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부망에 원고지 32장 분량의 장문의 글 올려 사실상 법관대표회의 해산 요구
"이번 의결은 헌정사상 가장 나쁜 사법파동"
"국회에 탄핵 요구 자체가 권력분립 원칙 향한 도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출범 후 사법부 정치지향에 법원 안팎 비판 목소리 높아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제공]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제공]

현직 부장판사가 23일 “사법권한을 남용해 동료 법관을 탄핵하자고 의결한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를 탄핵하자”고 촉구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사진)는 이날 법원 내부망에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하의 원고지 32장 분량의 글을 올려 지난 19일 법관대표회의의 ‘법관 탄핵’ 의결과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한 뒤 사실상 법관대표회의의 해산을 요구했다.

김 부장판사는 글에서 “법관들에 의한 법관대표회의의 탄핵(해산)이 필요한지, 나아가 탄핵으로 의결된 법관들에 대해 진정 그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전체 법관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며 전체 투표를 건의했다.

그는 “동료 법관을 탄핵하자는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이러한 법관대표회의의 의결이야말로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나쁜 사법파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국회가 법원에 대해 피고인을 엄벌해 달라고 의견을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원도 국회에 탄핵소추를 해달라고 의견을 낼 수 없는데, 이 같은 측면에서 법관회의의 의결은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위배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또 좌파성향의 특정 연구회(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가 장악한 법관회의의 정치적 편향 문제를 지적하고, 의결 과정의 대표성에도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실제 이번 탄핵 촉구 결의안에 참가한 집행부 절반 이상이 이들 단체 소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이 공개한 자료 등에 따르면 법관회 의장·부의장·운영위원 등 집행부 총 13명 중 7명이 이 두 모임 소속이었다. 법관회의 의장인 서울북부지법 최기상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대변인 격인 수원지법 송승용 부장판사도 이 연구회 출신이다. 부의장인 서울중앙지법 최한돈 부장판사와 운영위원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조정민 판사, 의정부지법 박기쁨 판사, 대구지법 공두현 판사, 제주지법 신재환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21일에도 본인의 개인 페이스북에 법관회의의 현직 판사 탄핵 촉구 결의안 통과를 두고 “정의의 여신이 저 긴 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버린 날”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한바 있다.

법원 안팎에선 법관회의 결과에 대해 사법부의 자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법적 이성의 개인의 집합인 사법부 판사들이 흡사 정치적 지향성을 가지고 현직 판사들의 탄핵을 입법부에 요구한다는 것부터 사법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다음은 김태규 부장판사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 전문(全文)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

법관이 법관에 대한 탄핵을 의결한 2018년 11월 19일은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긴 칼로 자신을 목을 베어버린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날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이루어진 법관들에 대한 탄핵 의결은 내용, 절차, 성격 그 어느 것에서도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로 생각하며, 그러한 의결에 이른 전국법관대표희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

더하여 잘못된 의결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한민국 사법부와 동료법관들에 대한 충심에서 탄핵의 필요성에 대하여 전체 법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 투표 내지는 설문조사를 실시할 것을 제안합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권한남용의 정도는 도를 넘었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권한남용의 정도는 도를 넘었습니다. 아직 수사도 끝나지 않았고, 재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지 않은 사안을 제대로 된 증거 한 번 살펴보지 않고 겨우 두세시간의 회의 끝에 유죄로 평결하여 버렸습니다. 일반시민들도 숙지하고 있는 무죄추정, 적법절차나 절차적 정당성, 예단방지 등의 용어는 오히려 이들 법관들에게는 그저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법률용어 정도로 치부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유죄로 평결하였으니, 관련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의 운신의 폭은 지극히 좁아졌고, 어떻게 판결하더라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유죄를 하면 다수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무죄로 하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우스운 꼴이 되게 생겼습니다.

이번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결이야 말로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나쁜 사법파동입니다.

