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수첩/이세영] 교육의 '정치중립’ 중요성 일깨운 'EBSi의 일탈'
[PenN수첩/이세영] 교육의 '정치중립’ 중요성 일깨운 'EBSi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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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영방송 EBS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강의사이트 EBSi에서 한 강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해 조롱섞인 ‘학습 문구’를 활용한 사실이 6일 펜앤드마이크의 단독보도로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이 나왔다. EBSi는 파문이 확산되자 다음날인 7일 해당 문제 영상을 즉각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지난 9월 17일에 공개된 영상인만큼, 얼마나 많은 수험생들에게 '무분별한 낙인 효과'를 불러일으켰을까 싶다.

일련의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해당 사건은 수험생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강남D 재수학원의 현직 강사이자 EBSi에서 역사강사로 활약(?)하는 권모 강사가 수능이 다가온 시점에 수험생들을 위해 진행한 ‘동아시아史 파이널 강의’ 영상에서 비롯된다.

9월 17일 탑재된 강의영상을 보면, 권모 강사는 수험생들이 역사적인 사건들을 쉽게 기억하고 까먹지 말라는 취지로 ‘서강대 전연이 귀하당’이라는 약어를 소개한다. 강사가 소개한 ‘서강대 전연이 귀하당’은 ‘서희와 강동6주, 1004년 전연의 맹, 1009년 리 왕조 건국, 1019년 귀주 대첩, 1032년 서하 건국, 11세기 후반 왕안석의 신법과 당쟁의 발생’ 등 역사적 사건들을 순서대로 배열하면서 암기하기 쉽게 나온 약어이다.

문제는 해당 강사가 약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전연이(저년이)’로 비칭하며 희화화한 부분이다. 강사는 “서강대에 대단히 유명한 여성은 있다. 바로 그 분이 서강 출신. 귀하신 분이다”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뒷모습을 강의 화면에 노출시킨다.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공영방송 EBS 인터넷 강의 강사가 공영방송을 통해 '해서는 안될 편협한 행동'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같은 표현들은 학생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쉽게 각인될 뿐더러 세상을 단순하고 편협하게 해석할 수 밖에 없게 한다.

논란이 거세지자 EBSi측은 7일 "향후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문제 영상을 삭제하고 공식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EBSi의 발빠른 삭제 조치는 EBSi측도 이번 사안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투성이 보도를 쏟아내고도 사과나 반성에 인색한 한국의 매체들이 부지기수인 점을 생각하면 EBSi의 신속한 후속조치는 일단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게시물 삭제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이렇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오늘날, 특히 역사-사회분야 교육현장에서 ‘정치적 편향성’ 등 교사의 주관적 인식이 깃든 표현들이 쉽게 소비되는, 이같은 현상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정착했을지 더욱 우려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현장 곳곳에서 '정치적 중립'의 중요성에 대한 지각없이, 편향적이고 조롱섞인 표현(혹은 편향된 일화 소개)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이같은 우려에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해당 강사 또한 이번 사건을 중요한 자성의 기회로 활용하지 않고 운 좋지 않게 걸린 하나의 에피소드로 기억한다면, '어느 강좌'에선가 학생들에게 이번 일화 또한 우스운 이야기를 전달하듯 거론할 지도 모른다.

특히 EBSi는 교육부 방침이 적극 반영되는 만큼 대부분의 학생들이 거쳐가는 공간이며, 학생들에게 공신력있게 인식되는 강의사이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EBS 인터넷 강사들의 정치적 중립성은 여타 강의공간 보다 더욱 책임이 막중하다.

EBSi는 기자도 지난 학창시절 상당히 애용했던 사이트이다. EBSi 강사들이 무료로 제공하는 열정적이고 퀄리티 높은 강의를 누리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들에게 호감을 가진만큼, 그들 중 일부 강사가 툭툭 장난삼아 정치적 입장을 드러냈을 때 그들의 가치관-세계관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동화(同化)될 수 밖에 없었다. 호감을 가진 인물들의 사고관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문제 영상이 삭제되자 수강후기 게시판에는 “왜 삭제된건가요? 참선생이신데”라는 반응이 올라왔다. 해당 강사는 과거 기자가 마주한 강사들 중 한명처럼, 누군가에게 재미있고 열정적인 ‘참선생’으로서의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강의에서 이러한 조롱섞인 표현을 쉽게 소비하는 행태, 특히나 수험생들이 간절하게 약자를 외우는 상황을 이용해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표현을 한 것은 무척이나 가벼운 행실이란 비판을 면키 힘들어보인다. 과연 이 강사가 다른 수업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수 밖에 없다. 작은 사건이지만, 2개월여간 방치된 해당 영상은 EBSi측에 게시된 다른 영상들도 방치돼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어린 눈길을 보내게 만든다.

EBSi가 이같은 우려들에 대해 진정성있게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중립성’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각성해 신뢰도를 다시 한 번 확보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같은 일이 재발한다면 EBS 내부에 잘못된 표현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거나 고의로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 것이다. 또한 강사들은 자신의 가치관-세계관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답습시키기 보다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입체적인 자료들을 제공해야한다.

이번 삭제 조치로는 소용없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언론의 문제 제기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를 면밀히 바라보면서 문제점들을 제보해주신 분들 덕분에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작지만 여러 곳에서 이같은 변화가 이어진다면, 그로인해 사회적 토양은 조금씩 건강하고 건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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