대한민국 얼마나 좋은지를 몰라"
"北 세습통치 사회주의도 아냐…추종세력 親김정은으로 불러야"
"北은 '핵군축→핵보유국화' 노려, 先비핵화 원칙 잃으면 가망없어"
"獨 통일주역은 '국민'…文정부 옳은방향 가도록 공론화 계속해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11월25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미래혁신청년위원회'가 주최하는 북한 전문가 초청 비공개 강연회에서 강연했다.(사진=미래혁신청년위원회 제공)

이른바 ‘백두칭송위원회’ 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문 환영 단체가 결성되고 행동한다는 소식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그 사람들(김정은 방문 환영 단체)이 북한에 가서 한 주일 정도만 살아보면 좋겠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은지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전 공사는 25일 오후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김정은의 핵전략과 한반도 통일전망>을 주제로 '미래혁신청년위원회(위원장 정우림)'가 개최한 북한전문가 초청 비공개 강연회에 참석해 "대한민국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팩트로서의 북한을 얘기하는 사람과 판타지로서의 북한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태 전 공사의 비공개 강연회에 참석해 취재한 언론사는 펜앤드마이크(PenN)가 유일했다.

◇ “현재의 북한, 사회주의 아니다…친북·종북 아니라 ‘친김·종김’이라고 해야”

이날 태 전 공사는 강연에 앞서 “북한은 순수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회주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책은 사유재산 박탈과 상속 금지이나, 북한은 3대 세습을 위해 헌법까지 고쳤다는 것이다.

그는 ‘종북’ ‘친북’ 등 북한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북한 실체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당규에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말이 있다. 정치 권력이 세습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며 “현재 ‘종북’ ‘친북’이라 불리는 세력들은 북한의 시스템이 아닌 김정은 세습 정권을 칭송하고 있다. 그렇기에 ‘종북’ ‘친북’은 ‘종김’ ‘친김’이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앞서 지난 6일 대학생 반미(反美)·친북(親北)성향 단체가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뒤 강연을 경호상 문제로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 역시 경호 인력이 함께했다.

그는 “얼마 전에 나를 체포하겠다는 결사대가 서울에서 조직됐다고 한다. 이들은 전국을 돌면서 (북한 찬양) 퍼포먼스를 하며 내가 강연한다는 곳에 가서 위협하기도 했다”며 “헌법상 보장된 권리로 자유롭게 발언하면서 다원성이 보장되는 사회(자유민주주의)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단체들을 고발하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태 전 공사는 ‘다양한 견해가 보장되는 이 시스템(자유민주주의)’이 북한에도 퍼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1월25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미래혁신청년위원회'가 주최한 북한 전문가 초청 비공개 강연회에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전략 관련 강연을 듣기 위해 총 108명의 각계 시민이 모였다.(사진=미래혁신청년위원회 제공)
11월25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미래혁신청년위원회'가 주최한 북한 전문가 초청 비공개 강연회에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전략 관련 강연을 듣기 위해 총 108명의 각계 시민이 모였다.(사진=미래혁신청년위원회 제공)

◇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핵 폐기 협상이 아니라 핵 군축 협상”

태 전 공사는 최근 북핵 협상에 관해, 현재 북한은 '핵보유국화'를 노리고 미국과 대화를 진행 중이라는 견해도 제시했다.

북한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소련 측 ‘핵우산’이 약해졌다고 판단해 핵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했고 소련은 북한에 ‘핵 개발을 계속하면 원전 건설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소련에서 원전을 미끼로 삼은 것을 알고, 북한에 ‘핵 개발을 포기하면 우리(대한민국)가 원전을 건설해주겠다’고 했지만 김일성이 핵으로 우리를 위협해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류사 이래 두 가지 핵협상이 있었다. 핵리스트를 미리 신고하고 국제기구 등에 검증을 받는 ‘핵 폐기 협상’과, 핵무기 자체는 남겨두되 공격능력 일부를 약화시키는 ‘핵 군축 협상’이 그것”이라며 “북한은 핵리스트를 제출하고 있지도 않고 일부 실험장만 폐기하고 있는데, 이는 핵폐기보다는 핵 군축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미북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북한은 협상을 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끌고 핵보유국이 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북한은 과거부터 일관되게 선(先) 제재완화·후(後) 비핵화를 주장하고, 자신들의 핵협상이 과거와 달리 특수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에 휘말려 선 비핵화라는 원칙을 잃으면 북한 비핵화는 가망이 없다고 본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 국면인 현재 조급한 것은 북한이니, 원칙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 “북한 문제, 대한민국에서 계속 공론화돼야 북한도 올바른 길 갈 것”

강의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태 전 공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독일의 경우에서도 통일을 이끈 주역은 결국 국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주민들을 자극해 그들이 자발적으로 남쪽으로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번에 문재인 정부에서 귤을 보낸 것을 지적하는 야당과 언론이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여론에서 비판 목소리가 높았기에 김정은이 결국 북한 민중에 귤을 나눠준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공론화가 계속돼야 북한도 올바른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 전 공사는 지난 2016년 8월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왔다. 당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 인사의 탈북 소식에 언론이 들끓었다. 그는 탈북 이후 북한을 '노예국가'로 표현하며 “내 아들들이 나처럼 살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며 탈북 이유를 설명해왔기도 하다. 이날 강연을 마친 뒤, 그는 가족들의 근황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자식들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잘 공부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날 강연회에는 미래혁신청년위 관계자, 탈북민 이웅길씨를 비롯해 대북(對北) 문제에 관심이 깊은 시민 총 108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태 전 공사의 저서 <태영호 증언 : 3층 서기실의 암호>를 구매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육군 3성 장군 출신으로 자유한국당 국가안보특별위원회 중 일원인 한기호 전 국회의원이 참석했는데, 그는 인사말에서 북핵(北核)이 군사적으로 단순 대량살상능력을 지닌 것 외에도 전자기펄스(EMP) 위협 과시 등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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