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어도 재판정 안 세운다" 지목된 김태흠 처사에 우파진영 실망감 고조
기업 강제모금은 헌법재판소가 朴대통령 직접적 위헌사유로 지목, 파면한 사안
전화로 "삼류 기자" 비난받은 조우현 미디어펜 기자 "이러니 삼류정치 안 사라진다" 개탄
우원재 청년부대변인 "우파가치 짓밟는 한국당 소속 정치인때문에 국민이 외면"
"그나마 남은 지지자들에 한국당 次惡일 뿐인데, '똑같은 惡' 돼버리면 왜 표를 주겠나?"
자유시장 몰이해·모순 사례는 '계파 불문'…"자유·보수주의 충실히 복무했는가" 자성을

지난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삼성·현대차 등 15개 대기업 임원진을 불러 이른바 '농어촌상생기금' 모금을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감사하겠다"는 말로 압박했다는 논란의 여진(餘振)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자유우파진영 내에서의 여론이 술렁이는 양상이다.

앞서 전임 정부 청와대가 대기업들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 재단에 700억원대 '기금 모금'을 했던 과정을, 헌법재판소는 '강요'에 의한 ▲기업 재산권 침해 ▲기업 경영 자율권 침해로써 직접적인 '탄핵 인용 사유'로까지 적시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킨 바 있다.

헌재 판결 이후로 기업들을 상대로 한 정부·정치권력의 갹출 요구는 '대통령조차 파면시킬 수 있는 위헌적 행위'라는 경각심이 경제계에 확산된 지 오래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기업 총수들까지 횡령·배임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터다. 

정치권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정부 외의 주체의 출연금을 모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애초 탄핵의 기준이 된 헌법보다 하위 법령을 근거로 삼은 주장에 기업인들의 불안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일각에선 '상생(相生)이라고 명명했을 뿐 특정 이익집단을 위해 타인의 사유재산을 희생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무감각한 듯, 국회 농해수위에선 여야 불문하고 "(농어촌상생기금 출연은) 여야와 기업이 사회 공감대 속에 했던 약속"이라며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이 와중에 "정권이 바뀌어도 재판정에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리겠으니…"라는 말까지 나와 자연스레 비판론이 확산됐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이 11월19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공공비축미 방출과 관련해 정부의 해명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발언자가 당명(黨名)에 '자유'를 내걸고, 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강제 모금'을 직접 사유로 파면된 자유한국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자유우파 진영 내부의 실망감도 만만치 않다. 발언 주체인 김태흠 의원(충남 보령시서천군·재선)이 당내 주류였던 친박(親박근혜)계로 분류돼왔단 점에서 '한국당이 이념·원칙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만하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김태흠 의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 기부를 요구한 건 엄연한 실언(失言)", "이런 가당찮은 발언이 '자유'를 내건 정당 소속 의원 입에서 나왔으니 대한민국 정치가 삼류(三流)를 면치 못한다"고 비판한 언론인에게 전화를 걸어 "삼류 기자"라고 비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 확산을 부추겼다.

우파성향 인터넷신문 '미디어펜'의 조우현 산업부 기자는 지난 18일 <"돈 낸 기업 법정 안세운다?"…삼류 정치 언제까지>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을 통해 농해수위 여야를 겨냥, "(수입산 제품과의 경쟁 촉진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농어촌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고 자유시장경제의 '원칙론'을 제기하면서 이같이 비평한 바 있다.

특히 "누군가는 옳은 목소리를 내야 하고, 이 옳은 말을 해야 할 정당은 기업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할 '자유한국당'"이라며 "제대로 된 대안은커녕 인기영합에 편승해 더한 말을 하고 있으니 희망이 없다. 이런 나라에서 기업을 이끌어야 할 기업인들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우현 기자에 따르면, 기자수첩 보도 이후 김 의원은 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역정'을 냈다는 후문이다. 조 기자는 19일 자신의 주변에 "이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조금 전 김 의원으로부터 '삼류 기자' 소리를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본인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삼류 정치인이 아니라고 하셨던가,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셨으나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며 "이러니 삼류 정치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거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당 내에서도 통렬한 비판이 제기됐다. 우원재 한국당 청년부대변인(28)은 19일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을 규탄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도대체 김 의원은 무슨 권리로 저런 발언을 한 것인가. 일개 정치인이 경제인들을 대상으로 재판정 운운하며 출연을 요구하는 것이 정상인가?"라고 공개 반문했다.

