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에 터 잡아서 법관이 법관의 탄핵을 요구했다”
"참담한 의결을 하고는, 그중 3분의 2 정도는 대법원장님과 만찬 가지기로"
"평생 법관으로 자부심갖고 조직에 헌신했던 동료들을 탄핵하자고 가결하고..."
"잘 차려진 음식 먹으러 가는 그분들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나"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페이스북 캡처]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페이스북 캡처]

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회의)가 19일 소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해 ‘탄핵소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은 것과 관련해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정의의 여신이 저 긴칼로 자신을 목을 베어 버린 날”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 사법부의 좌경화 움직임에 종종 쓴소리를 해온 김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번 법관회의 결론에 대해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에 터 잡아서 법관이 법관의 탄핵을 요구했다”며 “수사도 끝나지 않았고, 재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을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유죄로 평결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법관회의 결정이 부당한 이유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조목조목 지적하며 부결이 정당하다고 호소했으나 “아무런 메아리 없이 벽에다 소리치는 꼴이었다”고 토로했다.

-김태규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서 '법관 탄핵 촉구 결의안'의 문제점이라며 지적한 내용

• (엄격한 증거를 통한) 사실 확정이 아직 되지 읺았다.
• 국회가 여론을 통해 판을 키우면서 사법농단이라는 명분을 쌓고, 절차를 무시하고 유죄로 판단하여 법원을 압박하는데, 그런 국회를 비난할 명분이 없어졌다 .
• 탄핵은 다분히 정치적 행위이므로 법관이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 탄핵소추권은 국회에게 있으므로 우리가 나서 탄핵을 촉구하는 것은 권력분립원리에도 맞지 않다.
• 법관이 정치화되어서는 안된다.
• 전 대법원의 수뇌부는 대개 퇴직하고, 심의관과 같이 아래에서 지시에 따라 일을 수행하는데 그쳤던 법관들에게 탄핵은 가혹하다.
• 지금은 칼자루를 쥐고 있지만 나중에는 그게 칼날로 변할 수 있다.

앞서 이날 열린 법관회의에서는 이른바 '재판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현직 판사들에 대해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번 회의에서 통과된 '탄핵 촉구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법관회의가 탄핵소추를 촉구함에 따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관탄핵 소추안 추진도 급물살을 타며 ‘사법부판 적폐 청산’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사안을 명목으로 사법부 내 정치적 판단이 강화되고 좌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법관회의 표결과 관련해 “표결 전에 그 표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회의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혹시 포기한 자신의 ‘한 표’로 동료가 억울한 지경에 처할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반대표를 던졌는데, 보람 없이 가결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의 회의는 의미가 없다 싶어 회의장을 나와버렸다”고 떠올렸다. 

그는 또한 “그런 참담한 의결을 하고는, 오늘 그 법관들 중 3분의 2 정도가 대법원장님과 만찬을 가지기로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평생을 법관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며, 사리를 도모하지 않고 조직을 위해 헌신했던 동료들을 탄핵하자고 가결하고 나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으러 가는 그 분들의 얼굴에서 저는 무엇을 보아야 하나”며 탄식했다.

한편 회의 직후 법관 대표들과의 만찬을 가진 김 대법원장은 의결 결과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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