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위헌정당 해산결정을 내린 옛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약 3년 만에 원내 의석을 지닌 제도권 정당으로 부활했다. '민중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반미, 내란사범 이석기 등 석방 운동 범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 2의 이정희'로 불리는 김재연 전 통진당 의원이 이 정당 대변인이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눈길을 끌었다.

민중당은 2016년 2월27일 창당 후 통진당 당권파와 옛 조직체가 규합한 '민중연합당'과, 20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당선된 통진당 기초단체장 출신 김종훈(울산 동구)·윤종오(울산 북구) 의원 중심으로 2017년 9월 세운 '새민중정당'이 합쳐진 정당이다. 두 당은 지난해 10월15일 국회에서 합당을 완료했고 같은 달 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민중당 법적 창당 절차를 마쳤다.

민중당이 창당 후 선보인 첫 제도권 행보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찾아 성탄절맞이 '양심수 특별사면'을 요구한 것이었다. 민중당 지도부는 지난해 11월2일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내란선동 등 혐의로 징역 10년형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2015년 11월 경찰 113명 부상, 경찰 버스 50대 파손을 야기한 '민중총궐기'라는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5년 실형을 사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에 대해 "빨리 나오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대 총선 당시 직접 울산을 방문해 김종훈·윤종오 의원 당선을 사실상 도운 만큼, 집권여당으로 격상된 민주당의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중당 지도부가 민주당을 방문한 지 한 달 보름여 지난 12월18일부터는 '민중총궐기' 사건으로 경찰 수배를 받고 있는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수배 해제를 요구하며 여의도 민주당사 당대표실 '무기한 점거'에 들어가는 일도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 하의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놓고도 이영주 사무총장의 불법 농성을 수수방관해 '정권이 약점 잡힌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문 대통령이  집권 초기 통진당 해산을 유일하게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당시 교섭단체 야3당의 전면 반대에도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려 한 시도도 주목된다.

민중당 지도부가 주축이 된 구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통진당 해산 3주년을 맞은 2017년 12월1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통진당 복원과 이석기·한상균 등 이른바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민중당 공식 페이스북
민중당 지도부가 주축이 된 구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통진당 해산 3주년을 맞은 2017년 12월1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통진당 복원과 이석기·한상균 등 이른바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민중당 공식 페이스북

 

●민중당 인적구성 보니…'통진당 부활' 의혹

민중당에서는 새민중정당 대표·원내대표를 맡았던 김종훈·윤종오 의원이 각각 상임대표와 원내대표직을 이어가고 있다. 김창한 전 민중연합당(이하 민연당) 대표도 총 2인의 상임대표 중 1인으로 선임됐다. 김창한 대표는 통진당 노동위원장을 지냈고, 그의 아내는 유선희 전 통진당 최고위원이다. 지도부 핵심이 전부 통진당 출신인 셈이다.

공동대표단에는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위원장,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치위원장,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화수 전 새민중정당 여성위원장 등이 임명됐다. 이와 함께 민연당 소속이었던 손솔 흙수저당대표, 안주용 농민당대표, 장지화 엄마당대표, 정태홍 지역당원대표(전 통진당 서울시당위원장)가 공동대표단에 합류한 상태다.

통진당 부활 논란은 민중당의 '몸통' 격인 민연당 출범 이전부터 있어왔다. 통진당 세력들은 정당 해산 이듬해 6월 '민주수호 국민행동'을 결성했다. 여기에 지역별 50개 산하조직이 있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창당한 것이 민연당이다.

민연당은 농민당·노동자당·흙수저당 3당의 연합체로 시작했는데, 이광석 전 전농 의장·강승철 전 민노총 사무총장·손솔 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이 각당의 대표로 3인 공동대표 체제를 이루면서 통진당 연관 활동 전력이 논란에 휩싸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이광석 전 대표는 전북도지사 통진당 후보로 출마했고, 강승철 전 대표는 같은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손솔 대표도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의 후신 격이자, 통진당과 깊이 연루됐던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사립대 적립금 축적 반대 기자회견 등 공동 행동에 나선 적이 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약 한달 앞둔 3월에도 민연당은 김재연·김선동·이상규 등 전직 통진당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입당하면서 통진당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재연 전 의원은 이정희 전 대표와 더불어 통진당 '간판 정치인'이었고, 김선동 전 의원은 2011년 '국회 최루탄 사건' 장본인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

통진당은 해산과 함께 소속 국회의원직 상실(김미애·오병윤·이상규·김재연·이석기 5명)만 이뤄지는 등, 완파되지 않은 조직을 기반으로 창당 한달 여만에 10여개의 광역시도당을 구축, 2만명이 넘는 당원을 모으고 4월 총선에 총 55명(지역구 51, 비례 4)의 후보를 내 조직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다만 성과는 비례 의석 확보 하한선인 정당득표율 3%에 한참 못 미치는 0.61% 득표와 함께 후보자 '전원 낙선'에 그쳤다.

