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적 사고의 특징은 무한청구권을 갖는 피해자의식
피해자의식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정의만을 내세우는 것은 악의 출발점
정의감이 누구에게나 있는 거친 감정인 것을 인지해야 도덕이 생길 수 있다

PenN 김민찬 기자
PenN 김민찬 기자

우리가 소위 좌파라고 하는, 또는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들을 보면 근본적으로 공통된 특징이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좌파는 종북주의자나 좌익 진영을 뜻하는 정치적 개념의 접근이 아니다. 정치적 신념은 표면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발생시키는 근원이 있다. 그 근원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그리고 좌파라는 용어가 사실 구시대적인 감이 있어 다른 용어를 쓰고 싶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대안이 없다. 대안이 나오기 전까진 일단 사용하겠다.

우리는 6일 펜앤드마이크와 'PenN 뉴스' 기사를 통해,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한 여성의 주장이 거짓이었던 것을 확인했다. 미국 상원 법사위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주디 먼로-레이턴이라는 좌익 활동가 (left-wing activist)로, 캐버노가 임명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사건을 날조했다.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캐버노가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되는 것이 자신의 무언가를 침해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캐버노의 임명을 막는 자신의 행동은 정의롭다고 느꼈을 것이다.

정의는 인간에게 있어, 아니 생명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수준에서 작동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신의 영역 혹은 재산이 침해당했다고 판단되면 분개한다. 원숭이들을 관찰해 보면 동료보다 나쁜 대우를 받을 때 분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노가 정의감의 근원이다. 두뇌가 발달한 인간은 그 영역을 확장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받는 침해도 공감하며 분개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정의가 동물적 감정이기에 늘 폭발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정의는 추상적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체의 생존에 쓸모가 있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오랜 세월 다듬어진 ‘거친 도구’다. ‘거친 도구’의 사용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좌파들의 특징이 자신이 늘 약자이자, 나아가서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관찰해 본 결과, 이런 사고는 오랜 기간 축적된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오랜 기간 열등감에 노출되다 보면 자신은 약자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그런 약자 프레임에 갇힌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무한의 청구권'을 갖는 피해자로 승화시킨다. 무한의 청구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칭 피해자들이, 정의라는 거친도구를 마구 휘두르는 것이 좌파적 행동이요, 좌파적 사고다.

미국에서 좌파 행동가들이 진실을 날조해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나, 한국에서 문재인 정권이 반대편을 적폐로 몰아 탄압하는 것, 불편한 뉴스는 ‘가짜 뉴스’라며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모두 같은 맥락이다. 무한 피해자의 사고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정의감에만 몰입해 있다.

그러나 정의감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바로 누구에게나 정의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도덕의 출발점이다. 도덕이란 자신이 타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했을 경우, 거친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태도다. 그러나 좌파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정의감에만 젖어 있기에 도덕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비도덕적 행동은 보지 못하고, 자신의 ‘피해’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좌파적 사고를 가진 생계형 위장우파에서도 관찰된다.

나는 이처럼 ‘무한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비도덕적 행동을 인지 못하고, 자신의 정의만 목소리를 높이는 이기적인 사고ㆍ행동 양식을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병'은 더 큰 악(惡)의 출발점일 수 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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