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복지주의로 도주하는 실패한 정부
[김행범 칼럼] 복지주의로 도주하는 실패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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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최근 16개월 간 '평화' '북한' 단어 가장 많이 사용
경제실패 땜질하러 '복지' 강화하지만 경제침체하는 악순환 벌어져
‘베푸는 국가’는 사실 '약탈국가'...만인이 만인의 재산권을 약탈하는 지대추구 사회로 변질
'포용국가'는 사회의 창의-역동 마비시켜...개인을 짓밟고 개인 재산과 자유 무시
"대통령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대통령 머릿속 정책이념들을 양적으로 알아내는 데 이른바 내용분석(content analysis) 기법이 종종 사용된다. 여의도연구원이 최근 16개월 간 대통령의 공식 연설문 및 청와대의 공식 브리핑 문건(1453건) 키워드(5508개)를 분석한 경과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평화(29%)와 북한(26%)이었다. 일자리에 대한 언급은 그보다 한참 아래인 10%를 밑돌고, 국민의 정책 순위 1위인 교육은 4%, 서민 언급은 3.7%에 불과하다.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그는 개인의 행복, 자유, 경제와는 거리가 멀고 평화 및 북한 짝사랑에 몰입해 있는 듯하다. 그 결과는? 지금의 경제 상황에 그대로 나타나 2%대 성장률이고 최악의 실업 상태이다.

그런데 평화 및 이미 비핵화의 본질은 비껴난 대북정책은 구호 및 이벤트만으로 지지를 높일 수 있지만 경제는 그 성과로 평가받는 냉혹한 분야이다. 평화 놀음의 구호 정치 아래, 기업과 시장을 적으로 삼는 경제기조에서 나타나는 투자 부진, 일자리 창출 부진, 성장하락으로 인한 경제실패는 불가피하다. 이 실패는 어떤 식으로든 무마되어야 한다. 바로 이에 대한 임기응변 땜질로 복지를 이용하는 것이 이 정부의 정책틀로 굳어지고 있다. 즉 그릇된 평화놀음 즐기느라 또 경제정책의 틀을 J노믹스라는 그릇된 인과논리로 묶어 놓은 바람에 경제는 당연히 실패하는데 이를 남의 세금으로 뒷감당하려는 틀이다.

경제실패가 심화될수록 복지수요도 격증한다. 이리하여 2019년도 예산안은 사상 최고인 470.5조의 슈퍼 예산이 되었다. 전년대비 총지출 증가율(7.1%)은 금융위기 대응 때인 2009년 이래 가장 높은 증가이다. 그중에서도 일자리 예산을 포함한 복지 예산은 역대 최고로 증가해 총예산의 1/3이 되었다. 서울시 복지예산이 서울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대략 이와 같다. 안보 불능, 경제 불능이 잘 드러남에 비해 복지남용에 의한 또 다른 불능은 비교적 덜 주목받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선 이런 식의 복지국가는 곧 국가실패를 가져온다. 노벨상의 경제학자인 공공선택론의 제임스 뷰캐넌에 의하면 개인의 생명, 자유 및 재산을 보호하며 개인들 간 계약이행을 돕는 역할만 하는 것이 보호국가(protective state)이고,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생산국가(productive state)이다. 지금 정부는 두 가지의 국가 실패를 다 보여준다. 국가가 되레 개인의 언론 자유, 재산권을 침해하고 시장 거래를 깊숙이 간섭하며 개인 생명과 직결된 안보를 거의 일방적으로 방기하는 면에서 보호국가 역할에서 실패하고 있으며, 필수적인 공공서비스 공급을 넘어 개인 간 자원을 국가가 직접 이전하려드는 재분배 국가로 달려가는 면에서는 생산국가 역할의 실패이다.

임금주도성장, 패러다임의 변화, 분배 개선, 성장의 선순환 등의 논리를 아무리 강변해도 복지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는 없다. 이렇게 복지주의로 나서면 그 경제성과는 다시 저성장이다. 그 저성장으로 인해 나타난 경제침체와 빈궁에 대한 안전망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복지는 그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그런 퍼주기 정권은 양식있는 유권자들에 의해 언젠가 쫓겨나겠지만 그 죄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길들여 놓은 복지수혜에 대한 국민 의식은 복원되기 어렵다. 한번 누린 복지는 마약과 같아서 그걸 포기하지 못한다. 그들은 배려(consideration)를 이제 재산권(property)으로 주장하게 되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에 화를 낸다. 이 정서를 꿰뚫고 있는 좌파정당은 집권한 동안 국민에게 가급적 많은 복지주사를 놓으려는 것이다. 다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복지를 뗄 수 없는 생필품이라 여기도록. 그리하여 또다시 복지 베푸는 정당을 선택하도록.