온 나라가 많은 사안에서 “○○농단”이라는 단죄로 뒤숭숭한데,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법관이라면 언론의 선동이나 일부 여론에 휩싸이지 않고,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아 잘못된 것이 있으면 단죄하여 바로잡고,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그 사정을 알려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할 터인데, 법관들이 더 먼저 나서서 그저 언론에 떠도는 기사 몇 조각으로 사법농단이라 결론 내리고, 동료법관을 탄핵하는 역사를 통틀어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이번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결이야 말로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나쁜 사법파동이라 생각합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국회에 탄핵을 요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도전입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국회에 탄핵을 요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도전입니다. 탄핵소추권한은 국회의 권한이고 이것을 행사하는 것은 오로지 국회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법원이 나서서 그 권한을 행사하라고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국회의원은 “국회가 법원에 대하여 피고인을 엄벌해달라고 의견을 낼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원도 탄핵소추해달라고 의견을 낼 수 없다고 지적을 하면서, 그러한 의결안을 낸 것 자체가 삼권분립 위반으로 탄핵소추사유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증거조사를 통한 사실 확정도 되지 않았는데, 국회가 나서서 이 법관들이 위법행위를 한 것으로 몰아붙여도 나서서 절차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법원의 정당한 판단을 기다릴 것을 요구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법원이 나서서 먼저 그들에게 무릎 꿇고 굴복하며, 수치를 초래하였습니다.

법관에게 비위가 발견되고 그 정도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할 정도이라면 그 때 가서 파면하면 될 일입니다.

헌법에 의하면 법관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면 파면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모든 형사사법 절차를 거쳐서 법관에게 비위가 발견되고 그 정도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할 정도라면 그 때 가서 파면하면 될 일입니다. 금고형 이상이 아닌 벌금형 정도를 선고할 만한 사안에 대하여 탄핵이라는 강한 징벌을 더하여야 할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습니다. 혹여 이전 대법원에 큰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 수뇌부에 계셨던 분들이 대부분 퇴직하셨고, 현재 법원에 남아 있는 사람은 그분들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한 심의관들이 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 사실 확정도 되지 않았고 사실 확정이 되더라도 그것이 형사처벌의 대상인지도 애매모호하여 이런 저런 견해가 갈리는 정도의 사안인데, 당시 심의관들이 중차대한 위법을 발견하고도 그대로 지시를 따랐다고 그들에게 돌을 던지시렵니까.

탄핵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인데, 이번에 법관탄핵안이 의결된 경과도 보면 다분히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탄핵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인데, 이번에 법관탄핵안이 의결된 경과도 보면 다분히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현재 법원에 남아 있는 법관들에게 당장 탄핵이라는 중대한 징벌을 안겨줘야 할 필요에 대한 의문에 더하여, 그 진행경과도 보면 대단히 신속히 이루어져 (의도는 전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지만)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마지막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있기 불과 6일 전에 안동지원 법관들이 법관탄핵을 안건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그 안건은 회의 당일에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다른 많은 안건들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다루어 졌으며, 그 안건이 가결되자마자 국회 여당의원들이 즉각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법관탄핵 의결이라는 중차대한 일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데 불과 1주일 남짓의 시간이 걸렸을 뿐입니다.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항간에는 ‘탄핵거래’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습니다. 법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일반 시민들로서는 쉽게 그런 표현에 현혹될 수 있는 겁니다.

다른 안건도 아니고 법관탄핵을 논의하면서 그리 서두를 일이었나를 되짚어 봐야합니다. 법관 전체의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를 모으기 위해서 다음 회기로 미루거나, 아니면 전체 법관을 대상으로 직접 그 의사를 물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 아니면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하여 의결 정족수를 가중 정족수로 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탄핵 안건의 발의자들은 밀어붙였습니다. 어떤 대표법관은 자신이 소속한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는 그것과 반대되게 투표를 하였고, 또 어떤 법관은 법관대표가 소속 법관들의 의사에 기속된다고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왜 동료법관을 단죄하는데 이리도 서둘러야 했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뜻’, ‘언론의 질타’, ‘여론이 공격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등의 표현은 정치인의 수사입니다.

