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운동권 586'이란 괴물
[황성욱 칼럼] '운동권 586'이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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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공부할 자유와 권리는 안중에도 없던 '독재적 폭력집단'
무리지어 목소리 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이들
대한민국 발전하려면 이런 구시대 앙시앙레즘 세대부터 물러나게 해야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1990년대 학번인 나는 민주화 운동권이란 세대가 친숙하지 않다. YS정부에서 대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딱히 군사정권이란 어린 시절이 불행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얘기를 들어보면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게 중요했고, 무엇을 소비하든 아껴야했다. 욕망은 의식주에 의해 자제되어야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밥을 굶은 적도 없다. 아버지의 평생 꿈은 당신 아들한테만큼은 학창시절에 책상 있는 공부방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꿈은 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이루어졌다. 집안 살림은 나날이 나아졌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는 우리 집에 소형차긴 하지만 자가용 승용차도 생겼다.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업이 되고 있었고, 대학을 다닐 즈음, 어린 학생들은 나의 소니워크맨을 덜떨어진 제품으로 쳐다보았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소니와 아이와 워크맨을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대학에 가자 아이들은 삼성제품을 더 선호했다.

대통령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경쟁력 강화를 외쳤고 더 이상 대한민국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라는 것도 피부로 느꼈다. 물론 경쟁은 치열했다. 평균 대학입시 경쟁률이 4:1이었다. 그러나 경쟁을 뚫은 제품만이 내게 만족을 주었듯이 경쟁력이 있어야 내가 부모세대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내겐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할아버지 세대와 아버지세대에 비해 나는 훨씬 유리했다. 나는 식민지 국민이라서 차별받은 적도 없고, 나라가 가난해서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지도 않았다. 사실 그래서 짜증나기도 했다. 핑계 댈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니던 대학의 총학생회가 한번 비운동권으로 바꼈다. 학생들은 환호했다. 투표율 40%도 안되는 선거에서 그 중 30 ~ 40% 정도 득표하는 운동권 학생회가 전횡하는 것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운동권 학생회는 대부분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외면하고 허구한 날 정치타령만 했다. 전공지식을 쌓는 것에 매진하던 나 같은 학생들은 저들이 과연 머리에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열심히 공부해도 전공지식을 쌓기 어려운데, 공부는 안하고 확성기만 틀어댔던 그들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자유와 책임에 대한 지식이 나보다 뛰어나 보이지도 않았다.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흥분돼서 다니긴 하던데, 밥 굶고 다니던 애들도 없었고 도서관에서 공부하지 말라고 누가 말리던 사람도 없었다.

확성기... 제일 싫었던 것은 중앙도서관 앞에서 틀어대던 확성기였다. 겨우 20명 남짓이 모여앉아 있을 뿐인데 수백 명이 공부하는 중앙도서관 앞에서 철지난 얘기만 읊고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의 자유와 권리는 그들에겐 안중에도 없었다. 대학 때 또래 운동권은 그렇게 독재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운동권이 장악한 단과대 학생회는 총학생회를 조직적으로 비토했다. 학생들은 머리를 갸우뚱했다. 학생이야, 권력패들이야 하면서.

특이했던 것은, 운동권들은 계속해서 민주화가 마치 커다란 선물인 것처럼 얘기하면서 자신들이 이루어 낸 것이라고 자랑을 했다. 별로 그렇게 느껴본 적은 없었지만, 당시 386, 지금의 586들이 그렇게 주장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민주화 투사라고 주장하면 할수록 자리에 집착하고 차지하더라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권이란 사람들이 가는 곳은 전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즉 권력이 있는 곳으로만 몰려갔다. 자신의 실력으로 세계와 경쟁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곳으로는 가지 않고(못 가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정치로만 몰려갔다. 농활 다니던 운동권 애들 중 졸업하고 난 뒤에 농민이 된 애들은 한 명도 못 봤다. 대학생이란 위치를 무슨 인텔리 지배층처럼 생각한다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도 자신의 영역에서 프로인, 현실을 아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선진 서구의 정치권을 보면 그렇다. 기업가든 학계 인사든 법조계 인사든 뭐든 간에 세상을 몸으로 겪어 정통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던데, 그와 달리 이들 586 운동권은 젊을 때부터 정치에 미친 집단 같았다. 아는 게 무리지어 목소리 내는 것밖에 없어서인지 또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했던지 모든 것을 정치로 엮었다. 머릿속에만 있는 자신만의 검증되지 않은 생각을 항상 옳다고 했다. 자기 견해와 다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쳐냈다. 그들은 자기만이 옳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대견해의 존재로 인해 자신들의 무지가 드러날까 겁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역사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시장경제가 사람을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한다고 증명하고 있는데 이들은 역사도 마음에 안 들면 뜯어고치려고 한다. 꼭 조선시대 사대주의와 주자학에 찌든 양반들 같다. 사농공상의 신분적 사고와 현실보다는 공허한 명분, 파란색이 눈에 보이는데도 빨간색이라고 우기면 빨간색이 정말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상소문으로 다른 사람 잡아 넣으라는 것이 하루 종일 일과인 그 조선의 양반 말이다.

운동권 586의 천하가 된 오늘을 보면, 이러한 나의 분석이 옳다고 여겨진다.

사상이 잘못되었어도 현실을 알면 유턴을 한다. 사상이 옳으면 현실을 몰라도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상도 잘못됐고 현실도 모르면 답이 없다.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이런 구시대 앙시앙레즘 세대부터 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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