건전한 경제이념에 충실한 보수정당이라면 이에 맞설 것이다. 그런데 어느 임계치를 넘어 가면 우파 정당도 좌파정당에 질세라 결국 퍼주기 경쟁에 가담하게 된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과도한 복지욕구를 억제하고 설득하기 보다는 정권의 당면 이익을 위해 오히려 이를 앞장서 유권자에게 약속하고 표를 구걸하는 거지로 동반 타락한다. 결국 복지경쟁은 지금 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또 자신만이 아니라 국민과 다른 정당까지 타락시킨다.

복지 정책에 관한 한 이제 자유한국당마저 퍼주기 경쟁에 막 나선 분위기이다. 소득상위 10%를 제외한 아동 1인당 10만원씩 주는 게 현재의 아동수당인데 이제 소득 계층 구분없이 다 주자는 게 정부여당의 요구이다. 이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의 요구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 소득구분도 없애면서 3년 안에 30만원씩까지 인상하자는 보편적 복지의 주장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여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보수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은 이제 복지경쟁의 덫에 걸려든 듯하다.

복지가 전제하는 ‘베푸는 국가’는 사실은 약탈 국가이다. 광화문과 청와대 앞 수많은 플래카드들의 또 다른 의미는 이것이다: “대통령 당신이 권력을 이용해 남의 돈을 뺏어와 우리 집단에 던져 달라.” ‘공교육’을 곧 ‘공립학교’에 의한 교육’이라 오해해서는 안 되건만 사립유치원을 국공립화해 주겠다는 장관에 학부모는 감격한다. 그 학부모는 실은 내 아이 보육비를 남에게 떠넘기자는 것이다. 개인이 하면 빤한 도둑질인 그 역할을 복지란 이름으로 국가가 당당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복지 국가이다. 이렇게 한 집단이 타인의 재산권 탈취에 성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인과 아동만 수당을 받는 것에 불만인 다른 집단들이 이런 경쟁에 나선다. 결국 국가권력을 매개로 만인이 만인의 재산권을 약탈하는 지대추구 사회가 되어 간다.

사회복지, 의료, 교육 등의 ‘보장 국가’로 만들어주겠다는 포용국가는 사회의 창의와 역동을 마비시킨다. 국가가 만들어 주는 획일적 보장은 개인을 국가에 종속되게 만든다. 자유로운 개인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자유도 있다. 개인의 선택들의 미래 결과는 보장되기 보다는 불확실해야 한다. 그걸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창의와 사회의 역동으로 진정한 진보가 일어난다. 또 남의 희생으로 내 삶을 보장하려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재분배주의자들의 통상적 대응은 그저 최소한의 보장에 대한 우파의 과잉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최저” 수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것은 정치인에 의해 전략적이고 자의적으로 정해졌고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미 복지는 최저의 불가피한 수준과 내용을 넘어섰다. 애초부터 보편적복지로 출발한 나라는 드물되 결국엔 그 방향으로 전개되어 간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만큼 복지국가는 처음부터 정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지주의 남용이 끼치는 가장 중요한 해악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슈퍼 예산을 집행하여 개인의 삶의 필요를 공급하는 아빠국가는 거대하고 촘촘한 국가관료기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개인 위에 거대한 정보, 돈, 조직으로 개인을 규율한다. 그에 필요한 재원을 부과하고 징수하고 집행하고 감독하는 레비아땅 국가를 부르게 된다. 거대한 힘 가지게 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 예가 없다.

복지를 받을 것인가, 거부할거냐? 라는 좌파가 만든 프레임구도 자체가 틀렸다. 누구나 자신의 복지를 증진하고자 한다. 진정한 선택은 국가 관료제가 강제력으로 남의 재산을 뺏어와 베풀어 주는 복지냐, 혹은 개인이 스스로 사적 자치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복지냐이다. 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복지의 규모, 종류 및 수준을 결정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어떤 복지도 없이 살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복지보다 자유가 더 근원적 가치라 함은 이런 연유이다. 정당의 경쟁은 남의 돈 수탈하여 유권자에게 선심쓰며 표(票) 얻는 복지의 경쟁이 아니라 자유의 경쟁으로 바뀌는 게 바람직한 것이다.

이 정부는 소위 ‘포용국가’라는 복지국가가 되겠다고 자처한다. 그 모토가 기막히다: “모두를 위한 나라, 나를 안아주는 포용국가.” 이 말대로라면 포용국가는 포옹국가의 오독이다. 국민을 촛불군중-시민, 노동자-기업가, 진보좌파-수구꼴통, 인민언론-진짜언론, 갑-을로 재단하고 분열한 후 자신의 대적만을 투옥하고 끌어내리고 핍박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나라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나를 짓밟고 내 재산과 자유 무시하던 정권이 돌연 나를 안아주겠다고 다가옴은 상당히 역겹다.

한 손으로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잘못된 경제정책 기조 때문에 실업자들을 부지런히 생산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그렇게 생겨난 경제실패자들 먹여 살리겠다고 복지를 부지런히 퍼주려는 나라. 경제실패와 복지가 서로에게 원인이고 동시에 결과인 딜레마 .... 이걸 일거에 벗어나려면 대통령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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