우원재 청년부대변인은 "기업이 잘못한 게 있으면 정권이 바뀌건 바뀌지 않건, 김 의원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재판정에 서는 것"이라며 "반대로 기업이 잘못한 게 없다면 재판정 걱정은 하지 않아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추궁했다.

또한 "이게 대한민국 정통우파 정당을 자처하는 한국당 소속 의원이 할 말인가. 자유시장 가치를 짓밟는 것은 물론이요 저열한 갑질 근성까지 녹아 있는 발언을 들으며 제 스스로가 한국당 당원이란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성토했다.

그는 "해당 발언이 보도됐을 때만 해도 기금 요청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말이 잘못 나왔겠거니 하고 '혀 한번 차고' 넘어가려 했다"며 "그런데 오늘 김 의원이 자신에 대한 비판 논조가 담긴 기사를 쓴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우 부대변인은 "본인 발언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비판적인 논조의 글을 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한 김 의원의 반응에 절망을 느낀다"며 "한국당 소속 여부를 떠나 정치인으로서 자격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당 최고위원까지 했던 인물이 경제인들에게 갑질을 하고, 나아가 이를 비판한 기자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갑질하는 모습을 보며 왜 한국당이 국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며 "한국당을 위해 일했고, 한국당을 아끼고 있고, 한국당이 가치 정당으로 바로서기를 바라고 있기에 김 의원을 비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수우파의 가치를 짓밟는 한국당 소속 정치인들을 보며 더 이상 침묵하고 있지 않겠다"며 "우리는 '가치와 철학'에 충성하지, 인물과 진영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나마 남아 있는 지지자들께 현재 한국당은 '차악(次惡)'일 뿐인데, 이런 식으로 '똑같은 악'이 돼버린다면 왜 표를 던지겠나?"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월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왼쪽)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오른쪽)에게 "백종원 대표의 가맹점이 '손님 다 뺏어간다'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지적했다가, 가맹점주들 역시 소상공인이라는 취지의 반론에 직면한 바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한국당 소속이면서 자유시장경제 가치에 몰이해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는 정치인은 김 의원이 첫 사례만은 아니어서 '당 차원에서 쇄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지난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유섭 한국당 의원(인천 부평구갑·초선)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에게 "골목상권 '제로섬 게임'에서 백종원 대표의 가맹점이 '손님 다 뺏어간다'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지적했다가, 백 대표로부터 "가맹점을 잘 키워 가맹점 사장을 잘 벌게 해준 것뿐인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 "자율경쟁시대에서 이런 행동들이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반론에 직면해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제로섬 게임' 언급을 미루어 시장 경쟁을 단순 '강약 논리'에 의해 '뺏고 빼앗기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유섭 의원은 비박(非朴) 성향으로 분류돼왔다는 점에서, 한국당에 대한 이념·가치노선 쇄신 요구는 기존의 '단순 계파 갈등' 프레임 등을 초월한 의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5일엔 농해수위 한국당 위원 일동(강석진 경대수 김성찬 김정재 김태흠 이만희 이양수 7인)이 성명을 내 '쌀값 안정'을 목표로 한 정부의 12월 초 쌀 5만t 방출에 "즉각 중단하라"며, 한술 더 떠 "쌀 목표가격의 대폭 인상으로 그간 제값을 받지 못한 쌀값을 정상화 궤도에 올리라"고 입을 모았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농업을 천대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명백히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방향으로의 가격 통제 강화를 '자유'한국당이 노골적으로 요구해, 모순을 드러냈다는 비판이다.

전국 253개 지역구 당협위원장 임명 심사를 맡은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는 지난달 15일 구성 초기 "과연 한국당은 보수주의, 자유주의에 복무했는가. 자유와 책임, 도덕성에 충실했는가"라며 "돌이켜보면 지난 9년 집권기간 동안 한국당은 이 상황을 자초하지 않았던가.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에 충실한 국가경영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던가"라고 자성을 촉구했었다.

이후 조강특위는 '전원책 외부위원 해촉 사태'를 봉합하고 이달 19일 정성평가 기준을 발표하면서도 ▲반(反)시장적 정책 수립 및 입법 참여자를 '감점요인'으로 제시하면서, ▲분명한 자유민주주의·안보관을 지니고 당당하고 유능하게 당 입장을 주장할 인사들을 등용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황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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