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을 '항쟁' '사건'으로 바꾸고 특별법 제정하자는 움직임 확산
여순 반란 일으킨 軍내 공산당세력이 국가폭력 희생자-진압 군경이 가해자라고?
호남 기반 민평당 이용주·정인화 역사왜곡 정당화하는 특별법안 대표 발의
정경두 국방장관 "여순반란 진상규명 협조…軍 관련돼 유감"

여수·순천 반란을 여순항쟁으로 표현하는 모습.(연합뉴스 제공)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직후 전남 여수 순천 지역에 주둔했던 군(軍)내의 좌익 세력이 중심이 돼 무장반란을 통해 신생 대한민국에 정면도전했던 국군 제14연대 반란 사건(이른바 여수·순천 반란 사건)을 정당화하거나 미화(美化)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발생해 올해 70주년을 맞는 여순 반란사건을 '항쟁'이란 단어로 바꾸거나 재평가를 요구하는 주장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지역 사회는 물론 정치권 일각에서도 명백한 반란세력인 공산당 세력을 희생자로 반들고 이들을 진압한 대한민국 정부와 군을 가해자로 만들어 현대사를 뒤집고 왜곡하려는 이런 움직임에 편승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군내 공산당 세력의 반란인 여수·순천 반란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2400명)가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해 제주도로 가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홍순석 김지회 등 14연대 소속 남로당 극좌세력들의 주도로 반란을 일으켜 여수를 시작으로 순천, 벌교, 고흥, 구례, 남원, 광양, 보성, 곡성 등 전라남도 일대와 전라북도 일부 지역을 점령해 나가면서 최소 5530명에서 최대 1만 명까지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여수·순천 반란은 1950년 6월 25일 북한 김일성 정권이 대한민국을 공격하기 1년 8개월 전 남한 지역에 존재하다 군에 스며든 좌익과 공산당원들이 일으킨 사실상의 내전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국군 14연대가 인민대회를 개최하고 채택한 혁명과업 6개항을 보면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 반란군은 조선인민공화국을 보위하고 충성할 것을 맹세했고 이승만 정권을 미국 제국주의에 조국을 통째로 팔아먹은 분단정권으로 규정하고 분쇄를 맹세했다. 여순 반란 사건 후 정부는 군내 좌익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군(肅軍) 작업을 벌였다. 만약 당시 군부내 좌익세력 척결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6.25 전쟁 후 한국이 북한 김일성 정권에 의해 적화됐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이다.

이런데도 여순 반란의 성격을 재조명하겠다는 강성좌파 단체들은 좌익 및 공산당이 국군에 스며들어 일으킨 반란을 이승만 정권에 반대한 혁명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이들 단체는 여수·순천 반란에서 진압당했던 좌익과 공산당원을 국가권력에 희생된 자로 묘사하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가족들을 보상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여수·순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다.

좌파단체와 정당이 결합한 이른바 범(汎)국민연대는 제주 4·3 폭동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부당한 명령으로 판단한 여수 주둔 14연대 군인들이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며 봉기한 것은 부당한 정치권력에 대한 반항이었기에 반란이 아닌 항쟁의 성격을 띤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연합뉴스 제공)

이런 주장에는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민주평화당 일부 의원들도 동조하고 있다. 이용주 의원(여수 갑)은 지난 9월 21일 여수·순천 반란을 항쟁으로 표현해야 한다며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작년 4월에는 같은 당의 정인화 의원(광양·곡성·구례)도 여수·순천 반란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인 대표 발의한 특별법안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심사가 보류된 상태다. 

지역 정치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전남도의회는 9월 18일 열린 본회의에서 여수·순천 사건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는 여수, 순천, 광양, 보성, 고흥 등 국군 14연대가 장악했던 지역의 도의원 1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수시의회, 광양시의회, 구례군의회 등도 공식적으로 여수·순천 반란의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역사 각색 작업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지난달 1일 여수·순천·광양시 행정협의회는 공동 협력사업 안건으로 여수·순천 사건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정부와 국회 등에 건의했다. 행정협의회는 여수·순천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된 좌익과 공산당원을 희생자에 포함시켜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위령 기념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수시 공무원노조는 지난 8일 여수·순천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당한 좌익과 공산당원까지 희생자로 규정하고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달 20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여수·순천 반란을 '여순항쟁'이라고 주장하며 좌익과 공산당원의 넋을 달래는 위렵제 행사를 여는 단체도 등장했다. 여수MBC와 KBS순천은 70주년을 맞은 여수·순천 반란의 역사적 진실과 거리가 있는 방송을 편성하고 있고 국립 순천대 역시 역사적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도 심상치않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일 여수·순천 반란에 대한 진상규명에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수·순천 반란 진상규명과 관련한 국방부의 입장을 묻는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 질의에 대해 "과거 불행한 역사에 군이 관련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방부는 관련 조사에 철저히 응하겠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세상이 뒤집힌 것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에 대한 명백한 무장반란행위까지도 정당화하는 이상한 나라로 달려가고 있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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