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한국이 외톨이 된 어떤 사연
[홍찬식 칼럼] 한국이 외톨이 된 어떤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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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1100년 기념하는 ‘대(大)고려전’에 프랑스 등 대여 거부
대마도 사건 판결과 이를 옹호하는 사회 정서가 원인
국가 이미지 훼손에 유출 문화재 환수 차단 등 소탐대실 우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언론인

2018년 올해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대(大)고려전’을 말하고 싶다. 올해는 고려 건국 1100년을 맞는 해다. 우리 문화유산 중에서 불화 청자 대장경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들은 거의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표적인 고려 문화재를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회를 전부터 준비해 왔고 드디어 12월 4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 행사가 크게 위축된 상태다.

전시회를 제대로 치르려면 해외에 나가 있는 고려 문화재를 상당수 대여해 와야 한다. 뛰어난 유물들이 해외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일본 대만 등 외국 박물관과 소장자들은 한국에 소장품을 보내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렇게 된 가까운 원인은 지난해 1월 대전지방법원이 내린 대마도 불상 사건에 대한 판결이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다.

대마도 불상 사건은 2012년 일본 대마도에서 한국인들이 한 사찰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에 반입한 뒤 처분하려다 수사당국에 체포된 사건이다. 범인들에 대한 사법 처리가 마무리되면 해당 물건은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불상이 1330년 충남 부석사에서 제작된 고려시대 유물임이 확인되면서 부석사 측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국내 법원에 제기했고 1심은 “부석사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현재는 검찰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문화계에서는 이 판결이 나온 이후 외국 박물관과 소장자들이 한국에 문화재 대여를 극도로 주저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전시를 추진했던 대표적인 고려 문화재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다. 만약 성사된다면 19세기 말 프랑스로 유출된 이후 첫 국내 전시여서 문화애호가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유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우리 쪽 전시 제의에 대해 “대여 후 돌려받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일본의 국립박물관이나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 등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이들은 소장품을 한국에 보내면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다. 한국이 졸지에 ‘기피 국가’로 전락한 꼴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회가 ‘압류면제법’을 제정하면 된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전시 목적으로 국내에 반입할 때 압류나 몰수를 금지하는 법이다. 국회에서 이 법의 발의는 이뤄졌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 일각의 부정적 기류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 소재 소장품들은 ‘직지심체요절’을 필두로 대거 전시가 무산됐고 ‘대고려전’ 행사도 의미가 반감되고 말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8년 전인 2010년에도 ‘고려불화대전’을 개최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화’로 평가 받는 고려불화를 모은 전시회였다. 당시 전시된 61점의 고려불화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42점이 해외에서 대여해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고려전’에 출품 예정인 해외 소장 고려불화는 6점에 불과하다. 그동안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싸늘해 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이에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지난해 대마도 사건 판결문에는 ‘불상이 부석사 소유임이 넉넉하게 추정 된다’는 표현이 나온다. 불상이 약탈로 일본에 반출된 점이 입증된다면 부석사의 소유권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600년도 넘는 과거의 일이라 약탈 입증은 어렵다고 문화재청도 법원에 의견 제시를 했다.

법원이 ‘추정’에 의해 판결하는 것이 법률적 접근이 아니라는 건 문외한이라도 다 안다. 그래서 법원은 ‘넉넉한’이란 형용사를 동원해 ‘추정’의 강도를 높이려 했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고 싶은 국민 정서에 부합할지 몰라도 외부에선 통용될 수 없는 논리다.

마침 이 판결과 비교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2002년에도 대마도 사건과 거의 동일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효고현의 한 사찰에서 고려불화를 훔쳐 국내에 들여와 팔다가 붙잡힌 것이다.

2005년 이 사건을 다룬 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당시 법원은 “약탈당한 문화재로 단정할 수 없다”며 범인들에게 유죄 선고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인들이 저지른 범행과 같은 방법으로 문화재를 되가져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국제적 범죄일 뿐 문화국가 국민으로서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국력을 키워 정상적인 국가 간 협약 등의 방법으로 우리 문화재를 반환 받는 게 후손들에게도 떳떳하다.” 두 판결의 차이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가치 기준이 정말 빠르게 변하는 곳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마도 사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의적(義賊)’ ‘애국 절도’라는 칭송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정서가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결과가 이번 ‘대고려전’이 겪고 있는 곤경이다.

이 사례는 해당 분야가 문화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점이 많다. 요즘은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국가 이미지는 그 나라 문화를 통해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벌써 국제적으로 알만 한 사람들은 한국 사정을 대충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는 작업에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근현대 국가적인 수난기 때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무려 17만점에 이르는 걸로 통계에 나와 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몇 배에 이를 게 확실하다. 고려불화만 해도 현존하는 160점 가운데 한국에 있는 것은 20여점뿐이다. 지속적인 문화재 환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과의 문화적 인간적 교감과 설득이 중요한데 스스로 협상의 창구를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

이번 ‘대고려전’은 문재인 대통령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 9월 남북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은 “북한의 고려 문화재를 ‘대고려전’에 출품해 달라”고 김정은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막상 실무 교섭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최근 “개막 이후에라도 북한 유물이 오게 되면 추가 전시하겠다”고 말한 걸 보면 개막일까지 북한 유물이 안 올 가능성도 있다. 반드시 전시가 성사되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무산된다면 우리 입장은 어찌되는 걸까.

요즘 국제 관계에서 한국이 배제를 자초하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북한 비핵화 문제 등에서도 그렇다. 이번 ‘대고려전’이 그와 자꾸 겹쳐 보이면서 불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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