민연당은 같은해 8월14일 2기 지도부를 꾸렸다. '1인 출마-찬반 투표'로 김창한 상임대표 겸 노동자당대표, 안주용 농민당대표·정태흥 지역당원대표·손솔 흙수저당대표를 총 4인의 공동대표단에 선출했다. 2기 지도부에 새로 입성한 안주용 농민당대표는 통진당 전남도당 부위원장 출신이다. 통진당의 핵심세력이었던 범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당직 선거 결과 중앙당·지역당직의 80% 안팎을 차지했다는 분석(자유민주연구원)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민중당을 원내정당 지위에 있게 한 새민중정당도 지난해 9월3일 통진당 출신들을 주축으로 창당됐다. 김종훈·윤종오 의원을 상임대표·원내대표로, 최고위원에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김기형 전농 정치위원장·이영순 전 통진당 의원 등을 추대했다.

애국가와 국민의례 없는 창당대회를 거친 이 정당은 출범 때부터 민연당과의 통합을 계획했다. 이은혜 당시 새민중정당 대변인은 "진보 대단결"을 명분으로 "(통합 상대인) 민연당에 통진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문제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김종훈·윤종오 의원은 무소속 간판을 달고 있을 때도 민연당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등 일찍이 민연당과의 친밀함을 과시한 바 있다.

새민중정당 당적을 갖기에 앞서 김종훈·윤종오 의원은 2016년 10월18일 출범한 '민중의 꿈'이라는 단체 공동대표로 먼저 원내외 활동을 해왔었다. 민중의 꿈은 민주노총 주도로 정의당·민연당까지 아우르는 정치조직화 선제기구라는 설명이다. ▲반미 자주와 대북 유화책 ▲사드 배치 반대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탄핵 ▲이석기·한상균 석방 등을 목표로 한 선동과 장외 촛불집회에 앞장섰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두 의원은 20대 총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자당 이수영(울산 동구) 이상헌(북구) 후보 사퇴를 종용한 결과 야권 단일후보로 국회에 입성했다. 두 의원은 이러한 활동들을 거쳐 통진당·장외 좌파세력이 규합한 민중당 원내사령탑으로까지 등극했다.

민중당 출범 시점에도 통진당 부활이라는 논란은 제기됐다. 언론의 지적에 대해 김종훈 상임대표는 "낙인찍지 말라"고 반발, "그분들(통진당 세력)이 진보 정치를 위해 헌신해 온 분들이기 때문에 함께 가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분들만 있는 정당이 아니다. 당원 80%가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민중당은 11월 말부터 김재연 전 의원 명의로 대변인 논평을 내기 시작하면서 옛 통진당의 간판 인사를 재차 전면에 내세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행보도 '도로 통진당' 논란'…민주당, 일체 묵인

민중당은 제도권 진입 후 이른바 양심수 석방을 공언하고 있다. 김종훈 상임대표는 창당 절차를 마친 직후 "복역 중인 한상균 전 위원장과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창한 상임대표도 "(정부가) 한 전 위원장을 먼저 석방하고 (노동계와) 대화하려는 자세를 갖추려는 게 수순"이라며 "이 전 의원 등 양심수를 석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양심수 석방은 지금의 범여권 세력이 자랑하는 '1700만 촛불(주최측 주장, 연인원 누적 기준)'의 박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사드배치 반대 등과 함께 단골메뉴처럼 등장한 구호였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중심이 된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민연당과 민중의꿈 등 단체는 '이석기·한상균 등 석방' 플래카드를 곳곳에 내걸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민연당·민중의꿈 등은 '억울한 희생양,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하라' 등 구호와 함께 통진당 해산 불복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퇴진행동의 후원을 받아 2016년 12월13일 '헌법재판소, 촛불민심 담을 수 있을 것인가'란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연 자리에서는 헌재의 과거 통진당 해산 결정을 두고 "여론과 정해진 각본에 따라 해산했다"며 일방적인 피해자를 자처했다. 이를 두고 박 전 대통령 탄핵이 통진당 부활작업의 일환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퇴진행동은 민연당 등의 주장은 1500여개 참여단체 중 소수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민연당은 촛불집회가 회를 거듭할 때마다 당기(黨旗)와 플래카드, 시위대 인력을 대규모로 동원해 집회 현장 전반을 주황색으로 물들일만큼 세를 과시했다.

