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협 주최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집회..주최측 추산 1만2000명 참여
"법원 결정은 의사들에게 神이 되라고 종용하는 것...치료에 실패하면 죄인 되는 현실 개탄"
"이런 식이면 의사들은 중한 환자 치료 피하는 상황 올 수도...

11일 대한민국 의료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현장.(대한의사협회 제공)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선의의 의료행위가 결과적으로 환자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불구속기소된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시킨 사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11일 오후 2시부터 4시 20분까지 서울 중구 대한문 앞과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개최했다.

지난달 24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선의종 부장판사는 복부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어린이를 오진해 사망하게 한 3명의 의사에게 금고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선 부장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전모 씨(42·여)에게는 금고 1년 6개월, 송모 씨(41·여)와 이모 씨(36·남)에게 각각 금고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날 의협이 주최한 '대한민국 의료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1만2000여 명의 의사들이 참석했다. 작년 12월 10일과 올해 5월 20일 두 차례 대한문과 청와대 앞에서 의사들이 모여 의료보험의 무리한 보장성 확대 일명 '문재인 케어'를 반대했던 것에 이어 세 번째 대규모 집회였다.

이날 의협은 "지난 2013년, 8세 어린이가 횡격막탈장으로 인한 혈흉으로 사망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당시 의료진은 민사상의 심판을 받았는데 5년이 지난 지금 법원은 의료진들에게 형사상 책임까지 요구해 의료진이 한순간 구속된 죄인이 됐다"며 "법원의 이런 결정은 의사들에게 모든 사람을 실수없이 치료해내는 '신'이 되라고 종용하는 것이고 치료에 실패했다고 죄인이 돼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또 의협은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는 의료의 특수성을 외면한 법원의 판결이 자칫 잘못하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고 이러한 법원의 판결로 의사들은 앞으로 중한 환자들의 치료를 포기하고 피하는 상황까지 전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진단이 쉽지 않은 극히 드문 질환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민사상 책임을 지고도 형사 책임까지 지라는 법원 판결로 3명의 의사들이 죄인으로 전락했다"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가 현대의학의 한계에 의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죄인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의사들은 최선을 다한 진료가 아닌, 방어적 진료로 임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국민건강에 심대한 피해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최 회장은 "이런 식으로 간다면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며 "이런 현실에 대해 국민과 정치권, 사회가 관심이 없기에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됐고 13만 의료인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 의료제도가 한 번은 멈춰야 할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다"고 말하며 총파업을 시사하기도 했다. 

11일 대한민국 의료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현장.(대한의사협회 제공)

대한응급의학회 이경원 섭외이사는 "이제 우리 의사들은 응급실이나 외래에서 한 번이라도 진료한 환자가 며칠이 지나든지 사망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면, 민사 소송에서 손해배상 해주고, 형사소송에서 금고형 받아 법정구속되고,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행정처분으로 면허정지나 면허취소시키고, 인터넷에서는 악성 댓글로 인격살인 당하는, 이중삼중사중으로 처벌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해도 해도 너무 하고 이 나라에서 의사는 무슨 죄지었습니까"라고 울분을 토했다.

대한가정의학회 이덕철 이사장은 "최근 의사 3명이 한꺼번에 법정구속됐는데 고의성이 없는 진료 과정의 결과에 형사적인 책임을 물어 의료인을 죄인으로 구속시키는 것은 의료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일갈했다.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은 "과연 어느 누가 주어진 의료현장에서 정상적으로 진료에 임한 의료인에게 고의가 아닌 과실 때문에 구속이라는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며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사법부의 판결로 사형을 당했거나 장기복역으로 무고한 사람의 삶을 파괴 시켰던 사건들이 재심 절차를 거쳐 무죄 판결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법부는 잘못 판결한 판사들에게 어떤 형벌을 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은 "의사에게만 신의 경지를 요구하며 의사를 잡아넣는 판사, 검사 자신들은 왜 자신들의 직무수행 중 오판에 대해서는 처벌은커녕,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고 직무상 수행한 업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치는가"라고 사법부를 비판했다.  

11일 대한민국 의료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현장.(대한의사협회 제공)

의협 대표자들은 청와대 앞으로 이동해 집회를 이어갔다. 의협 대표자들은 청와대 앞에서 '13만 의사가 문재인 대통령께 다시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광주광역시의사회 양동호 회장이 의사들을 대표해 낭독했다. 양 회장은 "우리들은 지금까지 의사로서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지만 이제 벼랑 끝 한계로 내몰리고 있다"며 "진료의사 3인이 민사책임을 넘어 형사구속까지 되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준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편, 이날 의협은 자체 유튜브(YouTube)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집회를 중계했다. 최근에 개설된 의협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몇 백명 단위에서 머물러 있었다. 이날 집회에서 유튜브 채널을 집중적으로 홍보했고 집회를 생중계하면서 최대 1000명 이상의 동시접속 시청자수를 기록하는 등 생중계 후 현재 의협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2956명으로 하루만에 2000여명 이상이 늘어났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다음은 이날 대한의사협회가 청와대 앞에서 낭독한 '13만 의사가 문재인 대통령께 다시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성 전문(全文)이다.

13만 의사가 문재인 대통령께 다시! 말씀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신문고를 두들기는 절박한 심정으로 또 다시! 청와대 앞에 섰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지난 5월 20일 제2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 때도 우리는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척박한 의료 현실을 개선하여 안정적인 의료환경 속에서 전 국민이 더 나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대통령께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의료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열악한 상황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 의사들의 진료량은 OECD국가 평균의 3배에 달하지만, 이에 비해 의료사고 건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입니다. 이러한 통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대한민국 의사들의 희생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제도와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라는 허울의 이면에는 썩어 곪아가는 한국의료의 민낯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환자를 위해 의사의 양심으로 최선의 진료를 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부당한 의료행위’라는 매도와 비난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우리들은 지금까지 의사로서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벼랑 끝 한계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여덟 살 어린이가 횡격막 탈장으로 인한 혈흉이라는 매우 드문 원인으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유가족의 애통함을 충분히 이해하며 슬픔을 함께 합니다.
한편, 진료의사 3인이 민사책임을 넘어 형사구속까지 되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줍니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의를 기반으로 의료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의료현장은 예기치 못한 불가항력적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의료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판결은 모든 의사들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해 방어진료를 부추기는 불안정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의사와 국민 모두가 안전한 진료환경 속에서 최선의 의술이 행해져 국민건강이 지켜지는 터전이 마련돼야 합니다. 의료분쟁특례법이 반드시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국민건강에 대한 재정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불합리한 의료규제와 의료제도로 점철된 대한민국 의료구조를 근본부터 뜯어고쳐야만 국민 건강을 위한 최선의 진료가 가능해집니다.

지난 9·28 의정합의에 따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은 의-정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으로 정책 변경이 이루어졌습니다. 함께 약속했던 다른 사항들 또한 국민건강을 위해 조속히 이행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대통령께서도 직접 챙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디 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한 안전한 의료환경을 마련해 주십시오! 국민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의 진료환경을 구축해 주십시오!

의료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에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셔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인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의료환경을 개선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의료를 하루속히 바로세워 주십시오!

2018년 11월 11일
대한민국 의사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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