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서 "韓정부 포용, 포용적 성장-사회-민주주의 이르기까지 배제 않는 것" 홍보
'포용국가론', 소득주도성장 비판일자 정책변화 없이 용어 바꾼 포용적성장서 넓힌 개념
內政은 정치·사법 '적폐 청산', 경제는 '구조 변경' 논리 아래 반대파-사회적 약자 배제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파푸아뉴기니 포트모르즈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하우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파푸아뉴기니 포트모르즈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하우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싱가포르에 이어 파푸아뉴기니를 방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이른바 '포용적 성장'이라는 정부 레토릭을 홍보하는 것을 넘어 "배제하지 않는 포용"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파푸아뉴기니 포트모르즈비의 APEC 하우스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정부가 추구하는 포용은 포용적 성장, 포용적 사회, 포용적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배제하지 않는 포용"이라고 말했다. 언론에 배포된 발언문 전문(全文)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 순서에서 이처럼 '포용'을 총 21차례나 언급했다.

현재 자칭 타칭 '포용국가론'으로 불리는 이런 수사(修辭)는 일찍이 임금·노동시간 통제 강화를 골자로 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 실패에 따른 비판론이 고조되자, 정부·여당이 정책기조 변화 없이 '포용적 성장'이라고 용어를 치환한 뒤, 한층 포괄적이고 구체성이 떨어지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 참석차 7박9일 유럽 순방을 했을 때만 해도 레토릭은 '포용적 성장'에 그쳤으나 이달 1일 새해 정부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포용적 성장, 포용적 번영, 포용적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배제하지 않는 포용'이 우리 사회의 가치와 철학이 될 때 우리는 함께 잘살게 될 것"이라고 못박으면서 '포용국가론'이 정치권의 용어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포용국가'를 직접 8차례, 비슷한 의미의 '함께'를 25차례 언급했으며 고용·성장률 악재에도 '성장'은 두 용어의 총합에 못 미치는 26차례 언급하는데 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정상회의에선 "포용적인 글로벌 통상 환경을 수호해 나가겠다"고 공약(한-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했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본회의 발언에서도 "한국은 사람 중심의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스마트시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포용' 레토릭을 거듭 사용했다.

뒤이어 이날 APEC 정상회의 발언에선 대대적으로 포용국가론을 홍보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심화라는)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다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채택했다"며 "포용성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APEC 회원국 간 격차를 줄이고 공정한 기회와 호혜적 협력을 보장할 때 우리는 함께 잘 살고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국제 관계에까지 '포용'이란 레토릭을 접목시켰다.

그러면서 '포용적 APEC 공동체' 달성을 위한 '포용성 정책 사례집' 제작을 제안하고, 나아가 "디지털화의 진전이 사회적 격차를 더 심화시킨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 APEC에서 '디지털 미래와 포용적 성장'을 논의하게 돼 뜻깊다"면서 "APEC 디지털 혁신 기금 창설을 제안한다", "국가간 디지털 격차를 줄여 공동번영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했다.

'포용'의 개념에 대해선 앞서의 '배제하지 않는 포용'에 이어 "국민 모두가 함께 잘 살고,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며 성별, 지역, 계층, 연령에 상관없이 국민 단 한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포용"이라고 추상적인 언급을 덧붙였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성장과 개인 사유재산 보장이라는 원칙보다 '소득평준화'를 적극 지향하는 태도가 읽히고, '단 한사람도 차별받지 않는'이라는 언급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내정(內政)을 봐도 '포용'과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 역시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현 정권에서 초래된 21세기 이래 최악 수준의 실업률 등 '고용쇼크'와 '성장률 둔화', '양극화 심화'에 관해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의 금리인상,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 "전통 주력산업인 제조업의 침체 계속", "구조적인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 "고용의 어려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등 경기 침체를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했다. 

특히 현 정권의 실정(失政) 논란은 뒤로 하고 "새롭게 경제 기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 자영업자, 고령층 등 힘겨운 분들도 생겼다"며 "우리 경제 체질과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치부해, 경제·사회적 약자 층을 포용을 내세운 정책 관철의 희생 대상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게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고, 전임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표적으로 한 수사·재판까지 횡행하다는 점에서 '포용국가'와는 거리가 먼 정국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 역시 있다. 

문 대통령 자신부터 집권 직전까지 두 전임 정부를 '가짜보수'라고 몰아세우며 '횃불로 불태워야 한다'고 여론몰이에 나선 적이 있고, 집권 이후에도 '적폐 청산'을 직접 공언해 단죄론을 부추겼다. 수차례 해외 순방 등에서는 집권 명분인 '촛불(집회)'을 누차 언급하며 촛불에 거부감을 느꼈던 국민들을 '배제'하는 듯한 언행을 보여 왔다.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김명수 현직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에서는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을 조장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의 주요 판결과 사법행정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듯한 기조까지 읽히고 있다. 한편으로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라는 레토릭 역시 1년6개월여 되된 정부에서 이미 정부를 뛰어넘는 비리 의혹 투성이 장관급 인사 참사, 각급 공공기관 임원급 낙하산 인사, 집권여당 소속 지자체장 관할의 공공기관에서 불거진 고용세습·채용비리 의혹이 연일 확산되면서 무색해진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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