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제주도 감귤나무는 박정희 대통령 작품”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1일 감귤을 우리 군 수송기에 실어 북한에 올려 보냈다. 올해 특히 달고 맛있다는 제주산 감귤 200톤이다. 10kg짜리 상자 2만 개에 담아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하루 두 번씩 모두 네 차례로 나눠보낸다. 정부는 이른바 ‘감귤 북송 작전’에 공군 C-130 수송기 4대를 투입했다. 공군 수송기가 제주공항에서 평양으로 이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군 수송기 4대가 이틀간 동원될 정도로 대규모의 대북 물자가 제공된 것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송이버섯 2톤을 선물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귤은 북한주민들이 평소 맛보기 어려운 남쪽 과일”이라며 “대량으로 보내 되도록 많은 북한 주민이 맛보게 하고자 하는 마음도 담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탈북민들은 청와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유와인권을 위한 탈북민 연대 김태희 대표는 “그동안 남한이 보낸 쌀은 한 번도 북한주민에게 분배된 적이 없다”며 “송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밤낮없이 노동을 해야만 했던 북한주민들에게 감귤이 돌아갈 것 같느냐”고 반문했다. 김 대표는 “북한주민들을 위해 제주산 감귤을 보낸다는 것은 쇼에 불과하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북한인권단체 ‘나우’ 지성호 대표는 “최근 북한 장마당에서 팔리는 중국산 귤은 한 알에 보통 한 끼 식사 비용 정도로 매우 비싸고 귀한 음식”이라며 “북한정권이 평양주민들 혹은 외부세계의 시선을 의식해 고아 등 아동들에게 분배할 수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당초 송이버섯 대신 북한에 억류된 우리나나라 국민을 먼저 싣고 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북한 김정은에게 올라간 제주산 감귤은 다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용삼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북한에 보낸 감귤이 어떻게 만들어진 감귤인지를 알아야 한다”며 “빈곤과 고난의 상징이었던 제주도가 전국 1위의 부촌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며 제주산 감귤은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삼 전 편짐장은 “감귤 생산 이전까지 제주도는 ‘고난의 섬’으로 불릴 정도로 매우 가난했고 제주 4.3사건과 같은 이데올로기 대립이 벌어졌다”며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그해 9월 8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제주도 처음 방문해 섬을 샅샅이 살핀 후 관광을 진흥시키고 감귤을 생산하며 도로를 건설하고 수도시설 확충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실제로 이를 이뤄 제주도를 지금과 같은 관광지, 농업소득 전국 1위의 부촌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재임 18년 동안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탈바꿈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변혁의 지역이 제주도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현무암 부스러기로 구성된 제주도 지형 상 쌀농사 어렵다고 판단해 수익성 높은 감귤 전략품종으로 재배하라고 특별 지시했으나 당시 우리나라에 감귤 묘목이 없었다”며 “박 대통령은 일본에서 감귤나무를 들여오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재일교포들이 1962년 500그루를 시작으로 1970년대까지 총 314만 9250그루 묘목 재일교포들이 한국으로 들여왔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 때문에 혹은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들을 파트너로 끌어올렸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갔던 제주인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에 눌러앉아 당시 오사카와 도쿄 등 일본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자는 무려 12만 명에 달했다.

김 전 편집장은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 재일제주개발협회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했는데 1962년 4월 1차 향토방문단이 타고 왔던 쌍발 프로펠러기로 감귤 묘목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고 이후 1970년까지 9년 간 제주도에 총 314만 그루 이상의 감귤묘목을 기증했다"며 "감귤보급으로 인해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상은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고 수천 년 동안 숙명처럼 이어져 왔던 '빈곤' 탈출의 견인차가 됐다"고 지적했다. 1970년 무렵 감귤은 '대학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는 감귤농사를 지으면 자녀들을 육지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김정은이 감귤을 먹으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로 감귤이 만들어진 점을 깨닫고 고마움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또한 북한도 대한민국처럼 개혁개방을 해 모든 북한주민들과 아이들을 잘 먹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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