국민의 뜻을 이야기 하였지요. 언론의 질타를 걱정하셨지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의견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언론의 성향도 다기할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발의하신 분들, 찬성하신 분들께서는 본인들이 접하시는 그 일부의 의견만을 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들의 의견이 대한민국의 총의일 수 없고, 혹여 그 분들이 다수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명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국민의 뜻’, ‘언론의 질타’, ‘여론이 공격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등의 표현은 정치인의 수사입니다. 수에 따라 그 존재여부가 결정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 선거직 공무원이 그 성격상 애용할 수밖에 없는 용어들이지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게 하며, 법을 통해 그것을 구현하는 공화적 사고를 해야 하는 것이 법관의 직분일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소수자 보호에 유리한 국가기관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법관들이 수에 익숙해지고 수가 많으면 정당하다는 식으로 밀어붙입니다. 법관들의 이러한 사고가 결국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그 재판은 여론재판이 되는 겁이다. ‘국민의 법감정에 눈높이를 맞춘다’면서 여론에 따른 재판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여론이 견제장치가 풀린 채 균형감을 잃고 수의 횡포를 일삼을 겁니다. 그 즈음 법원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지요. 법관은 법과 절차만 보고 가야합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전체법관의 대표기관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전체법관의 대표기관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우리 70년 헌정사에서 몇 차례의 사법파동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선배들은 법관회의를 통해 불의를 지적하고자 하였고, 실제 그러한 행동이 역사에서 의미있게 평가되기도 하였습니다. 집단행동이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방법이기는 하나 비상한 상황에서 일순 나타나는 불의에 대하여 그러한 방법으로라도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법관회의가 저항기구로서 기능했습니다. 지금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거의 상설화되어 법관들이 가장 열심히 일을 해야 할 4월부터 11월까지 7 ~ 8개월 동안에 다섯 차례나 회의를 가지고, 그 논의하는 안건도 중요한 사법부의 현안 한․두 가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법행정사무에 대하여 관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저항기구가 아니고 여론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기구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권한이 커지면 그 때부터는 권한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법도 배워야합니다.

권한이 커지면 그 때부터는 권한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법도 배워야합니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게 하고, 소수에 대한 관용을 보이며,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현재의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올 한해 이루어진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결 결과를 보면 주류가 낸 안건은 거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됩니다. 현장발의라는 형태로 급하게 상정되는 안건은 대법원이 원하거나, 이번 법관탄핵과 같이 정치권에서 희망함직한 안건들로 채워집니다. 특정학회 출신이 조직을 장악하고, 그 학회 내에서도 중심조직이 의사결정을 이끌어 간다는 의혹은 이제 언론에서는 공지의 사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뜻이나 언론의 질타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회의록은 (비록 법관들에게는 공개로 하지만) 대외적으로 비공개가 되기를 바라고 있고, 법관대표들의 소속 학회는 ‘신상정보’에 해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법관들조차 그 분포가 어떤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공인이라 할 수 있는 법관이 대중적 관심이 모아지는 지극히 공적인 활동을 하면서 겨우 소속 학회 정도 공개되는 것을 두고 신상정보를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의장단은 당연히 특정학회로 채워져 있습니다. 회의체 구성도 부장자원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현상을 반영 못하고 직급별로 나누고 있고, 법원별 인원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 개리맨더링의 문제를 안고 있어 대의의 왜곡현상이 나타납니다.

사법부가 특정학회의 이너그룹의 전유물이 될 우려는 조금이라도 초래되어서는 안됩니다.

법관들에 의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이 필요하고, 나아가 탄핵으로 의결된 법관들에 대하여 진정 그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하여 전체 법관들의 의견을 물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법관을 꿈꾸며 청춘을 보내고, 어렵게 법관이 되고 나서는 법원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하였던 그 법관들은 그날 자신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였던 동료들로부터 탄핵을 당하였습니다. 그날 그 회의장에 있던 53표의 표결이 그들에게 그렇게 가혹한 결과를 안길 만큼 정당하였는지 글을 마치는 이 순간까지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는 희망하고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법관들은 분명한 근거도 없이 자신들의 동료를 탄핵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 회의에 의하여 탄핵된 법관들을 그렇게 탄핵되는 것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아닌지 전국의 모든 법관들이 의견을 표시하여 주십시오. 다시 한 번 더 진정 법관들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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