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법적절차 밟겠다고 공식발표
"위안부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않는다" 이후 실질적 파기 조치로
1990년대 日 조성한 아시아여성기금 이어, 정부 적극개입으로 두번째 실패

문재인 정부가 21일 일제강점기 군(軍)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2015년 12월28일) 이후 2년 4개월 만에 그 이행사업인 화해치유재단이 해산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현 정부는 당초 위안부 합의의 파기나 재협상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으나, 결국 '파기'에 다름없는 대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재단의 소관부처인 여성가족부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추진하고, 재단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를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산에 필요한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6개월~1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이미 정부가 재단 활동을 중단시켜온 터여서 사실상 이날부로 마침표를 찍는 양상이다.

화해치유재단은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한일위안부 합의에 따라 2016년 7월 출범했다.

위안부합의에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갹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했다"고 명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합의 당시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전제했었기도 하다.

합의 내용에 의거해 재단은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약 100억 원)으로 피해자와 그 유족에 대한 치유금 지급 사업을 했고, 생존 피해자 총 47명(2015년 12월 위안부합의 시점 기준) 중 34명(72%), 사망 피해자(위안부합의 시점 기준) 199명 중 58명(29%·유족 수령)에게 치유금(생존자 1억원·사망자 2000만원)으로 총 44억원이 지급됐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위안부합의 '전면 재검토'를 표방하고, 올해 1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할머니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2015년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혀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특히 재단 이사진 중 민간인들은 지난해 말까지 전원 사퇴하면서 재단은 사실상 기능 중단 상태가 됐다. 7월부터 '전액 정부 예산 충당' 작업이 이행되면서 재단은 치유금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9월25일(미국 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 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앞서 1990년대 일본이 민간 모금 형식으로 추진한 '아시아여성기금'에 이어, 이번 화해치유재단도 실패한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름만 남은 합의가 되면서다.

이제부턴 일본이 정부예산으로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엔의 향방에 이목이 쏠린다.

10억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는 대응 방침에 따라 이미 10억엔에 상당하는 원화 103억 원이 '양성평등기금'에 사업비로 출연된 상태이고, 재단이 사업을 하고 남은 잔여기금이 57억8000만원(10월말 기준)에 달한다.

도합 160억원대의 양국 정부 예산의 사용처는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모양새다. 여가부는 "재단 잔여기금에 대해서는 지난 7월 편성된 양성평등기금 사업비 103억원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합리적인 처리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며 "외교부가 일본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는 등 관련 외교적 조치도 함께 취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해당 자금으로 재단 출연 목적과 같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현금 지원 사업'은 할 수 없을 전망이다. 사용처를 바꾸거나 일본 측에 출연금을 반환하는 것 말고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기가 어려운 가운데, 한국 정부가 반환하려 해도 일본 측은 수령을 거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만약 반환을 전제로 10억 엔을 예치하는 등의 절차에 착수할 경우 일본은 위안부 합의 위반이라고 반발, 외교 갈등상이 더욱 확대될 수도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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