이들 세력은 반미·친북, 계급투쟁적 성향도 다분하다. 민중당은 당 '기본정책'을 통해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청산해 사회 전 분야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한다"거나,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계승해 전쟁과 분단 체제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평화지향의 중립적 통일국가를 건설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김재연 대변인 첫 논평을 통해서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기능 폐지·이관과 명칭 변경에 대해 "간판만 바꿔 달겠다는 국정원의 꼼수"라며 "수사권 이관에 머무르지 말고 '해외정보원'으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한다"면서 국정원 해체를 주장했다. 12월1일에는 이른바 양심수 '성탄 특별사면'을 정부에 재차 주문했고, 같은달 5일 이은혜 대변인을 통해 북한의 화성-15형 미사일 발사에 관해서는 "관성적 제재 대신 대화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며 키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민중당은 또 기본정책에서 '직접민주주의'를 거론, "민중 자신의 힘으로 노동존중 인간존중의 새로운 사회를 실현한다"거나 "초국적 자본 및 재벌독점체제를 해체"하고 "모든 민중이 경제의 주인이 되는 평등사회를 실현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공동상임대표단 인사말에서는 "1%의 독점을 뒤엎는 정당, 자주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이라고도 밝혔다.

나라 밖을 겨냥해서도 반미·친북적 입장표명을 서슴지 않았다. 민연당 시절 ▲경북 성주 사드 반대 집회 ▲6월24일 주한 미 대사관 포위 시위 등을 벌인 이들은 합당 후 원내정당이 돼서도 10월 'NO 트럼프 공동행동'에 참여해 한미 동맹 흔들기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앞둔 11월3일에는 사드 배치와 관련 "소성리를 전쟁기지로 만든 트럼프의 방한과 국회 연설을 반대한다"며 "우리 국민에게 결코 국빈일 수 없다"고 비난 논평을 냈다.

국빈 방문기간에도 민중당은 트럼프 대통령 이동 경로를 따라붙는 반미 시위를 주도, 광화문 광장에서 물병 투척 등 물리력을 행사했으며 방문 둘째날(11월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김종훈 대표·윤종오 원내대표가 기립만 한 채 박수 없이 'No war! We want peace' 피켓을 들어 보였다.

●'탄핵 정국' 혼란 속에 '통진당 유사정당 조사' 요구 묻혀

민중당 창당 이후까지도 오랜 '통진당 부활' 논란이 따라붙는 것은 통진당이 2014년 12월19일 헌재의 판결에 따라 강제 해산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재는 통진당의 숨은 진짜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일치한다고, '이석기 RO 회합' 등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통진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용공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위한 북한식 사회주의"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 이석기 등의 내란 관련 사건으로 현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에 도입한 통진당 주도세력에 대해서는 "과거 민혁당 및 영남위원회, 실천연대, 일심회, 한청 등에서 자주ㆍ민주ㆍ통일 노선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돼 활동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다"고 지적했다. 통진당은 폭력혁명에 의한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1992년 설립된 지하당인 민족민주혁명당의 잔존세력이 민노당을 거쳐 2차례의 분당 사태를 통해 당권을 장악한 세력이라는 '황교안 법무부'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헌재는 지하혁명조직(ROㆍRevolution Organization) 내란음모 사건에 관해 "이석기를 비롯한 회합 참가자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이석기의 주도 아래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해 대한민국 내 국가기간시설의 파괴, 무기제조 및 탈취, 통신교란 등 폭력 수단을 실행하고자 회합을 개최했다"며 '통진당의 조직적 활동'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통진당은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해 그 근간을 훼손하고 이를 폐지하고자 했다"며 "정당해산 결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법익은 정당활동 자유의 근본적 제약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일부 제한이라는 불이익에 비해 월등히 크고 중요하다"고 봤다.

헌재는 또 "(개별 구성원에 대한) 형사처벌만으로 정당 자체의 위헌성이 제거되지는 않으며, 통진당 주도세력이 언제든 위헌적 목적을 정당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일 민중당 창당에 이르기까지 이같은 판단을 근거로 "통진당의 유사 정당이 아닌지 조사하라"는 요구가 적지 않았지만 2016년 10월부터 본격 촉발된 '박근혜 탄핵 정국'으로 사법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대선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정권교체 이후 '김이수 헌재소장 낙마'가 있었으나 민중당으로의 재결집은 순조로웠고, 이석기·한상균 등 석방 투쟁은 더욱 노골화했다. 민중당은 통진당 해산 3주년을 맞은 작년 12월19일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양심수 전원 석방, 통진당 복원을 공공연히 요구했다. 사흘 뒤(22일) 윤종오 원내대표가 20대 총선 유사선거사무소 운영·사전선거운동·선거운동원 무상 숙소제공 등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원심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1석 정당'이 됐지만, "박근혜 적폐검찰에 놀아난 사법부의 부당한 정치판결"이라며 "진보정치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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